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중순을 걷는 20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살아가는 장소, 사회적 위치, 매일 입는 옷, 하는 일, 내 표정, 말투, 주변 사람들, 관계...

아주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평온하고 아주 가끔 불안하고 언제나 유유자적하다.

한동안 이글루에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방문객에 놀랐고, 그 숫자들 가운데 당신이 있을까 두려웠다.
아주 조금.
하지만 그 숫자는 오래 전부터 고정적이였고-
나는 그저 아무 것도 끄적여 대기가 싫었던 거다.

보여지는 것도 읽는 일도 그저 착각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으니까.
그 감정 때문인지, 한국에서 알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기가 어렵다.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과는 연락을 주고 받지만,
아직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다행히 시간은 여전히 지나가고
나는 그 흐름 안에서 나이를 먹어간다.

이 평온함은 너무 적막하고 고요해서 두려울 정도다.

매일 매일 여기저기서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 태어나고
아이들은 자라고 노인들은 늙어간다.

누군가는 웃고 또 누군가는 울고 어떤 비율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수 없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사람들은 지구 상에서 소비와 경제력을 알아주지만 행복지수는 바닥을 기고
멀리 얼굴이 까맣고 이와 눈이 하얀 사람들은 웃음을 짓는다.

타인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연봉을 따지고 다이어트를 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끼고 살고 초조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생각해 본다.
우리가 가엾게 생각하는 이들은 어쩌면 우리를 가엾게 생각 할런지도 모른다. 

.........................................................

아버지 환갑을 보내며 이글루에서나 보던 코스식 한정식도 먹고
오랫만에 친척 모두가 모여서 시끌벅적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너무 훌쩍 커서 놀랬다.
내가 똥지저귀를 갈아주고 업어키우던 사촌여동생은 내 키만큼 큰데다가 염색까지 한 중딩이 되었다.
하얀 얼굴이 귀엽던 미소년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진로 이야기를 하고
어른들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은데 아이들이 너무 훌쩍 커버렸다.
내가 알던, 내가 손 잡고 놀러 다니고 업어주고 우윳병을 물렸던 아가야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거야?!

동생 내외랑 같이 (올케란 말은 절대 입에 붙지 않아) 산소 탐방?!
조상님들께 집안에 새식구가 들어왔다고 인사를 드렸다.
묘소가 있는 산은 얼음이 녹으며 바닥에 진흙이 미끄덩하게 마른 풀들과 함께라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게 힘들었다.
경사도 가파르고해서.

...
혼자서 할을 휘적대며 내려가는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앞에서는 아버지께서 어머니 손을 조심히 잡아주시며
뒤에서는 남동생이 새신부를 거의 업다시피 하며 내려오고 있더라.

... 엄미 이거 쌍염장?^^;;
그래도 별로 부럽다거나 한 건 아니였지만.. 음.. 아니다 좀 부러웠던 거 같다;;;;;;;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혼자 다릴 후들대며 앞 뒤로 펼쳐지는 훈훈한 광경에 별로 염장이나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 스스로를 초큼 대견해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부러운 것도 같다.
흠?; 하지만 내 다리는 죠낸 튼튼하고, 산길을 혼자 오르내릴 정도로 굳세지 아니한가. 개아나 개아나.

.................................................

몰랐던 거지만 난 성격적 결벽증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렇다고 타인에게까지 그걸 강요하면 안 되는데-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걸- 그니까 쉽게 말해서 까는 걸- 참 싫어한다.
사람이니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건데; 그 쪽으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른가-_-

그런 식으로 불만스러운 것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내가 관계없는 사람이면 그냥 그런가 하고 별 생각이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알 수 없게 맘이 불편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인간이였던가? 참 더럽다;

흐음.
싫은 부분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누군라를 씹는 것도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버려 두면 흘러 사라질 일들인데
나는 이제껏 잘 해보려다 늘 그 틈에 끼여서 일을 망치곤 했지.

그니까-

let' it be.

아부지한테까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고.
후아.

......................................................................


한 때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뭐 지금도 너무나 좋아하는- 언니랑 오랫만에 msn으로 이야기를 하는 데 이유없이 눈물이 주륵 흘렀다.
몇 달만이람; 이런 눈물;
뭐랄까... 2000년도 초반에 막 가슴 설레고 매일 같이 아주 작은 일들에 흥분하고 또 놀라워 하고 필요 이상으로 감수성이 미치게; 예민했던 어린 나를 알고, 또 같이 그 시간을 보냈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켜켜히 (겹겹+첩첩+칸칸..의 이미지) 쌓인 세월의 무게라던가 굳어진 심장 한 구석을 허물기 충분한 일이다.

