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초등학교 3학년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우리 집의 식단은 참 간소화되었었다. 주말이면 짜파게티를 동생과 둘이서 해 먹었고, 나는 내가 좋아하던 감자볶음에 초고추장을 비벼 밥 한 끼를 해결하곤 했다. 음식 투정 같은 걸 모르던, 키우기 쉬운 아들딸이였다. 나와 동생은.
아마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셨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 특히 어머니를 대신해서 우리 남매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 조금 더 살아계셨더라면 분명 도시락에 대한 내 기억은 달라졌겠지.
어머니는 많이 바쁘셨다. 학원과 미용실을 동시에 경영하시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이 참 많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지친 모습을 알기에 더더욱 반찬 투정 같은 걸 할 수가 없었다. 학교가 마치고 비가 오는 귀가길에 우산을 가지고 학교로 찾아오는 어머니들을 보거나- 아니면 학교 행사에 함께 어울리는 어머니들을 보아도, 그냥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넘겼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힘드시니까 투정 같은 것은 부리면 안 된다.]
는 것이 그 시절 내 생각이였다. 어째 지금보다 더 성숙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어머니는 요리를 참 잘하신다. 하지만 바쁜 워킹맘에게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초등학교때부터 내 도시락은 밑반찬들로 꾸며졌고 종목은 김치,콩자반,동그랑땡,계란말이 같은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였다. 아니면 볶음밥. 그치만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주눅 들거나 하진 않았다. 다른 집 멸치볶음은 잔멸치를 써서 고소하고 맛이 좋았고(울 집은 다시용을 써서 별로였지^^;) 콩고기 같은 음식도 처음 먹어보았다.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점심시간을 참 좋아했다.
그렇지만 내 도시락에 대한 기억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내가 함께 도시락을 먹던 친한 친구들은 일반적인 도시락이 아니라 5합짜리 커다란 도시락통에, 디저트나 국통을 따로 챙겨올만큼 휘황찬란한 도시락이였다. 수성구의 알아주는 학부모님들 자제니까 뭐, 당연했지. 그리고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철없는 아이들이였으니- 당연했지. 라고 생각한다.
별 건 아니였다. 여느 때처럼 갖가지 재료를 써서 알록달록 예쁘게 만들어진 친구들의 도시락 앞에서 내 도시락을 열었는데- 그날따라 콩자반이랑 단무지던가, 콩자반에 김치던가가 찬으로 들어 있었다.
내 반찬을 본 친구는 웃으며 너무하다는 듯 말했다.
"반찬 너무 심하다. 혹시 너네 엄마 계모 아니야?"
...
그 날 내가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치만 내가 화장실에서(이 때부터 화장실 울음녀의 전설이 시작되었던가-_-;;) 울면서, "우리 엄마 계모 아닌데, 진짜 우리 엄만데.." 그랬던 건 기억난다.
그 날 집에 돌아와서 퇴근하신 어머니께 속상한 소릴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몇 번 도시락 반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는, 우리 집은 다른 집이랑 틀리잖니. 엄마는 바쁘고, 라며 늘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답을 하셨다. 알고 있었다. 바뀌지 않으리라는 건.
그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다가 다른 그룹의 친구들과 어울려 밥을 먹는 걸로 내가 바뀌었던 건 기억난다. 어쩌면 그 친구는 얄미웠을지도 모른다. 같이 반찬을 나눠 먹는데 내 찬은 허름한 것들이라서. 아니, 그저 농담 삼아 한 말인데 내가 너무 두고 두고 상처로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강남 8학군을 능가하는 수성구 1학군 학교들을 다니며 내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박탈감 같은 것들이였다. 차곡 차곡 쌓였던 그 상처들을 대변하는 기억 하나가 도시락에 대한 기억이겠지.
우리 집이 못 사는 건 절대 아니였다. 그저 우리 부모님들께서는 다른 집들보다 조금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셨, 아니 관심을 표현해 줄 여유가 없으셨던 것 뿐이다. 그게 어린 나에게는 나름 상처였던 것뿐이고.
