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단상 - 넌 커서 뭐가 될래?


[스크랩] 서러운 떡볶이 아줌마

http://local.naver.com/nboard/read.php?board_id=li_hottalk&nid=27126

오랫만에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가서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다가 우연찮게 맛집 정보를 클릭했다.
이대역의 이름 없는 떡볶이 집이란다.
떡볶이 일인분에 2500원에 라면 사리가 1800원.
값이 비싸네 원가는 어쩌네 등등에, 알지 못하는 가게 주인-타인의 삶에 대한 그러려니 저러려니 이야기에들에 좀 속상하다가-.

마지막 리플에 눈이 머물더라.

가격이 비싼 것은 거리의 노상 포장마차가 아니라 꼬박 꼬박 세를 내는 떡볶이집이기 때문, 이란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흔히, [커서 넌 뭐가 될래?]
라는 질문을 하며 어른들은 어엿한 직업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을 아이에게 심어준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커가기보다도,  밥벌이를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만 사람이구나 보아주는 요즘이기에.
하고 있는 일이 그 사람을 보여준단다, 하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요즘이기에.

하지만 우리들은
커서 무엇이 되긴 한다.
노숙자, 홈리스나 의료보험비 떼 먹는 국회의원 거짓말쟁이들이 아니고서야
세금을 내는 어른이 된다.
연금을 뜯기고 적금을 들고 세금을 내는 사람이 된다.

어릴 적 먹어오던 떡볶이 떡에도 세금이 붙어있고
우리는 자라면서 세금 버는 사람이 된다.
세금 내는 어른이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라던가
나 하나 먹고 살지 못 하겠어요 하는 말을 내뱉던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고 현실 감각이 없는 캥거루 새끼인지도 모른다.

돈보다도 안정보다도 순간 순간의 욕심을 따라서, 꿈이라고 이름 붙인 계획을 따라서 살아온 시간들이였다.
그 흐름과 정반대의 길을 따라 나는 수요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어중간한 나이와 어중간한 이력서.
계획은 대강 잡혀있지만 그 계획대로 이루어질지 안 될지는 모른다.
늘 언제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인생이였지 않은가.

나보다 두 살 어린 한의사가 된 내 동생은 3월의 첫 날 결혼을 하고
함께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회지를 내던 친구 중 한 명은 3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결혼을 한다.
내게 처음으로 길거리 떡볶이의 맛을 보여준 예쁘장한 외사촌 언니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 후
들어오는 선 자리들을 거절하고 스펙이 좀 떨어지는(이라고 어른들은 평가하셨음. 대체 기준이 뭐야?) 지금의 연인과 상견례를 준비 중이다.

다들 열심히 현실 감각을 지니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따라잡을 생각도 없고 여기서 주저 앉을 생각도 없다.

결혼식 때까진 빼서 오라는 어머니의 엄명에 다이어트를 하며 일본의 생활들을 정리하고
한국에 가서 할 것들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생각한다.

그래.
나는 지금 내가 먹을 떡볶이에 붙을 세금을 낼 수 있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도?)

비정규직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을 알고 있다.
하고 싶은 일들을 취미로 빼버리고, 인생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니던 취미를 지워버리고 (오늘 k-books에 가서 코스 옷을 헐 값도 아닌 ㄸ값으로 넘기고 왔다; 한 번도 안 했던 코스들인데-_-;), 사랑 없이는 나도 없다는 소녀적 감수성은 분리수거를 했다.
분류한 쓰레기- 아니 감정들은 아직 집 안에 쌓여있지만 간절하지 않고 덤덤한 것은 친구말 따나 내가 아직 매운 맛을 덜 보아서인지
아니면 이미 너무 매운 맛에 길들여져 무덤덤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파트 사기를 당하고, 결혼을 꿈꾸던 사람과 헤어지고, 시험에 실패도 해 보고, 친구들에게 절교도 당해보고, 또 먼저 절교를 선언하기도 하고, 원하던 회사에 들어가서 원하던 직업도 가져보고, 짤려도 보고..
인생 참.

