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잠을 설친 탓에 어질어질하는 머리로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문이 열리고 들어서자마자 일간 무가지 신문을 보는 여성분. 신문 뒷 면의 협상에 관한 카피 한 줄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
더러운 결정.
화들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어려운 결정, 이더라. 이런 제길. 그게 어려운 결정이였으면 코스타리카는 협상에 목숨 걸었겠다?
(이미지 출처 기사 링크. 경찰 진압이 약했다고? 시위대 손가락 잘린 건? 물대포 쏘는 게 잘했다는 거냐)
어제 학원 수업을 마치고 잠시 고민하다가 세종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 사람들이 있더라. 드문 드문 모인 사람들을 보며 대낮에 있었을 광경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한참 혼자서 무리에 섞여 서 있으며 함께 구호를 외치다가, 서대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가 다시 세종로에서 함께 했다.
고작 몇 시간이였다.
소화기 분말 가루가 안개처럼 자욱한 곳에 있었다. 눈이 따갑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피부도 간지럽고 따끔거리고. 사람들은 다들 짧은 반 팔의 얇은 여름 옷 차림이였다. 직접 맞은 것도 아니고 뒷편에 있던 내게도 독했는데, 직접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 속은 어땠을까.
먹히지 않을 경고를 외치는 시민연대측 여자분 목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구호를 제대로 외치지 못했던 나는 돌아갈 때쯤엔 목소리가 쉬어 잘 나오지도 않던데. 전경차에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 독한 분말 가루를 고스란히 다 맞았을텐데, 새삼 걱정이 되더라. 세종로 사거리에는 가족과 함께 나온 아이들도 있었고 연로하신 분들도 계셨는데. 자욱한 소화기 분말 연기 사이로 보이는, 아이를 끌어안으신 아주머니 모습에 맘이 찡했다. 멀찌기서 함께 하시던 나이 지긋하신 수녀님들은 피곤하신 안색이 역력했다.
늘 그렇듯 막차가 끊기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서대문-종각-종로-종로3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 바로 몇 발자국, 몇 분만 그 자리에서 걸어나오면 분위기는 정말 틀리다. 종로의 떠들썩한 네온사인 가즉한 밤거리와, 세종로의 구호 소리와 촛불이 있고 닭장차로 막힌 거리의 모습. 서울에서 차로 몇 시간이면 도착하는 북한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현실과 다이어트로 고생하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도 저기 위에서 보기에는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가지를 읽다가 알았다. 국내 한 대학 ㅇㅇ대에서는 쇠고기 수입 반대 서명용지를 총학에서 찢기도 하고 집회 반대도 했었구나. 또 어떤 대학 학생들은 움직임이 없는 총회에 불만의 소리를 내기도 했구나.
세종로 길에 설치된 지도를 보면, 이순싱 장군 동상 너머 경복궁 뒤 청와대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보인다. 그런데 참, 마음의 거리는 멀고 멀다.
전경 진압은 신데렐라들인지 늘 12시 자정이 지나면 물대포를 쏘고 사람들을 방패로 내리찍는다. 손가락을 잃은 사람, 에젯밤 집단 구타 당한 친구의 피범벅된 얼굴을 보았노라 말하는 블로거. 나는 12시가 넘고도 2시 3시가 넘어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남아서 함께 할까 생각했었는데, 회사에 출근을 해야했다.
29일에는 1박2일 회사 야유회라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혼자라도, 마음이 답답해도- 오늘 밤부터는 학원이 끝나면 꼭, 광장에 들렀다 집으로 향해야겠다.
촛불을 내려놓기에 아직 이른 시간이라는 걸 어제 대낮에 닭장차에 실려가던 열두살 아이의 사진이 알려주었다.
남북한을 가른 것은 이념이 아니라 욕심이였다고 늘 생각했다. 자신들이 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세력들의 욕심. 6.25 어제 하루 동안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고 한 나라 사람들끼리 밤을 세워가며 대치하도록 만든 것도 바로 같은 것 아닐까.
민주노동당이나 모 모 대학의 깃발을 보며 나는 어제 블로그에서 본 깃대를 떠올렸다. 작살처럼 생긴, 창처럼 생긴 깃대를. 누가 무엇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깃발을 드는가. 나는 왜 불편한 마음으로 광장으로 향하는가.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더 울리려 하는가. 더 이상, 더러운 결정을 어려운 결정으로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무거운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은데.
기운 빠진다, 자꾸만.
12시가 지나면 태도가 달라지는 전경. 위에서 유리구두라도 신겨주나?
광화문쪽 GS25 알바생들 힘들겠더라. 어제 마스크가 전부 동나고 생수도 떨어지고..
잠을 못 자서 그런가 기운이 자꾸 떨어지네. 오늘 밤에는 잠 좀 제대로 자고 싶다.
6월25일, 세종로사거리, 광화문근처, 서대문, 종로, 종각, 종로3가, 어려운결정, 더러운결정, 뭐가중요한거지, 마음이힘들다, 제대로살기어렵네, 이기고지는문제가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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