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일요일 오후. 6시에 종각에서 친구를 만나서 시청으로 향했다. 오랫만에 만난 그녀는 좀 지쳐보였다. 바쁜 일상에, 또 화가 치미는 현 정국 앞에서- 휘둘리며 사는 느낌. 그래도 만나니 참 좋더라.
손을 잡고 시청으로 향했다. 모인 사람들의 수는 적었고 차량이라던가 위원회,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 (나중에 들은 바로는 두어시간 전에 사람들을 잡아가고 관련 차량도 다 끌려 갔다더라) 넓은 시청 앞 광장은 닭장차로 둘러 싸여 있었다. 프라자 호텔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까맣게 모여든 전경들과 사람들. 시청역 출구 앞 횡단보도를 전경들이 막아섰다. 길을 건너려던 시민들과 마주해서 또 대립구도. 커다란 방패를 앞세워서 사람들을 밀어 부치는 모습을, 광경을 코 앞에서 보았다. 사람 한 명이 나동그라지면 엎어진 사람 위로 달려드는 전경 모습도 보았다. 놀라고 무섭고. 때리지 마세요! 소리치는 친구와 시민들. 전경들은 손으로 사람들을 밀쳤다. 백주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 바로 코 앞에서 본 전경들은 내 남동생보다 어릴 듯한 남자애들이였는데, 참 이상했다. 눈물이 글썽해서 꾹 참고 그들을 노려보던데,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더라. 푹 고개를 숙여버리더라.
그래 불쌍한 것들 싶다가도 몇 몇의 사람들 때문에 그런 생각이 다 날아가곤 한다. 분명 저들이 아닌 시킨 이들의 잘못이지. 그렇지만 시켜서 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왜 그걸 몰라. 속이 타.
한참을 티격태격(이런 가벼운 표현을 써도 좋을까, 나는 정말 글빨이 딸리는구나 싶어 답답하다. 겪은 걸 왜 말을 못해.싶고.) 그러다 사람들은 시청 광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미 시청 앞은 전경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어서- 너네는 거기 있어라, 우리는 다른 데로 간다! 하며 자리를 옮겼다.
몇 번이고 뒤돌아 본 너른 시청 앞 광장. 해가 지던 여름 저녁 하늘과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분위기의 사람들과 또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반은 말라 죽은 잔디밭. 우리가 걸어온 길 그대로 거리로 향했다. 뒤늦게 모이는 사람들이 따라오기에, 조금 천천히 가자는 소리가 들렸고 걸음을 늦추었다. 다행히 8시까지는 차 없는 거리라 사람들이 행진하기 수월했다.
종로쪽으로 향하는데 전경들이 따라온다. 청계천을 사이로 두고 멀리, 아니 바로 옆에서 걸음을 맞추어 혹은 뛰며 무리를 쫓는 또 하나의 무리들. 구호를 외치며 걷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친구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또 뛰기도 하고 그랬다. 혼자서 시위에 참여하던 시간들보다 마음이 더 낫더라.
청계천 다리 위에서 거리 공연을 하던 연주단을 사이로 하고 전경들과 시민들은 숨바꼭질하듯 뛰고 멈추길 반복했다. 마치 전쟁터 속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던 한 CF장면처럼 기이한 풍경이였다.
길 한 복판에서 사람들을 잡아가고, 또 때리고 그랬다. 악몽같은 장면을 초저녁 햇빛 아래서 생생히 보며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했고 전경 손에 저리 비키라고 떠밀리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나 친구도 넘어져서 함께 맞을 뻔한 상황이였는데.
시민연대나 그런 단체들이 없어서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명동쪽으로, 명동 성당을 지났다가 다시 시청쪽으로 갔다가 종로로 향했다. 사복 경찰이 바로 우리들이 걷는 보도 너머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며 무전기로 사태를 전달하더라. 빤히 보이는 그 모습 앞에서 그저 구호를 외치거나 걷는 것 외엔 할 수 없어 답답했다. 오래 걸을수록 무리는 줄어들었다.
중간 중간 전경들이 뛰어 들어 무리의 줄을 끊어서 사람들은 끊어진 무리들로 모여 각자 행진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잡혀가는 이들도 있었고. 행진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 뛰다 나동그라지는데 쏜살같이 그 위를 덮치는 전경 한 명에 놀라서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말리고.. 무섭더라, 참. 눈물나게 분하더라, 참. 근데 어이없고 우스운 것도 봤다. 우리를 향해 이리 와서 붙어보자는 식으로 욕을 하며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전경. 어려보이는 남자애, 혈기 가득한 표정. 정말 무섭던 것은, 뛰어가는 전경 무리들 사이에서 드문 드문 보이는 신나하는 표정이나 분위기였다.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물론 내 착각이길 바란다) 소수의 몇 몇.
