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견디는 선크림은 여러 벗 덧발라 줘야지 한 번으로는 부족해요.


 유치하다


건물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찬 에어컨 바람에 익숙해 있던 피부가 움찔,하고 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열기를 띈 공기에는 햇살의 입자가 가득하다.
나는 빛으로 가득찬, 수만 수천의 태양으로 이루어진 바다 속에 몸을 내맡기는 것처럼 여름 날의 열기를 느낀다.
후끈후끈 열기에 지친 피부가 지잉하는 고장난 컴퓨터의 떨림처럼 운다.
피부에 새겨진 열기가 바알갛게 피부 표면으로 떠올라서, 흐르는 땀마저 마르는 태양의 열기에 운다. 우는 시늉을 한다.
아침에 바른 선크림도 이겨내지 못하나보다.
피부가 아프다. 아리다. 태양볕에 그을린 피부가.

분명 햇빝 아래서 뛰어 놀지 않는 내 성격이나 생활과도 관련이 있을거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이가 맵지도 않은 풋고추에 설삐-를 하듯이, 고기를 먹어본 적 없는 아이가 기름진 음식에 배탈이 나듯이
그저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어떤 것도, 익숙치 않은 내게는 커다랗게, 크고 크게 다가온다.
그것이 지나가고 분명 그 진동마저 꺼진 오늘에도, 지나간 흔적들이 그렇게 크고 진하게 남겨져 있는 것은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연애에, 이런 식의 끝에, 이런 결말에- 익숙치 않아서.

사회성을 쌓지 못하고 큰 아이가 어른의 몸과 이름표를 걸치고 사회로 뛰어 들어 느끼는 괴리감은 크다.
하지만 익숙해진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 그것이 유일한 구원이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이 내 가장 큰 장점인 것처럼 잃어버리는 데서 오는 슬픔만큼 자유로움에서 오는 기쁨도 크다.
슬픔과 우울의 나날에서 허우적거리던 내 발을 빼내어 실연의 모래밭 위에 내딛는 순간, 돌아갈 집과 편안한 레지던스의 에어컨과 침대가 떠오르며 기운이 빠진다. 지금은 긴장 가득하던 그 순간들의 끝에서 느끼는 기 맥없음의 기쁜 나날들.

피부가 따끔 따끔 아프다.

햇빝 아래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익숙해질수록 살 빛깔이 잘 익은 연갈색을 띄며 햇빛에 튼튼해지리라는 것을 안다.
분명 아프지 않게된다. 태양볕에 익숙해진 언젠가는.
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양산을 쓰고 썬크림을 바른다.
누군가의 눈에 환상적으로 예쁜 빛깔이던 내 과거의 갈색 피부는 내 눈에는 그저 그을린, 뭉친 때처럼 얼룩진 것으로만 보였기에.
아 그놈의 지긋지긋한 양놈 동화에 길들여진 내 미적 입맛이여, 사라진 본연의 취향이여.

분명 그와의 시간을 함께할수록 무뎌질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양산을 펴는 익숙한 동작처럼 그를 지운다.
어떤 것들은 내 것이 아니듯 그도 내 것이 아니였다.
노화된 심장은 격렬한 운동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 그을린 피부는 비싼 화이트닝 에센스 팩에도 금새 희게 돌아오진 못한다.

한밤 중 무거운, 졸린 눈꺼풀을 견뎌내며 세안을 하고 화이트닝 팩을 몸에 얼굴에 붙이는 기분으로 잠시 잠깐의 그리움을 견딘다.
양산을 내던지고 햇빛 아래로 뛰어 들어 달리고 싶은 충동은 사라졌다. 있는 줄도, 생긴 줄도 모르게.



