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 나는 그 곳에 있었다.




어제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관련 기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35320

보통 때와 달리 악취가 심했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깨진 날 계란 껍질이 뒹굴었고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나중에야 그것이 살수차의 물대포 흔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 수 없는 시큼한 썩은 내, 땀냄새 같은 것들에 구역질이 났다.
나만 그런 악취를 맡는 것은 아닐 텐데,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우의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촛불을 들고 시위를 했다. 국회의원들이 와서 이순신 동상 앞에 새워둔 닭장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갔다.
거기가 무슨 새나라의 포토존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진만 찍고 돌아가려는 의원들을 둘러싸고 시민들은 앞장서라며 구호를 외쳤고 그 분들은 어렵게 어렵게 돌아갔다.

길에는 사람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무언가를 나르고 있었다. 흙을 담은 주머니였다. 그것을 쌓아올려 닭장차를 넘어 청와대로 가려는 것이다.
광장의 기자나 시민들도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지만, 닭장차 너머의 전경들도 작은 디카로 아래의 시민들을 찍더라.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실려오는 흙 주머니의 행렬을 따라가 보았다.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긴 긴 줄. 학생도 회사원도 아주머니도 수녀님도 다 같이 으쌰 으쌰 주머니를 날랐다. 그 행렬에 끼여 함께 하고 싶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모습을 보이던 물대포가 벌써부터 나왔다. 소화기 분말에 물에.. 공기가 달랐다. 바로 옆인 종각이나 종로 쪽과, 소리도 공기 중의 내음도, 진동도 모든 게 달랐다. 몇 백 미터 안인데 전혀 다른 세상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장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의지라던가 울림이 느껴지는 공기 안에 내가 있었다.
실제로 본 살수차는 무서웠다. 마치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 위력에 쓰러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앞서서 길을 뚫으려는 이들이다. 나는 언제나 가장 뒤에서 떨고 있을 뿐이다. 나는 투사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겁이 많고 답답한 그저 한 명의 일반인일 뿐이다.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옆의 아주머니는 저 물 수도세 다 매겨서 청와대로 고지서를 보내야 된다고 소리쳤다. 어차피 우리가 낸 세금인 것을.

긴 긴 사람의 줄을 따라 올라가 보니 시네큐브 옆 한 공사장이더라. 거기서 공사장 흙 주머니가 만들어져서 옮겨지더라.
그래도 되는 걸까. 여기 공사장 흙을 사용해도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위여부를 알아볼 수도 없고 그런 생각보다 몇 시간째 그 많은 흙들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운반한다는 사실 자체가- 눈으로 지켜보니 참 대단하다 싶더라.

서대문쪽에서 종로 3가로 걷는 시간을 생각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쌓여있는 흙주머니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세종로 방향으로 향했다. 어깨와 손이 뻐근한 게 정말 무거웠다.
구두를 신고 긴 치마에 양 손에는 모래 주머니를 든 채 국민토성(네이밍 센스 한 번 대단하다. 우리 국민들)을 향했다.
흙이 많이 담긴 거라 힘이 들었다. 몇 번을 쉬었다가 들고 다시 걸었다.

중간에 도로에 흙이 쏟아지거나 하자 운반하던 사람들이 다들 자진해서 인도로 행렬을 옮기자고 하며 줄을 이동하더라.
사람들도 모두 지키고 싶은 거다. 깨끗이, 피해 주고 싶지 않은 거다.

모래 주머니를 들고 닭장차 앞 국민산성 앞으로 향했다. 여전히 썩는 냄새와 땀 냄새 같은 것이 뒤범벅이 된 그 자리에- 나라면 한 시간도 못 버틸 것 같은 그 곳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닭장차 바로 앞까지 갔다. 모래주머니를 쌓는 분이 내가 들고 온 주머니 두 개를 받아 주셨다. 까끌한 포대에 손바닥이 아프고 어깨가 후들거렸다. 체력이 필요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온걸까. 학생들과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또 나이 드신 연로하신 분들과 수녀님.
다들 자기 일이 있을 터인데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해야했을까.
마음이 시키는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고 그 정도면 할만큼 한 거라고 이제 됐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지금부터라고 소리치는 이들이 그 곳에 있다.
마음이 왜 불편한가. 양심이 있고, 현실을 보고, 아니라고 말하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오면 여기에 오게 되니까.

고작 두 개의 주머니를 옮기고서 집으로 향했다. 출근은 내 발목을 잡는다. 종로쪽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교통 불편으로 짜증이 가득한 얼굴. 나는 그들의 마음도 안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낮에- 엄마가 전화로 적어도 시민들한테 불편을 주지 않아야 할 거 아니냐며 나한테 화를 내셨다. 어제 대구에서 열린 촛불집회 때문에 차가 다니기 힘들어서 혼났다고 하시며 말이다. 나 역시 화가 났지만 꾸욱 참았다. 일일이 하나 하나를 들며 엄마를 이해시킬 기력이 없었고 자신도 없었다. 멀리 계신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릴 수 있는 딸이 되려고 내가 포기한 것들이 떠올랐지만, 입을 다물었다. 말을 시작했다가 짜증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와서.

나도 이제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막무가내에 거짓말투성이 정부. 그만 두었다 말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시행하면 모를 줄 알았던가? 아니 모를 수도 있다. 언론을 막고, 국민이 정부의 하는 짓을 모르면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맡겨두고 쉴 수 있다.그런데 알잖아. 알 수 밖에 없잖아. 화가 치밀고 분노가 쌓이면 다치는 건 스스로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제어가 되지 않는다.
냉정해지고 싶다. 

종로3가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내 머리 끄댕이를, 양희은씨 목소리의 아침이슬이 잡아 끄는 것 같았다. 
그냥 눈을 감아 버렸으면 좋겠다. 몸 상하고 마음 상하고 이렇게 껄끄러운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는 게 참 싫다.
그저 유쾌하고 신나고 즐겁게 보내는 매일이면 좋겠는데. 내게서 일상을 빼앗아 가고, 사람들에게 교통 불편 통해 방해.. 민심 불안 같은 것을 심어 준 건 누구일까. 시대의 흐름도, 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정부를 가리키게 되는 건- 그들이 우리나라를, 자신들만을 위한 왕국으로 만들어 가려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며, 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고작 몇 시간에 이렇게 피로감이 몰려오고 지치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밤을 새우고 그 성난 기세를 멈추지 않을까.
모래 주머니를 쥐었던 손에서는 냄새가 났다. 나는 내 마음의 냄새가 그것보다 더 구리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오늘을 산다.

앞으로 태어나는 생명들과 자라는 아이들이 살아간다는 자체가 투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굶어서 기운없는 생기 잃은 눈들과 분노에 찬 시선들. 정신건강에 참, 안 좋은 것들.

힘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기를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없다면, 그 무거움을 느끼는 순간들이나마 줄어 들기를 바란다.
마음이 불편하다. 아는만큼 불편하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 속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by 아이 | 2008/06/27 11:39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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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6/27 14: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8/07/05 11:41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져 가고 있으니 힘들고 어려워도 참여하고 지켜보며 나아지리라 믿어요.
Commented at 2008/06/28 03: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8/07/05 11:42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은걸요? ^^
그래도 다행이다 싶지요.
끌어올려지는 것들 앞에서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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