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는 나의 모든 걸 잃었어요.
내가 예전에 하던 일을 잃고 지금의 직업을 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안정과 즐거움, 불안함과 모험 또는 편안함과 정착.
왜 우리는, 무리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 하는 걸까?
한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혜택의 차이가 크다. 갑자기 무언가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정규직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범위와 비정규직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폭은 참 틀리다. 단체, 커다란 집단일수록 책임과 의무는 규정화되고 획일화 되어있다. 그 틀과 규칙을 맞추어야만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안에서 보장된 것들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물어본다.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그것들을 원하는 걸까?
부모님 세대는 안정을 바란다. 정착해서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조용히 살아가길 원하신다. 그것이 행복이고 제일 편한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자녀의 행복을 걱정하고, 그들이 길에서 도태되어 비참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동조해서야, 함께 고민의 늪에 빠질 뿐이다.
그대, 지금 두려워 하는가?
비난 받고, 의심 받고, 무리에서 뒤떨어져서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할 것이 무서운가? 지금 몸 담고 있는 현재의 기준과 평균에서 뒤쳐져 결국 혼자가 될 것이 두려운가? 글쎄. 나는 어릴 때, 길거리의 미친 할머니를 보며 내가 저렇게 홀로 미쳐갈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두려움이 나의 발목을 잡을 것이 더 두렵다.
걱정거리들을 피해 도망가도, 불안은 언제나 우리를 따라온다. 왜냐면 우리가 그것들을 늘 부르기 때문이다.
현대, 2000년대 초의 우리들의 불안은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사회가 원하는 학력, 재력, 미모. 그 기준의 틀에서 모자라서 선택되지 못하는 것. 나는 언제나 내가 원한다고 믿는 것들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좁은 선택의 문을 지날 수 있도록 온갖 힘을 다했다. 사회가 명시해둔 틀을 지나, 그들이 원하는 무게와 취향대로 살아가야만 미래로 향하는 길 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요즘 시대는 우리에게 꿈을 원한다. 뭔가 자유롭고 멋지고 대단한 무언가를 성취해서 남들과 다르길 바란다. 현대의 사회는 우리에게 힘을 요구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져야만, 보통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실은 아닌데.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내일 아침 눈을 떠서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 예상 가능한 삶만이, 몇 년 후에도 배고프지 않고 편안한 매일을 보낼 수 있는 안정만이 행복의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워 한다. 나의 오늘을 누구와 비교해야할지 두리번거린다. 우리 자신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소중한 존재인데- 비난받고 무리에서 떨어지게 될까봐 무서워한다.
예전 일본에서는 천재나 바보를 마을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일정 기준 초과나 미만의 사람 한둘로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 예외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그 전통은 아이들 집단 안에서 이지메를 만들어 낸다. 나와 다르면 불안하다. 어쩌지? 그럼 놀지 마. 비슷하지 않은 것은 우리라는 집단이 아니야. 너는 저리 가. 너는 우리 집단에 들어올 수 없어. 그 집단만이 그 사람의 전부이고 세계라면, 그 안에서 소외된 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듯한 느낌을 가진다.
내가 어째서, 내가 왜? 내 잘못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나는 이제껏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거지?
...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의 기준이 있다.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단 것을 싫어하고 신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 하지만 그런 맛들을 사랑하고 중독되어 있는 사람.
르네상스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신만이 절대 선으로 존재하던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의 기준이 인간에게로 돌아왔다. 서양의 균형미가 세계의 기준으로 굳어져 왔다. 동양의 르네상스는 그들과 다르다. 우리는 우리만의 르네상스를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되찾을 수 없다. 왜냐면 처음부터 잃어버린 적이 없거든. 우리는 신에서 출발하지 않았고 인간에서 출발한 민족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이지 모든 인간이 신의 뜻을 따라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름의 규율 속에서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의 평화 역시 규율의 틀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생존과 직계된 문제. 衣,食,宙. 그것이 보장되지 못하는 삶을 살까 두려운 것은 우리 위의, 보다 많은 물질과 힘을 가진 이들의 도덕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눌 줄 모르고 뺏아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려는 많은 이들은 언젠가 나의 소박한 밥상을 걷어차고 내가 누리는 오늘의 행복을 내일 누리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르네상스를 기준의 문제로 바라보자. 서양의 르네상스. 동양의 르네상스. 우리의 르네상스. 인본주의. 우리는 우리 삶의 기준을 무엇으로 규격화시켰는가? 그것이 유일한 답이고 해결이라 생각하는가? 기본적 생계. 누구나 소유해야만 하는 집. 기본 학력. 생각하는 데 요구되는 능력이 아닌 사지선다의 정해진 답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학력.
