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아버린 것. 그리고..


지하철이 들어오는 커다란 소리를 들으며 나는 뒤늦게야 알아챘어,
내 안에 무언가가 빠져나가 버렸다는 것을.
마치 그건- 곤히 자고있는 내 배를 갈라 내장 기관 하나를 꺼낸 다음에 감쪽같이 원래대로 봉합해놓은 것 거야.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이 사라졌는데도 나 자신은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거야.
골똘히 생각하고 배를 쓰다듬어 보아도 알 수 없어.
본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였고 이름조차 불확실한 것이였거든.
하지만 너무나 중요하고 커다란 것이였는데 말이야.
가슴 한 켠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어.
지하철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내 가슴 한 켠에도 스산한 바람이 일다 갔어.
초조한 마음과 너무나도 평안하고 조용한 마음이 들어, 엄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고 깨물었어.
주위를 둘러보자 나는 지하철 제일 끝에 혼자 남겨져 있었어.
다음 차는 막차라 주변은 정적 속에 가라앉아 형광등 불빛만 먼지를 쓰고 있었어.
벤치에 앉아 MP3 플레이어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았어.
그 음악이 들려오더라.
너와 들었던 그 음악.
나는 그제야 알아챈거야.
내 안에서 사라진 건 바로 너라는 걸.
너와 함께 나눈 그 시간들, 간절하고 두근거리던 마음들.
이제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과 함께 나는 너를 버린거야.
이제 두 번 다시는 만나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않겠어.
그런 결심은 말로 하지 않아도 둘 다 알고 있잖아.
항상 너를 생각하면 눈물을 났는데 이제 너는 내 안에 사라져 조금의 습기도 남기지 않았어.
메마른 발자국도 없어. 너는 내 안에서 사라지고 없는 거야.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이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어.
어느새 다음 노래가 흘러나오고 막차가 들어오고 있어.
지하철 천장을 보며 나는 푸르던 그 날의 하늘을 떠올렸어.
너와는 함께 풀밭에서 굴렀다던가 하는 기억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영상만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어.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는 순간이였지.
'없는 것을 억지로 기억해내려고 하니까 그런거야.'
네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거 같더라.
하지만 네 목소리, 그 서늘하고 낮은 울림을 나는 모르는걸.
그렇다면 그 목소리는 뭘까? 뭐였을까?
차가운 스킨을 솜에 적셔서 뺨을 닦으면 알콜성분은 날아가고 차가운 느낌과 잔향만이 남아.
하지만 그것도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리고 나면 그걸로 끝이야.
넌 일년 전에 발랐던 스킨이나 향수를 기억해 낼 수 있어?
나는 할 수 없어.
너는 그런 존재인거야.
덜컹거리는 지하철 창 너머로 까만 하늘과 달이 보였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에 얼굴을 대고 밖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어.
빛나는 야경과 조용한 한강물결을 보았어.
눈을 감았다 뜨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 나지 않았어.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는 너는 누구지?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던거지?
미안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네.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뭐더라?

뭐. 였. 지 ?

 


 

 

그건, 뭐였지?



위의 포스팅은 내가 2004/07/07 02:01에 작성한 것이다.

저 글을 쓰기 며칠 전, 지하철 4호선 안에서 예전에 잠깐 좋아했던 남자애를 ㅇㅅ.. 보고 깜짝 놀랐었는데- 그 애는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갔고, 4년이 지난 후의 서로의 모습이 너무 달라져 있어서 놀랐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쓴 글.

잊고 지낸다, 많은 것들을.

저 포스팅을 보기 전까지도, 잊고 있었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로 꼽는 4명 중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은 그저 스쳐지나간 무수히 많은 인연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들에게 내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 그치만 그 4명 중 2명이  해골물 이였다는 사실은 정말 안습ㅠㅠ

잊을 수 있고 살수만 있다면 참 좋을텐데.
과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린 날의 내가, 그림이나 글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소재가 참신하고 생각,발상이 신선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지금 내가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많은 것들.
잊혀질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용서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힘든 일은 일부러 기록해두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 지나갈 것들이니까.
하지만 지난 후에는 약간의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던 것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그것을 체험하는 그 때 그 시간이 최적의 시간들이기에.

역시나 나는 기록 덕후..=ㅂ=;;





by 아이 | 2008/10/19 09:01 | ㄴ글(시,소설,수필,동화,기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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