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랑질 - 여러분~ 저 밑반찬이랑 밥 먹어요~ 집에서 보내온 반찬이예요!!!




방금 아침 식사를 끝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잡곡밥과 매실 장아찌, 쇠고기 볶음 고추장, 그리고 총각김치를 찬으로 해서 먹었다.

오늘은, 자랑질을 좀 해야겠다. 남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를 자랑질을.

열아홉살에 특차에 합격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일찍 서울에 올라와서 특차합격생을 위한 교양 수업을 들으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었다. 집에서 밥이나 반찬 따위를 받은 것은 10년이 가까운 서울 생활만에 처음이다. 딸을 서울로 보내놓으시고도 일년에 단 한 번도 서울로 올라오시지 않으시는 부모님. 하지만 그것이 무관심이나 사랑이 덜해서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분들은 원래 그런 분이셨고,  바쁘시고, 마음만은 늘 함께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이다.

비가 오는 날, 친구들이 엄마가 마중 나와서 우산을 쓰고 집에 가는 것이 부러웠던 것은 언제였더라? 단 한 번도 나는 어머니께서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 주신다던가 하는 기억이 없다. 왜냐면 어머니의 퇴근 시간은 늘 늦었기 때문이다. 거센 비가 수그러들길 기다렸다가, 그냥 포기하고 책가방을 머리에 쓰고 달려서 집에 오면, 텅 빈 방이 나를 맞아주곤 했다. 동생과 나는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우릴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하루에도 학원을 두세개 씩 다녔었다. 불만도, 감사도 없었다. 그냥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으니까. 가끔 슬프고 자주 남들이 부러웠지만 우리 집은 원래 그러니까.

수성8학군이랄까, 강남 엄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은 치맛바람 부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소풍이다 운동회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참석해주신 운동회는 단 한 번이였고 소풍은 김밥이나 제대로 싸 주시면 다행이였다. 늘 바쁘셨으니까.
나는 가끔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기준을 넘어서부터는 절대적 빈곤이나 괴로움보다 상대적인 박탈감의 괴로움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한다. 배가 고파 수돗물을 마셔도- 그것이 일반적인 일이라면, 아 누구나 다 그러는데 나도 참고 견뎌야지. 이게 원래 그런 삶인걸 뭐. 그렇게 견딜 수 있을지언정 다른 아이들은 모두 책가방에 노트에 샤프를 가지고 있는데 나 혼자 보자기와 연필과 광고지 이면지로 만든 연습장을 들고다닌다면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한 유년시절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조장하는 사회 양극화를 싫어한다, 내가. 왜냐면 아니까. 그 기분을)

최규석님의 만화, 대한민국 원시인..이 아니라 원주민,(;;;;)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알 것 같아서였다. 그런 시대의 그런 마음들을. 내가 둔하고 물건 욕심이 없는 아이라 다행이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식탐은 있었을지도) 중학교때 추운 겨울, 코트를 사주지 않으셔서 벌벌 떨며 학교를 다닌 기억도 당시엔 그저 힘든 기억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나한테 좀 무심하셨구나 라는 정도로 생각되니까. 뭘 사달라고 떼를 쓰거나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고 강하게 요구해 본 적이 없는 아이였으니까. 고분 고분 잘 자라 주었던 것 같다. 책만 쥐어주면 입을 다물고 얌전히 있는 착한 아이. 어릴 적의 내가 좀 안스럽거나 불쌍하기도 하지만 뭐, 지나간 일이니까.

말이 좀 샌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내고 졸업을 하고 몇 년이 지났다. 어릴 때부터 밥상 차리는 거나 음식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늘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 먹었었는데 최근 몇 달 전에 어머니께서는 얼린 밥(밥을 하고 식혀서 반 공기 분량씩 비닐팩에 넣어 냉동한 후 끼니 때마다 해동해서 먹으면 갓 한 밥을 먹는 것처럼 먹을 수 있다.)을 큰 스티로폼 박스에 두 번 보내주셨고 며칠 전 밑반찬을 보내주셨다. 그 전까지는 대강 사 먹거나 끼니를 빵,고구마,과일 따위로 때우거나 반찬 없이 맨 밥만 먹는 걸로 식사를 했었는데, 어제부터는 반찬과 함께 밥을 먹는다. 짜게 먹지 말라는 PT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반찬이 맛있어서 늘 먹던 것보다 짜게 식사를 하게 되는 기분이지만 마음이 참 좋다. 맛있고, 배부르고, 다 큰 딸년을 위해 하나씩 밥을 포장하셨을 어머니를 떠올리면 왠지 [철드셨네 울 엄마, ㅋㅋ] 뭐 이런 기분이라서.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거지 공주 포스팅 이나 엄마 도시락 싸 주세요 포스팅 )내 주변에는 늘 부모님의 관심과 돌봄이 풍족한 친구들이 많았었다. 대학교 일학년 때만 해도 단짝친구였던 ㅇㅇ이는 집에서 늘 먹을 것들을 밑반찬을 비롯해 쌀과 과일, 야채까지도 택배로 받았었다. 쵸큼 부러웠던 나는 한 번 부러움 섞인 말을 어머니께 꺼냈다가 늘 돌아오는 대답 "우리 집이 남들하고 같냐,"는 물음에 본전도 못 찾고 깨갱 꼬릴 내렸던 기억도 난다.

너무 자유롭게 커 온건지, 제멋대로 큰 것인지 모르겠다. 요즘의 내 생활을 돌아보면 무절제하고, 유혹에 약하고, 균형을 잘 잡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했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갸우뚱. 아직은 비틀비틀한다.

육아나 출산, 집안일이나 가족관계의 형성은 누구에게나 늘 처음이고 서투르고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하신 타입들이라 나나 내 동생에게도 늘 은연 중에 그런 것을 기대하신다는 것을 안다. 공부를 잘 하거나 예쁜 짓을 해야만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내 안에 박혀있는 것은, 내게 늘 관심과 시선을 보여주시기엔 너무 바쁘신 어머니나 애정을 표현하시는데 서툰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그 분들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부분의 책임이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부정할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더 제대로 사랑해주자. 엄격하게, 혹은 관심을 보여주며 살아가자고 혼자 되뇌이곤한다.

맛있는 집 밥을 먹으며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코가 맹맹하고 눈이 시린 감기도 곧 떨어지겠지.




by 아이 | 2008/12/08 06:41 | ㄴ글(시,소설,수필,동화,기사)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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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삼별초 at 2008/12/08 07:34
어머니의 진정한 자식 사랑이죠 반찬 택배는 ^^

저도 집에서 김장 김치를 공수해왔습니다
열무김치 많쉐!!! (저도 자랑질 ㅎ)
Commented by 아이 at 2010/07/13 00:23
요즘도 받고 있습니다, 엄마표 사랑밥 택배.

만만세~!!
Commented by 알바트로스K at 2008/12/08 08:08
기숙사 살아서 반찬공수도 못받습니다...흑흑 맛없어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0/07/13 00:23
기숙사는 그런 설움이 있군요 ㅠㅠ 흑흑 힘내세요~!
Commented at 2008/12/08 08:5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10/07/13 00:24
요즘은 잘 모르겠어요^^;

언니 정말 반가웠어요. 우리 언제 또 보지? 꼬실이랑 또 함께 만나면 좋겠어요!!!
모두 모두 건강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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