고백하건대- 나는 갈색 피부를 탐낸 순간이 5분을 넘긴 적이 없다.
패션잡지 광고면에서 보여지는 윤기 흐르는 갈색 테닝 피부나 커다란 백화점 쇼윈도 너머의 구리빛 피부를 자랑하는 마네킹의 쭉 뻗은 다리. 혹은 홍대에서 지나가는 늘씬한 몸매의 젊은 말같은 느낌의 아가씨들을 눈으로 흘끗 흘끗 보며 내심 감탄하다가도 시선을 내 팔이나 다리로 돌리면서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단정짓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색들과는 맞지 않는, 내게는 너무 진한 색이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내 피부가 갈색으로 물들고서 어울리는 배경은, 세련된 도시의 거리, 번쩍이는 골드링이나 실버 스팽글 따위가 아닌 순박함이 뭍어나는 시골 감자밭의 초록 잎 가득한 밭 한가운데가 될 거다.
그래서 나는 잊는다.


바이 바이, 하는 인사도 한 번 건네지 않고.



인과 관계가 무척 엉망이지만 햇빛 가득한, 여름 열기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떠오른 묘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 썬크림은 시세이도 아넷사 워터프루프. 금색. 백탁현상도 없고 끈적이지도 기름지지도 않는다.
티내지 않는 흡수력 좋은 선크림이라 발라놓고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내 여름용 화장품.
피부색은 잘 변하지 않게 지켜줄 지언정 약한 피부가 열기에 데인 듯 화끈거리는 건 막아주지 못하나보다.
아니면- 아침에 한 번 바르고 덧발라야하는 사실을 잊고 마는 내가 문제인건가? 하지만 spf 50+이면 8시간은 견뎌줘야지.
아 나 6시 정도에 바르지. 그럼 오후 두시 전엔 덧 발라줘야 하는 거네. 쓰댕.

사랑한다는 말을 이만큼 길게 늘여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끝맺던 그에게서 받았던 그 여름의 편지를 떠올리며 나는 흉내내어 말해본다.
햇빛이 따갑도록 진하고, 나가 놀지 않는데도 햇빛이 할퀴고 간 작은 흔적들에 팔과 목덜미가 쯔릿쯔릿 저리게 아프데-라는 말을 이렇게나 길고 장황하게 늘여쓸 수 있는 나. 라고.

거추장스럽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던 내 취향은 이제 내 외모나 소유물들이 아닌 글에서 치렁 치렁 매달려 남아 있나보다. oh god.

한 때는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리 되어 보이던 것들을 부러워 하던 나도 안녕, 바이바이.
입을 다물고 있다고 현명해 보이는 것은 아니지.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티를 내고 사라지는 것이 내 방식이였다는 걸 몰랐어.
모든 것은 지나가고 나도 잊을 거야.
어쩌면 당신들보다도 더 빨리.
 이렇게, 신나게, 오늘을 즐기고 있는 걸.

기억하겠다는 약속따위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렇게 혼자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새겨진 마음 위에 붉은, 검은 펜으로 죽죽 선을 그으며, 지지 부진한 감정의 나열 따위 이제 그만.


요약 : 선크림을 발라도, 평소 햇빛에 노출되지 않던 피부는 잠깐의 여름 자외선에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리는 느낌을 느낀다.
그리고 덧발라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전문가(인척 하는 본인)의 조언 : 위의 화자는 이미 미약한 저온화상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크림은 자외선을 차단하는 기능으로 쓰는 제품이므로 알로에나 감자, 오이등의 쿨링 효과와 힐링 효과를 가진 제품을 사용하여 햇빛에 노출되어 건조해지고 기능을 잃은 피부에 수분과 생기를 공급해 주세요. 그리고 수분 섭취량을 늘리시고 자연 치유력 향상을 위해 충분한 수면과 가벼운 운동, 규칙적인 식생활을 권합니다. 탄 피부엔 알로에,오이,감자가 킹왕짱... 아이믄 수분크림이라도 담뿍.





by 아이 | 2008/08/07 13:33 | ㄴ글(시,소설,수필,동화,기사) | 트랙백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anex.egloos.com/tb/385565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매듭 at 2008/08/07 13:41
에에, 일단 썬크림따위 먹는거냐(...) 라며 바닷가에서 뛰어놀다가 지금 등껍질이 홀라당 벗겨지고는 있습니다만, 이 글을 읽으며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또한 스스로다운 바보짓인것 같다는 생각에 웃고있습니다.