글쎄.
부모와 지도자는 학습자에게 사회를 보여준다. 가르쳐준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이나 그 사람의 행복의 기준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것은 스스로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까지의 정규 과정을, 누구나 기본으로 필요로 한다 믿는 기준을 살고서 사회에 나온 이들은 당황스럽다. 이제까지 늘 자연스럽게 준비되어있던 과정을 스스로 찾고, 방향을 찾아서 나아가야하는데 이제껏 내가 원했다 믿어온 것들이 실은 하나도 좋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고,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헤매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사회는 말한다. 커트라인을 지나버렸다고, 그 믿음을 강요한다. 할 수 없다고, 그런 건 일탈이라 규정짓는다. 맨 위의 사람 말을 듣고, 우리가 믿어왔던 대로 믿으라 강요한다.
그 믿음 아래서는 개신교도, 대동여지도도, 한비야씨도, 대한독립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고인 물은 썩고, 썩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피어난다. 이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침략과 분단을 통해 반으로 나뉘며 더 좁아졌고, 더 빨리 썩고 있다. 썩다 썩다 못하면 자연적으로 정화가 시작된다. 촛불을 켠 것은 민심이지 대통령이나 정당,정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선다. 답답해서, 속 상해서, 사람처럼 살고 싶고, 아직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거리로 나선다.
...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미래다. 누구나 힘을 원하는 사회다. 누구나가 돈과 외모, 건강. 보여지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힘을 원하게 되는 사회다. 규격화되고 획일화된 좁고 좁은 분단국가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규격에 따라 나뉘는 계급 사회. 하지만 이미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대 사회가 계급 사회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이는 무언가 세태를 잘 알지 못하거나, 혹은 이상주의거나, 정말로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계급이란 클래스다. 이코노미와 비지니스처럼 나뉘어진. 그 격차를 줄여야 한다 믿는 이들보다, 나는 꼭 퍼스트에만 탑승할 거라고 자신만을 위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현실이고, 미래가 아니다.
변하길 원한다면 스스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내 안에서 그 계급에 대한 정의를 무너뜨리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굳이 사는 곳을 옮기거나 직장을 옮기며 그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마음과 생각의 방식, 살아나가는 기준을 바꾸면 된다. 하지만 태어나서 이제까지 정형화된 삶을 살아온 나는, 단순하게 결론 내리고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믿으며 편하게 생각하는 법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나뿐만이 아니다. 좁은 세상에서 살아오고, 그 바깥의 세상. 내 울타리 너머의 이웃을 볼 줄 모르는- 아니 보지 않고 볼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세상은 언제나 똑같다.
인간은 하늘을 보았다. 날고 싶다 생각했다. 인간은 밤을 보았다. 별과 다른 무수한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이브는 사과를 따서 깨물었다. 호기심은 인류를 낳았고 순종이 아닌 배신, 배반, 죄가 모든 것의 시작이였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는가.
