
성녀 클라라(글라라는 "빛나는 이"라는 뜻)는 1193년 이태리 아씨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의 열정적이고 기쁨에 찬 설교를 직접 듣고 형제들의 생활을 보면서 그와 같은 복음적 생활에로 강한 마음의 이끌림을 느꼈기에 성 프란치스코를 찾아가 그의 지도를 받게 된다. 클라라가 18세이던 1212년 성지주일 밤 가족들이 잠든 사이에 집을 떠나 성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는 뽀르찌웅꿀라 성당으로 달려가 순종 생활을 서약하였고, 스승이요 영적 아버지인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세속을 완전히 떠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과 사랑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길은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는 성 프란치스코와는 달리 봉쇄 수도원 안에서 가난과 보속의 삶을 살아가는 관상생활이었다. 우선 머물 곳이 없어 성 베네딕또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클라라는 1212년 말~1213년 초 클라라의 뒤를 따라 복음적 생활을 함께 시작한 동생 아녜스와 동료 몇 명과 함께 성 프란치스코가 마련해 준 성 다미아노 성당을 "가난한 자매들의 회"의 못자리로 삼고 성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생활양식과 비슷한 복음적 권고로 작성하여 준 생활양식을 따르며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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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 라떼라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기존의 인준된 수도회칙 베네딕또 회칙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클라라는 공동체의 책임을 지는 가운데 원장(abbatis)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게 되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그리스도와 가난한 자매들의 여종, 시녀라고 불렀다. 1228년 클라라는 프란치스칸 정신과 관계없는 두 개의 회칙(베네딕또회칙과 우고리노회칙)을 지키는한 프란치스코에게서 배운 복음적 가난의 생활과 형제회와의 유대를 보존할 수 없음을 염려하여 프란치스코의 회칙과 우고리노 회칙을 기초로 회칙을 작성하여 인준을 요청했으나 교황 그레고리오9세로부터 거절 당한다. 1240년 클라라는 성체께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아시시를 습격한 사라센인들을 쫓아내는 성체의 기적을 체험한다. 1243년 클라라는 자신이 작성한 회칙의 인준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게 다시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고 1247년 새로운 회칙을 의무적으로 받게 되었다. 이 회칙은 작은 형제회와의 영적 유대는 보장되지만 공동 재산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클라라가 하느님 사랑에만 전적인 신뢰를 두는 절대적 가난을 살고자하는 이상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 1252년 클라라는 인준받은 프란치스코의 회칙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여 관상과 봉쇄 생활에 적용하는 고유한 회칙을 쓴다. 클라라는 이 회칙에서 자매들의 생활은 복음적 생활이며 교회와의 일치 특히 프란치스코 형제회와 같은 정체성으로서 형제회와 일치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에 근본을 두는 생활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그래서 서로 간의 사랑 안에서 일치와 가족적인 사랑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항상 단식하고 남루한 옷을 입고 가난하게 살아가며, 재산이나 토지를 임대함으로 주어지는 고정적 수입을 거절하고 복음의 말씀대로 손수 일하여 생계를 마련하며 애긍에 의존하라고 한다. 그리고 관상 생활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봉쇄와 침묵,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려야 하는 자유를 강조하며, 엄격한 규정을 내릴 때에도 자매애와 가족적 분위기 안에서 지혜롭게 배려하는 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
교회 역사 안에서 여성수도자로써는 최초로 쓴 이 회칙을 보호자 Rainaldo 추기경이 1252년 9월 16일자로 인준하였고,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1253년 8월 9일 교령으로 재확인하였다. 1253년 8월 10일 작은형제편으로 간절히 원하던 교황 칙서를 첨부한 자신이 만든 수도회칙을 받은 클라라는 큰 감격에 넘쳐 회칙을 가슴에 안고 세상을 떠났다. 이 회칙의 원본은 1893년 성녀 글라라의 시신을 덮고 있던 수도복 속에서 발견되었다. 세상을 떠난 2년 후, 1255년 클라라는 성인품에 올랐다.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다미아니떼 수녀들은 ‘글라라 수도회’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1850년 성녀의 무덤을 열어 보았더니 시신이 상하지 않은 채 발견되었고 그녀의 시신은 성녀 클라라 성당 지하무덤으로 새롭게 안치되었다. 1252년 성탄밤 중병으로 움직일 수 없었던 처지에서 자신의 방에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자정미사를 참석한 듯이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기적을 계기로 1958년 교황 비오 12세가 성녀 클라라를 텔레비젼의 주보로 선포하였다. 성녀의 삶은 지금까지 물질 만능으로 병들어 가는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생활과 구세주께 대한 깊은 사랑을 하도록 격려하며 그녀 자신의 이름처럼 아름답고 신선한 빛을 보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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