종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차도는 전경들로 차고 인도는 시위대와 시민들로 차서 행진이 끊기었다. 차도와 인도. 가로수들 사이로 멈춰서서 우리는 항의하고 구호를 외치고. 어째서 맨 손의 사람들에게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마주하는지, 부끄럽지 않으냐고 속이 상해 외쳤다.
나보다 더 작고 여려보이는 내 친구는 나보다 더 재빠르고 강하고 침착해서- 그녀와 함께 있으며 참 많이 든든했다. 위안이 되었고 고마웠다.
결국 쫓고 쫓기며 게릴라식 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종각에서 멈출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모였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행렬에서 빠졌다가 해가 지고서야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참 기뻤다. 아까 몇 안되던 사람들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함께 하고 있어서. 촛불을 들고 함께 앉아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기뻤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주어서. 민중가요 같은 것들을 잘 몰라 버벅이고 있으려니 친구가 옆에서 한 소절씩 가사를 알려줘 같이 부를 수 있었다.
언제 들어도 늘 청아한 목소리인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은 굉장히 와 닿는다.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 졌던 이 땅에 피울음있다 부둥긴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피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어찌 주저 하리오 다시서는 저 들판에서 움겨쥔 뜨거운 흙이여]
내가 처음 부르며 학교에서 이런 것 배운 적 없는데 했더니 친구가 웃으며 여대 언니들이 더 무서운데 그랬다. 부끄러워 슬쩍 웃고 말았다.
장마가 오려는지 바람이 거세고 차가웠다. 몇 번이나 촛불이 꺼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을 빌려야 했다. 모자를 쓴 작은 꼬마애가 촛불을 나눠주면서 우리 주변에 있었는데 그 아이가 든 촛불은 잘 꺼지지도 않더라, 신기하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참 고마웠다.
앉아서 함께 하다가, 11시쯤 일어섰던 것 같다. 월요일인 내일 나는 출근, 친구는 학교에 가야 하니까.
돌아가는 길에서는, 늘 광화문 주변만 물들이던 촛불 불빛들이 오랫만에 종로 쪽에 보이는구나 싶더라. 손을 잡고 친구와 걸으며 역으로, 집으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낮에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밤이 되어 또 어떻게 나올지 걱정을 하면서 돌아갔다.
그래도, 눈물이 글썽 나오고 놀라고 무섭던 낮보다 우리 웃으며 또 만나자, 하고 돌아갈 수 있던 하루였다.
http://blog.naver.com/hrimmy/10032590368
아아. 사실은. 내가 얼마나 친구와 함께 있으며 위안을 얻고 지금 시대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았는지 - 한 뼘, 두어 발자국 너머 마주한 전경(아이)들의 눈빛과 땀냄새. 억센 손과 사람들의 분해하던 모습과 달리며 떠올랐던 오만가지 생각이랑.
제대로 쓰고 싶었는데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 적지 못한 기분이다. 답답하다. 절실할수록 전해지지 않는다. 젠장.젠장덴장. 에잇에잇. 답답해. 제대로 된 표현 같은 것이 떠오르질 않아서 적지 않으려다 그냥 쓴다. 답답해도 내 한계가 고작 여기인걸 우째. 아휴ㅂㅂ. 뭔가를 누구에게 전하고 싶다기보다 그저 내가 겪었던 것들이나 내 생각 느낀 점만을 제대로 옮기고 싶은 건데 그 제대로라는 거 정말 어렵구나.
나 진짜 글 못 쓰는구나.
...
급박할 때, 뛰거나 아니면 바로 코 앞에서 전경들이랑 부딪쳤을 때는 카메라를 꺼낼 수 없었지만 가끔 카메라를 꺼내 보이는 것들을 찍었다. 근데 저번 집회때 아스팔트 위에 떨어 뜨린 이후로 고장나서 버튼도 작동하지 않고(줌도 안되고;) 사람들 초상권도 걱정되서(그래서 가급적 손을 올려 전체를 담으려고 했다. 찍을 때마다) 올리지 말까 하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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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아이 | 2008/07/01 16:04 | 韓國日記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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