죄,라는 것 역시 인간들의 규정이라는 사실을. KBS라는 공영방송에게 윤리적 경영이 아닌 이해손익을 따져서 손해라는 죄를 덮어 씌운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집안의 수치와 문란한 태도라는 죄를 씌운다.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한 죄를 씌우자. 부시가 왔다고 미군 철회를 그 앞에서 외친 이에게 해외관계에 혼란을 야기 시켰다는 죄를 쎄우자.(씌우고 씌..이러다 보니 자꾸 쎄운다고 말하고 싶-_-;;어진)
안중근 열사와 김 구 역시 누군가에게는 죄인이다. 그 죄를 누군가는 훌륭한 업적이고 본받을 것이라 칭하는데, 왜 누군가는 죄라고 말하는가? 전두환과 이승환이 훌륭하다고, 정말로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김일성이 구원자라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을 죽기 전까지 지니고 간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눈 가리개를 풀자. 나는 죄인이고, 극악무도한 사상을 지닌 사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하지만 보통의,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고 호기심이 많고 부끄러움이 지독히 많은 사람일 뿐이다. 귀가 가볍고 타인의 말에 잘 선동되는, 기준이 모호한 사람.
타인이 규정지은 규격에 흔들리지 말자.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귀하다 여기는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한숨 쉬면서 가지지 못한 것과 한때 누렸던 것, 혹은 잃어버린 것이나 해보지 못 한 일들을 탐내지 말자. 아니, 탐내려면 자유롭게. 스스로를 [왜 갖지 못하지] 라는 생각으로 괴롭히지 말자.
헤어진 연인, 멀어진 친구 사이. 하지만 그들을 잃으면서 얻고, 배운 것들이 이렇게 무수히 많은데.
비난을 두려워 한다면, 지금 비난받고 있다고 느껴라.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는 마음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세상이 흉한 몸을 비난하고, 훌륭하지 못한, 서툰 실력을 조롱받을까 두려워 말라. 세상의 아름다움은 대다수가 결정한 기준이다. 우리는 대다수의 취향에 길들여진 일반 대중이다. 당신은 대중의 한 명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하나의 존재이기도 하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한발짝 뒤로 물러나 큰 그림을 보라. 마을에서 빠져나와 뒷 산에 올라 우릴 둘러싼 산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보라.
우리가 지금 이 곳에 존재해야만 하는 모든 이유는, 어쩌면 변명일지도 모른다.
Why Not?
사람들이 비난하고 싫어할까봐?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걱정하는 사람은 없는 걱정도 사서 만든다.
확신하지 못하는 현재. 불안한 미래. 하지만 그 언제라도, 확신에 넘쳐 했던 결정과 선택일지라도-
... 예상 가능한 결과가 오지는 않는다.
길에서 벗어나서, 무리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까? 어떤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까?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한 슬픔은, 다시 그 행복감을 쥐지 못한다는 상실감에서 비롯된다.
달콤한 도넛은 구멍을 매울 무언가를 찾고, 짭짜롬한 고로케는 조각난 케이크를 부러워 하고, 케이크는 온전한 바케트를 바라보고, 바케트는 가게 앞 트럭에 실린 찐빵은, 찐빵은 수퍼의 만두를.. 모두가 자신에게 없는 맛을 높이 산다.
누구에게나 구멍은 있다. 베이글도 도넛도 난에도 기포는 존재한다. 크기와 모양의 차이일뿐, 슬퍼할 필요는 없다.
도넛 마을에 베이글로 태어나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받아들일 숙명이라고 한탄하는 이는, 빵 제국 너머의 밥 나라의 맛과 형태를 모를 뿐이다. 한탄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잊었을 뿐이다.
우리는 살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중하다. 당신이 55사이즈의 스키니 진을 입지 못해 지방흡입을 고민하고, 토익 평균 점수가 커트라인에 미치지 않아서 괴로울지도 모른다. 모두들 자신이 속한 세상이 살아갈 전부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경험일 뿐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울고-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것을 뛰어 넘은 언젠가를 만나면, 우린 그 때 우리 자신이 왜 그토록 자신을 미워하고 사랑할 수 없었나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오늘 신문에서, 당시에는 동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금메달과의 차이나는 대우에 괴로웠다 울었던 선수를 만났다. 어제 웹에서, 늘 사랑받던 역할에서 의심받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손가락질 받는 처지로 전락해 괴로워했던 배우를 만났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고 사랑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던 나를 만났다.