내일이 세례식이다.
내가 일본에 와서 세례를 받을 거라고 그 누가 알았으랴?

나는 내가 뭐가 될지 아직도 모르겠다.
되고 싶던 것은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의 문제만을 읽어 내려갈 뿐이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언니들과 이대, 홍대, 대학로, 성신여대에서 먹었던 떡볶이가 떠오른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와 함께 대구에서 먹은 신떡도 기억난다.

언니들과 나와 내 친구들과 후배, 동생들.
소녀는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떡볶이를 먹으며 깔깔대고 함께 웃던 여자애들의 시간은 제각각으로 변모하고 흐른다.

추운 날 노상을 철거당해서 우는 속상하고 서러운 아주머니와 이름도 없는 작은 떡볶이 집에서 세금을 물며 떡볶이를 만드시는 아주머니.
대낮에 살림아줌마가 해주신 해산물 궁중 떡볶이를 우아하게 은쟁반에다 받쳐 먹든,
클럽 뛰다가 야밤에 덜덜 떨며 홍대 노상 트럭 포장마차 조폭 떡볶이를 사 먹든
야근수당 없이 하루를 바쳐 일하고 나오는 퇴근길에 집 근처 편의점에서 컵떡볶이를 사다 끓여먹든

우리 인생은 그 중간 어디쯤을 막연하게 흐르겠지.

이 글을 읽는 당신과 소주에 떡볶이를 이든 혹은 마카롱에(이런 과자였구나 ㅠㅠ 한국에서 먹은 마카롱은 구라야!!!) 라떼 한 잔을 기울이든,
언젠가 한번쯤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내 넘치는 욕심이리라.
아직 포기하지 못한 욕심 중에 사람 욕심이 있구나, 싶다.

당신이 먹은 떡볶이에 붙은 세금을 내고도 친구들에게 밥 한 끼를 살 수 있는 여유가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부자가 아닌가 싶다.
친구와 여유와 시간이 있고 약간의 돈이 있으면 풍족한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생각이 아직 철이 덜 든 소녀감성이라고 또 누군가는 비웃을 테지만 :b

서러움도 행복도 사랑도 열정도 분노도,
다 인생 한 페이지, 페이지의 일부.

세금 벌러 한국 가는구나 하고 결론을 내리기엔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직 너무 훈훈하고
떡볶이 먹을 돈 벌어야겠다 하며 웃어넘기기에는 한국의 초라한 정치현실이 매섭게 춥다.

그래서 한국 떡볶이는, 대구 신떡은
그렇게 눈물콧물 뽑아내게 매우나보다?! (아 뭐 결론 이래-_-;;)

잘 살아야겠다. 저런 서러운 사진 한 장에 담긴 사람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와 마음들, 나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아후.





by 아이 | 2008/02/23 20:13 | Scrap & Tag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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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란돌 at 2008/02/23 21:15
어느 때 부터인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심하거나 음모라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듯 싶습니다. 안타깝습니다.
Commented at 2008/02/23 23: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2/24 00: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2/24 04: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2/24 05: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8/02/25 11:44
란돌 // 사물을 보는 다양한 시점이죠. 의심도 해 줘야 사기 칠 맘 먹는 사람들도 적어지지 않을까요?^^

비공개 // 남과 비교한다면 끝도 없는 것 같아요.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두고 키를 쟤보는 쪽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충실히 살아오셨을 거라 믿어요.

비공개 2 // 아니예요; 글이 무겁게 느껴지셨다면 제 마음이 무거웠던 탓이죠^^; 축하 감사합니다 :) 네, 큰 은총이예요. 정말루요.

비공개 3 // 거절하고 물러나는 이를 일부러 붙들어 두려는 사람은 없지. 잘.

비고애 4 // 네 인제 0살입니다^^ 감사해요!
Commented by 아이 at 2009/01/10 07:20
언제 연애를 제대로 할까, 생각하던 친구가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단다. 맘이 묘하지만, 너무 너무 축하해! 보고싶다. 그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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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펴고,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조근조근. 감사하며 먹고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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