프랑스에서의 그녀는 분명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처럼 반짝 반짝 투명하게 빛나고 있겠지.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보다 조금 어두운 머리색에 조금 더 짧은 머릴 하고 있는 나는
8년 전의 여름을 기억한다.

그 때 한 자리에 있던 누군가는 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언니는 이혼을 하고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일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언닌 어학연수 이후에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 때 다들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에나 단 한 명도.

시간은 이렇게 흐르는 건 가보다.

......................................................

프랑스에는 편의점이 없다고 한다.
파리로 떠난 에반젤린이 한밤중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문을 연 가게를 찾아다닌 에피소드가 떠오르더라.

나는 인종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


남들 보기에 참 배부르고 팔자 좋은 나는 취업의 문 앞에서 두려움에 떨다가 무수히 많은 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 두 번에 일자리를 구해버렸다.

-_-;

내가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것은,
너무 갑작스럽고 어안이 벙벙해서 + 요즘의 내가 필요 이상으로 무덤덤해져서 일 것이다.

면접보러 다닌 하루만에 일을 구하다니. 좀.. 이상하다;

그리고 지금 지내는 여기에서는 한 시간 거리라서 좀 막막하다.
젠장 집에서 옷도 안 가져와서 정장 같은 거 없는데..orz

블라우스 두 어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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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바로 전 날 아버지께서 전화 하셔서 계좌 번호를 묻고 돈을 주셔서 속상해서 울었었다.
학교 다닐 때 동생 과외비를 내 생활비로 받았었을 때처럼 속상하고 우울하고 서럽진 않았지만 너무 많이 죄송했기에.

모르겠다, 없으면 서러운데 막 욕심이 나지 않는 건
한때 너무 불 타올라서인지도.

언젠가 아버지께 새로운 차를 사드리고 싶은 소박한 서민 A양.

...................................................................

그러니까 어제, 모든 것이 시작된 기분이다.
금요일의 화이트 데이.
3시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고 다시 돌아가서 일을 시작했고; 6시에 혼자 퇴근했고 누군가를 만났다.

누군가를 그 정도 각도로 올려다 보는 건 1999년도 이후 처음인 것 같은 기분이였고-
내가 웃는 순간에도 그 사람은 내가 슬퍼보인다고 했다.         ;
젠장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슬픈 얼굴로 웃는 여자가 되었나보다 아후;

압구정과 신사동 거리는 추웠다. 군청색 버버리 코트에 연회색 블라우스 정장 차림의 나는 너무 추워서 많이 떨었는데-
어떤 여자들은 오프숄더 블라우스에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당당히 웃으며 거리를 활보하더라.
개인차인가? 나만 추운 거야?

하지만 낮은 평온한 햇살이 참 예쁘고, 회사의 내 자리에서는 바깥이 잘 보인다. 다행이지, 다행.




사람들이 이 곳에서 무엇을 보든 그건 내 주절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만나지 않은 사람들을 오프 라인에서 마주칠 확률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자체로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죽은 여자아이와 여성들의 부고 앞에 머리를 숙이고 평안을 기도한다.

살아갈 나날들이 더 많이 남은 사람으로 당연히.




없애버릴까 하다가 내버려둔다.

부끄러운 것들 투성이긴 하지만 뭐-.

왠지 아직 때가 아닌 거 같아서.
(라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귀찮고 아까운 거다. 헛헛헛)

[절대 ---를 할거야/하지 않겠어.]
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나는 가능성을 지닌 인간이기에.

많은 것을 소비하는데, 만들어 내는 것은 무료함밖에 없다면 참 슬픈 일일거라 생각했지만
그 어떤 이벤트도 즐겁지 않은 무덤덤한 사람이 있고
세상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일들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사람이 있다.

인풋과 아웃풋의 관계는 늘 일정한 것은 아닌 법이다.








서른이 지나면 내게도 사건을 서술하는 능력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감정을 묘사하느라 쓴 시간들과 거기서 도피하는데 쓴 시간들 덕에 게으름이 늘었다.
참말로우야믄좋노.

담 주 금요일엔, 대구에 다녀와야지.

너에겐 뭐라고 말해야하지.
취업이 미안한 건 내가 그녀랑 더 같이 있을 거라고, 나 자신도 믿고 있었기 때문에.




by 아이 | 2008/03/15 17:30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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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暗雲姬 at 2008/03/16 09:06
그러니까...백조는 훨훨 날아간 셈이네요.^^
축하해요!
Commented by 아이 at 2008/03/16 22:02
暗雲嬉 // 서울 온지 삼 일만에 덜컥!!!...되어버려 좀 어리둥절 하지만^^;
축하 감사해요 언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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