도시락을 함께 먹는 건 참 좋다. 다른 집은 말린 감자를 튀겨 찬으로 먹는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내가 평소에 알지 못했던 반찬들이나 맛도 알 수 있었고. 어느 친구네 찬은 좀 짰고, 또 누구 건 싱거웠고, 또 누구네 건 좀 달았다. 같은 연근 조림이나 나물무침, 김치, 멸치볶음인데도 맛도 색도 다 달랐다. 다양했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 (내 경우에는 특히 제사 지낸 다음 날 도시락 가져가는 걸 제일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었던, 아니 행복하고 즐거웠던 도시락은 중학교땐가 고등학교때다. 10명 정도(처음엔 5-6명이였는데 갈수록 다른 아이들이 끼워 달래서 늘었다^^;)의 아이들이 모여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거다. 밥 담당, 콩나물담당, 김치랑 시금치 담당, 또 여러 비빔밥 재료 담당을 한 명씩 맡았고, 나는 계란이랑 고추장 담당이였다. 도시락 싸는 게 편해져서 어머니도 그 때를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커다란 스테인레스 양푼에 재료들을 하데 넣고 썩썩 비벼서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었다. 다양한 재료들이 맛깔나게 버무려져서 고소한 비빔밥이 만들어지고, 그걸 각자 도시락통에 나누고는 한 숟갈씩 먹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으며 보낸 시간들. 친구라는 존재, 함께 밥을 먹는 한 식구라는 기분, 그 떠들썩하던 시간들이 그립다.
그리고 나는, 때때로 상처에 대해 생각한다. 괴로움에 대해 고민한다.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 사이에서 기준을 어떻게 어디로 맞추어야 하는지. 많이 가지고 있으면 나눌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던 단순함에서 벗어나서 다양함을 이해하는, 포용하는 능력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내 경험과 삶에서 나온 지식으로 배려를 생각한다. 예전에, 어릴 적 친구 집에서 무언가를 만질 때마다 일일이 친구의 동의를 구해서 그애를 귀찮게 만들었었는데 그걸로 면박을 받고서는 태도가 바뀌었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 집에서 묻지 않고 무언가를 만지는 걸로 친구에게 충고나 꾸지람을 들을 줄은 몰랐다. 일일이 하나 하나 동의를 구하는 것이 귀찮으려니 하고 어림짐작한 것이 잘못이다. 상대를 잘 파악해야한다. 나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에 맞추어 그와 함께 하는 시간에 내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장 좋다. 너무 깍듯이 예의 바른 태도도 누군가에겐 흠으로 보이는데 하물며 지키지 못한 예의가 지적을 받는 것이야 당연한 것 아닌가. 제대로 해야겠다, 쫌.
내가 어머니 처지였다면, 걍 도시락 직접 싸라고 하든 걍 돈으로 줬을 것 같은데; 역시 어머니는 대단하신 것 같다-_-; 뭐 어릴 때부터 밥이랑 반찬 간단한 것 정도는 했고.. 하긴 그덕에 요리 스킬도 늘어난거지;
학창 시절 에피소드 시리즈들 중, [첫 키스는 레몬맛]과 쌍벽을 이루는 [늬 엄마 계모래매]다 ㅎㅎ;;
대체 뭐가 그리 서러웠던 걸까;;=_= 꼽아보면, 초딩 때 비 오는 날 우산이랑 허접(이라 쓰고 엄마의 아침잠과 정성이 담긴으로 읽는다) 도시락, 소풍이랑 입학식, 그리고 야자 후에 차로 데리러 오는 거 정도? 확실히 울 학교가 아가씌즈 학교긴 했어-_-;;;
나 고3때 유란동산이랑 학교 1학년들 화장실에서 담배꽁초 나왔다고 친구와 함께 울상지으며 이제 울 학교 망했다고-_-;;(심각했다 당시엔;) 한숨 쉬던 기억이 난다;; 화초를 재배하던 온실 속에서 자라난 나는야 자칭 잡초!!!;;;
음 그리고 급식에 대한 기억은 이면수 기억나고- A+교재랑 급식비 삥땅해서 만화 재료 구입했던 기억들이;; (아망 언니들이 내 일러스트 누더기 스크린톤 보고 진짜 절묘하게 붙였다고 감탄했다;;;) 그립다 90년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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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아이 | 2008/08/06 13:01 | ㄴ글(시,소설,수필,동화,기사) | 트랙백(2) | 핑백(2)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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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펴고,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조근조근.
감사하며 먹고 사는 이야기.
by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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