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새삼스럽게 내 단점들을 헤집고 분석하며 바닷가에서 모래성 놀이를 하듯 생각을 무너뜨리고 쌓기를 거듭한다.

채근담이였나?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는 것이 오히려 발전에는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랑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근심에 찬 마음으로 생각한다.
머리가 좋다거나 재능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게으른 자들에게는 독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어려서부터 늘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싫어하는 것은 죽어도 손 대지도 않고 눈도 돌리지 않았던 것 같다.
체질적으로 무리야라는 핑계처럼, 싫은 건 잘 들어오지 않았고 좋아하는 것은 그냥 다 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었다.
아이큐 검사 후 늘 따라 붙던, 너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 라는 꼬리표.
대충 읽고 시험을 쳐도 늘 중간 이상 상위권은 유지했었고, 외우는 것은 지독히도 싫어했던 학창시절들.
지금도 외우는 거나 무언가를 카피하는 것보다는 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
하지만 내게는 제일 중요한 끈기와 노력이 없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기적인 핑계를 대면서 타인을 존중하지 못했던 부분에 따라 붙는 것은 언제나 과장되고 허울좋은 변명들.
인간관계에 재능이 없느니 하는 건 개소리다(미안 개..).
노력하지 않았고 거기에 대한 결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지금에야 생각한다.

혼자 울면서 나름대로는 노력했단 말이야- 라고 해봤자, [나름]이라는 것은 정말로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정도의 것에 노력 운운하는 이름표를 달지 않는다.

예전에 잠깐 했던 생각이지만, 재능은 즐겁게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3일 내내 밤을 새워가며 전시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가 즐거워서였고
코스프레 의상을 준비하며 좋아했던 것도, 숨어서 원고를 하던 시간들도 전부 내가 좋아서 거기에 미쳐서 빠져들었던 일들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해야만 하는 일들에 노력하는 법을 나는 익히지 못했다.
도망치며 살아온 인생이라서 그런 것이다.

뛰어넘어야 알 수 있는 세상이 있고,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타인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나 기본적인 능력을 이수해야만 나아갈 수 있는 다음 단계 같은 것들.
악수 없이 키스부터 시작한 커플의 미래가 불안정한 감각들로 가득 차게 되듯,
주춧돌 없이 누각 지붕을 얹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재능은 다듬어져야만 쓸모가 있고 제 빛을 발하는 법이고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노력이 들어간다.
그 노력을 해낼 수 없는 사람, 재능만으로 가득한 허풍쟁이를 우리는 낙오자라 부른다.

꿈이라던가, 설계해 놓았던 미래를 포기하고 나서야 눈이 뜨이는 기분이다.
나는 어쩌면 어리광이나 엄살을 부리는 데 재주가 있는 것이지 그것 이외에는 갖춘 것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나를 거쳐간 사람들이 내게서 본 열정과 재능은 내게 의미없는 것들이 되어가고 있는데, 나 자신은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고등학교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내게 써주었던 편지들을 읽으며 내가 볼 수 없던 나의 모습을 타인의 묘사를 통해 읽어 내려간다.

나는 늘 나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남이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고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이상하다고 하는 평가가 거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쌓고 살아가는 인간은 고립되고 흐르지 못하고 융화되지 못한 재료로만 남을 뿐이다.
닭이 털을 뽑히고 뜨거운 물에 삶기어져 요리가 완성되듯 야채가 썰리고 무쳐져야 음식이 되듯,
요리실을 거치지 않고 식탁으로 오르기를 기대하는 쌩닭같은 모습으로
나는 내 과거를 의심한다.

비난 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사소한 풍문에도 벌벌 떨며 두려워 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찌꺼기같은 모습으로 의식 곳곳에 남아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타인을 생각한다면 이쯤에서 꺼져주는 것이- 사라져 주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인 것은 아닐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한다.

재능이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자만심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어려워하지 않아도 쉽게 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쉽게 길을 걸어온 이들이 아주 작은 돌맹이에 걸려 넘어졌을 때의 모습은 비참하다.
일어날 용기라던가 다시 한 번 부딪쳐서 해내겠다는 의지 없이 쉽게 다른 영역에 손을 뻗는 것은
정말로 간절하고 절실한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자는 노력을 배우기 전에 평가에 중독되기 쉽다.
자신의 위치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좀 더 정확히, 입체적으로 보고 움직일 줄 알아야- 이상한 모양의 조형물이나 건축물이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방향성을 잃은 창조는 쓸모가 없다.
큰 쓸모가 없이 재미로만 만들어진 무언가라 할지라도 시간과 비용 등의 현실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서
과연 나는 노력하지 않았던걸까, 하고 다시 생각해 본다.

쉽게 무너지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모두들, 강한 자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내가 약하든 강하든 그런 문제보다는
내가 정말로 바라고 원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그 부분에는 필연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클램프 만화에 자주 나오는 마음의 강함-노력- 따위가 결부되어 있다.


칭찬에 중독되고 재능으로 나태해진 꼴사나운 스스로의 모습을
이제라도 볼 수 있게 되었다면
다음은 정해진 것이 아닌가.

현실로 뛰어 드는 것.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

말로는 세상을 삼켰다 뱉을 수 있을지라도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 이상은 여전히 제자리, 아니 뒷걸음질 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왜냐면, 내가 제자리에 있어도 세상은 언제나 나를 추월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보다는 방향과 목적인데
다급히 소릴 질러대는 무리들 속에서 내 존재마저 잊고 휩쓸려 갈 것 같다.
나는 원래 귀가 얇은 팔랑귀 종족이니 조금 더, 주먹을 쥐고 나아가야겠다.
긴장을 풀고 차근 차근.

괜찮아.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꿈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일 뿐이니까.





by 아이 | 2008/02/01 14:14 | Make something-文,畵,音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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