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구름을 좋아하세요? 에 이어, 겨울철 찬 바람을 싫어하세요?

지난 가을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만 슬펐습니다.
올 가을은 웃음이 가득 넘칠락 말락할 정도로만 감사했습니다.



찬 바람이 뺨에 와 닿는 아침 세숫물 같은 겨울이네요.
얼얼해진 뺨과 귀와 코와 손 끝이 붉게 붉게 물이 들면서- 아롱 아롱거리던 정신이 번쩍, 깨곤 해요.
무척이나 싫었어요, 늘 이불 속에 파묻혀서 좀 더 겨울 아침 단 잠을 즐기고프던 내게는 찬 바람은 엄마 잔소리보다도 더 나를 파고드는 존재였으니까.

이 바람 앞에서 감사하게 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지요, 정말로.

누군가와 함께 걷던 거리에서 혼자 걸으면서 즐기는 모로칸 민트 라떼는 여전히 달콤하고
친구들과 만나 나누는 수다는 겨울이라 더 따끈해요.
혼자서 걷는 겨울의 거리에는 어둠이 더 빨리 내려오지만
이렇게 금새 어두워지기 때문에 우리들은 카페에 들어가서 소곤 소곤 밝고 따뜻하고 은밀한 시간을 더 오래 할 수 있는 거 잖아요.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겨울이, 당신에게도 내리길 기도할께요.
오슬 오슬 닭살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팔뚝까지 떨게 만들어도
따뜻하게 데운 핫초코와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더없이 어울리는 계절.

지나 온 겨울에는 거친 숲 나뭇가지며 언덕에 짐승들 털이며 가죽 흔적이 남아있지만
당신과 내가 각자의 지구 위에서 만날 겨울 풍경에는,
따스한 위로처럼 쌓이는 흰 눈과- 연애를 부추기는 찬 바람 손길이
봄을 여는 새싹들의 연녹색 겨울 지우개를 품고 있을 거예요.

행복할 수 있는 겨울이, 벌써 이만치 왔네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당신이 없는 한 해가 이리도 행복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나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씁쓸한 현실을 인정할 수 있는 조금 더 자란 마음을 어깨에 매고-
누군가를 비워냄으로 얻는 자유가 달아준 날개 위에 앉아서 다가올 시간들을 내 차디 찬 손 너머로 바라보아요.

이제 아주 조금, 사랑을 알 것 같아요.
나는, 그럴지도 몰라요.
찬 겨울 바람이 가져다 준 속삭임.
조금은 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네요, 겨울입니다.



by 아이 | 2008/12/30 06:46 | girl talk (18세 소녀감성)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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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매듭 at 2008/12/30 09:08
찬바람은 은근 겨울철의 로망이지라.
아침에 부스스하게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왔을때 그 확-하는 느낌은, 의식을 현실로 돌려주는 기분 같달까요 :)
Commented by 아이 at 2009/01/12 15:10
찬 물에 몸 담그는 기분예요.
겨울 좋아하는 삼촌은 신나시겠네^^ ㅎㅎ
Commented by 삼별초 at 2008/12/30 11:23
겨울은 어느정돈 추워야 겨울답죠 ^^
추운 겨울날 방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귤을 까먹는 재미도 겨울에만 느낄수 있는 즐거움이구요 ㅎ
Commented by 아이 at 2009/01/12 15:10
코타츠+귤+군고구마+책..조합이 환상이라죠 ㅠㅠ
Commented by 사과거북 at 2008/12/30 17:00
아 글이 참 예쁘네요 아이님^-^
겨울 찬바람은 참 신기한 게, 아침 침대 속에서는 그렇게 싫다가도
학교 가기 위해 밖으로 딱 나왔을 때, 볼에 와닿는 그 상쾌함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요! 왠지 즐거운 하루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죠>_<
Commented by 아이 at 2009/01/12 15:11
전 추위는 무지 싫어했는데..
요즘은 겨울 찬바람에도 감사하게 되요.

이 포스팅은 너무 수식어 많은 소녀 취향 글이라 부끄부끄했는데..
예쁘다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시길, 사과거북님.
Commented by HyoMiNam at 2009/01/04 04:23
정말 예쁜글!!
저역시 추운 겨울을 좋아하는지라 은근 윗분들과 동감.
혼자라도 여전한 다른것들.
Commented by 아이 at 2009/01/12 15:12
혼자라도 여전한 다른 것들.
곱씹게 되는 말이네요.

예쁜 사람 눈엔 예쁜 것만 보인다던데
효미남님 예쁜 분이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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