뜨겁게 타오르다가, 벌겋게 익어 후끈거리다가, 시커멓게 굳어지다가, 허연 껍질이 일어나고, 그 너저분한 껍질들을 다 벗겨내고 새 살이 돋아나면, 그렇게 뜨겁게 타올랐던 기억만 남게 될까요.
Commented by 아이 at 2008/08/09 03:53
헉 등껍질! 심하면 화상인 거예요; 아프지 않게 새 살 돋우시길 바랍니다^^

근데 또 언제 그렇게 새까맣게 타도록 놀겠어요^^ 담엔 썬크림 바르고 노세요. 전 늘 바르고 양산 쓰고 다녀도 아프답니다;ㅅ;

새 살이 돋으면 잊겠지요. 뜨겁게 타오르던 기억도 언젠가는 다 잊혀지고 남은 흔적도 지워질테죠. 그리고 아주 가끔, 잊고있던 장롱 속 사진첩을 떠올리듯 기억해 낼거예요.
Commented by 삼별초 at 2008/08/07 14:16
밖에선 선크림을 바르고 다니고 집에 와선 종종 오이 맛사지를 하는 요즘입니다

이제는 그런것들이 필요한 나이가 되더군요 (...)
Commented by 아이 at 2008/08/09 03:53
아니 삼별초님께서 나이를 말씀하시면 ㅠㅠ;;

그나저나 오이 마사지라니 저보다 더 피부 관리 잘 하시네요^^;;
Commented by ifury at 2008/08/07 15:25
어떻게 이렇게 글을 예쁘고 감성적으로 쓸수가 있죠 ㅠㅠ 기운내요. (시애틀의 유일한 좋은점은.. 날씨가 가을날씨라는거? ^^;)
Commented by 아이 at 2008/08/09 03:55
헛; 역시 ifury님께서 예쁘고 감성 가득한 시선을 지니고 계셔서 그런 것 같은데요? 칭찬 너무 감사합니다. 부끄럽고 기쁘네요^^; 저랑 비슷한 상황이셔서 더 와닿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건 좀 싫은 가정이네요. 이런 상황.

가을의 선선한 날씨 부러워요!~ 그치만 가을이면 겨울도 더 먼저 오겠죠? 감기 조심하세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가슴을 펴고,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조근조근. 감사하며 먹고 사는 이야기.
by 아이
카테고리
전체
about here & me
Why?@! (Q&A)
低俗하게 blahblah
Healthy& Beautiful 삶
ㄴDiet & Healthy life
ㄴFashion & Make up
ㄴ착장 기록, 메이크 업
ㄴyammy yummy - 食
ㄴㄴ자취생의 소꿉놀이 (요리)
Earth trip 지구별 여행 일기
ㄴ東京日記 (2007)
ㄴ日記 (2008~now)
ㄴ3&ka logs (2010~2011)
ㄴ韓國 내 나라 탐방
Enjoy study
ㄴCatholic holic
ㄴWorkroad
ㄴㄴS/M/C/G
ㄴ외국어 공부 연습장 (E,日)
ㄴ빵과 장미 (노동법,인권,심리)
ㄴ미디어 행동 네트워크 美行
Unlocked Secret (뻘글)
girl talk (18세 소녀감성)
ㄴ♡
My Favorite
ㄴ라이더가 되고 싶어
ㄴHappy hobby logs
Make something-文,畵,音
ㄴReview & 후기
ㄴ글(시,소설,수필,동화,기사)
ㄴㄴ이글루스 빌라 204호 아가씨
ㄴ그림 (일러스트, 원고, etc)
ㄴ사진 (前 in my days)
ㄴㄴ 오늘의 펑 포스팅 ^^;
ㄴ소리 (radio, 낭독, 노래)
Scrap & Tag
ㄴ기사,칼럼,영상,이미지등 감상
ㄴ알림장
etc
2011 인턴쉽 log
2014 호주 워홀


2016 달콩 봉봉
미분류

step by step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이글루스 처음처럼 campaign이란?

When the Lore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示善香 翅宣向 時鮮享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