일등만이 존재하는 나라. 최고만이 대우받는 세상. 다양함과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 깨끗한 미래가 자라기란 어렵다. 희망을 포기하게 된다. 병아리 사이에서 자란 독수리는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도, 그것을 펼칠 수 없다 말하는 사회에서는 비행 자체가 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다. 올림픽 규정에 따른 일 등 말고, 다른 규정 아래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제일 잘 즐기는 규칙 아래서는 우리 각자가 일등이다.
발돋움 하고, 멀리 보자.
죽음을 앞두고 후회할 오늘이 아니길.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아끌어 나를 죽이는 오늘이라면, 숨이 끊어지는 순간이 언제 찾아오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기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떳떳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자립의 조건을 더 어렵게 만들며 살고 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선택의 폭을 좁히고 생각을 풀어주지 못하는 스스로가 아닌가.
여자는 서른 전에 아이를 낳아야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는가?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너무 험난해서? 가임기가 지날까봐 두려운가? 꼭, 누구든 결혼과 출산. 부모가 되고 책임감을 가지고 양육이란 것을 해야만 하기에? 나에게는 그 두려움이 없는데, 사회는 그것을 내게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규직으로 선택되어 보장된 든든한 회사의 구성원이 되어야지. 비정규직의 힘든,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생겨난 관념이다.
어떠한 사실이 있고, 또 가장 모범적인 답이 있다고해서 모두가 그것을 따라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한 자는 모두 다른 민족이고 적이라 생각하는가? 선택받았기에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고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으며 의심하지 않는가? 의심할 줄 모르는 삶의 태도. 순종.
그것이 실은, 우리의 가장 경계해야만 할 적인지도 모른다.
싱글이면 어때 내가 행복하고 잘 살면 그만이지. 어쩌면 내 행복이 그것이 아닐지도 모르고, 내게 주어진 몫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커플 세상에서 싱글인 처지를 가엾어 하고, 동정하고, 업신여기고- 연봉 평균 얼마인 세상에서 그 연봉을 넘지 못해서 억울해하고,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모두가 말하는 평범이나, 보통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아야지.
아 근데 왜 나 또 결론이 3000포삼-_ㅠ;
두려움 없이 나아가자. 내 두려움은 내가 만든 거짓 세상이다. 시도하고, 만들어내고, 평가받아야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에 대한 추측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지는 해 보아야 아는 것이다.
비난에 익숙해진 것은 높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꿈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면 꿈을 버려라. 꿈 때문에 답답하다면 현실로 실행하라.
꿈이 없어서 힘들다면, 그것 역시 세상이. 타인이 당신에게 심어준 잘못된 기준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늘 행복하라.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릴 느끼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익숙한 행복이 아니여도, 꼭 내가 바라던 꿈만이 아니여도- 길은 길이다.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도 계속, 살아나간다.
참 다행이다. 많은 것들이.
함께 즐겁자. 나 좀 더 많이 배우고 싶다.
자랑질이라는 비난 같은 걸 두려워해서야 민망 최고봉의 자리에 오를 수 없지. 안드로메다에 맡겨둔 개념을 찾아서, 그걸 신고 올라보자꾸나:)
우리는 살아있는 한, 우리가 원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으니까. 우리가 원치 않던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지만- 부정의 그늘 아래서 빠져나와 만끽하는 긍정의 공기를 마시면 if의 불안을 잊게 되니까. 밸런스를 맞춰서 걸어갈테다. 함께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내일이 있다. 그 내일을 향해 걷는 오늘을 산다. 정말로 진짜.사건, 인생, 결혼, 사랑, 이별, 만남, 헤어짐, 그리움, 기쁨, 감격, 유목민, 농경, 사회, 르네상스, 홍익인간, 인본주의, 오해, 세계, 우리, 무소의뿔처럼혼자서가라, 두려움없이, 혼자놀기, 상실, 나눔, 삶,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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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my life log.
somebody knowing it, somebody doing it.
가슴을 펴고,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조근조근.
어설퍼도 감사하며 먹고 사는 이야기.
by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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