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 오- 부인. 저예요. 저랍니다.
방금 부인이 보내주었던 그 책을 읽었어요. 아, 다 읽진 못했어요.
하지만 단 두 편만을 읽고도 마음이 이렇게나 뜨거워져서-  펜을 들었답니다.

남편 걱정일랑은 말아요, 그 이는 아침 일찍 성으로 들어갔고, 저는 막 하녀애를 시켜서 서재 주변엔 아무도 얼씬 못하도록 시켜놓았답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책이 가득한 이 방에 들어와서 커다랗고 무거운 커텐을 열고 황금빛 아침 햇살을 잔뜩 방 안 가득 들여놓았어요. 비밀 책장에 숨겨둔 책을 꺼내 펼치고 제일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읽었습니다.

아, 그녀는 어쩌면 그런 세상의 일들을 다 기록해 두었을까요!
고독의 힘이 불러온 이세계의 異민족들이던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걸이 하나에 갈리고 만 사랑의 이야기들.
철없고 유치한 사상을 가진 이와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좋아요. 너무 서글프니까요.
하지만 어리석은 자일수록 창조주께서는 더 많은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지식 대신 채워주신듯하죠.
내 사촌들이나 주변의 사람들만 보아도 그래요.

아, 부인. 가슴이 뛰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잘 떠오르질 않아요.
분명 감동으로 가슴이 뛰고 있는데, 머리로 정리가 되질 않아 한참을 깃털 펜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어요.
내가 내 감동의 원인이나 형태를 풀어서 당신에게 전해드릴 수만 있다면!
이런 답답한 마음이 들진 않을텐데 말이예요.

부인 실은 말이죠, 저는 얼마 전에 어린 하녀애에게 손을 댄 적이 있어요.
가벼운 손찌검이였어요. 식사 시중을 드는 아이인데 얼마나 꾸물대는지-. 숙련되지 않은 하인들을 몸종으로 데리고 다니는 건 참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 아이의 실수가 내 돌아가신 숙모님이 남겨주신 숄의 한 귀퉁이를 찢는 바람에 그런 거였어요. 아시잖아요, 부인. 브로치나 팔찌였다면 수선할 수 있겠지만, 제가 아끼는 숙모님의 숄은 얇은 비단과 레이스로 만들어져서, 더우기 동방에서 가져온 천으로 만든 것이라 다시 수선할 수가 없다는 걸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나보아요.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 아이의 뺨을 때려놓고는, 나 자신도 놀라서 숨이 멎을 뻔 했으니까 말이죠.
과하게 부풀려진 묘사라고 웃지 말아요 부인, 나는 그 아이보다 그런 일을 한 내 스스로에게 얼마나 심한 혐오감을 느꼈는지 모른답니다. 당장 나가라고 소리 지를 기운도 없이, 내가 놀라서 그 자릴 황급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지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저는 이 정도의 인간밖에는 되지 못했나봅니다. 오늘 부인이 보내주신 서찰과 책을 읽고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제가 너무도 달라져있고, 달라져 가고 있고, 앞으로도 달라질 거라는 걸요.

부인, 저는 네 인생이 이렇게 날뛰는 말같은 제 성격에 실려 나아가길 원치 않아요. 부인께서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함께 말을 타고 언덕빼기를 오르 내리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요. 이런 우중충한 지역과 달리 우리들의 고향은 매일 매일이 환한 햇살과 생명력 넘치는 곳이였지 않습니까. 저에게 이 곳은 마치 외계와 같습니다.
어제 비가 그치고 오늘은 간만에 해가 나서 너무나 다행이예요. 눅눅하고 어두운 이 곳 공기는 숨막히는 매일을 더 비참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매일 매일 조용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사는데도, 가슴 속엔 무언가 으르릉대는 늑대의 숨소릴 들으며 사는 기분이예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보다도 더 숨이 차올라서 저는 그럴 때마다 친정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하며, 두고온. 그 곳에 남겨두고온 저의 찬란하던, 눈 부시게 빛나던 시간들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아. 부인, 제가 지금 부인에게-

아 발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쓰도록 할께요. 기다려요. 부인.




by 아이 | 2008/09/02 09:47 | ㄴ글(시,소설,수필,동화,기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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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oylatte at 2008/09/02 21:17
아 저 이런거 좋아요 이어지는건가요? +_+
Commented by 아이 at 2008/09/03 09:49
앗 라떼님 판타지 좋아하세요? 머리 속에 들어있는데 추리물이라.. 연작 해볼까요? 헤헤..
Commented by soylatte at 2008/09/05 11:22
네네!!! 우왓 재밌겠다!
환타지는 좋아하지 않지만 시대물이 좋달까(게다가 추리물은 더 좋고요!)
너무 낭만적이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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