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호 이야기] 일곱번째 날.




성당 피정을 다녀와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에 이사한 빌라는 꽤나 마음에 든다. 아직 커튼도 달지 않고, 정리도 덜 끝났지만 주변 환경이나 집세 같은 것등이 맘에 든다.
창을 어머 들어온- 텅 빈 방 안을 가득 채운 2월의 금빛 햇살이 아름답다고,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문 틈으로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빌라 입주자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는 수줍은 글씨.
조금 이상한 빌라다 싶다. 누구에게 무슨 소개를 하란 말야? 얼마 전부터 만나기 시작한 자기야를 소개하라고?
아니지 아니야, 이 빌라는 독신자 아파트라 동거인이 있다는 걸 들키면 퇴출이다. 어차피 그 이가 매일 집에 들르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을 들키는 날엔 f.c에서 가만 있지 않을텐데-. 흠.

현관에서 들어오자마자 거실 바닥에 풀썩 주저 앉았다. 요즘은 이상하게 몸이 좋지 않다. 피곤이 쌓이는 기분, 버겁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기대하고. 지겨워. 자신 외에도 주변 사람들마저 지치게 하는 스스로의 성격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웃으면서 숨기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눈치빠른 이들에겐 언제나 들키곤 한다. 아니, 실은 어쩌면 들키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를 끌어안고 싶어하는 외롭고 초조한 내 안의 작은 아이.
누군가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어하는 - ...


접힌 쪽지를 펼쳐 그 글씨를 물끄러미 들여다 말고 방 구석에 세워진 거울을 바라본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 입가와 이마에 난 조그만 뾰루지.
뿔테 안경 너머로 커다란 눈과 얼마 전 염색한 밝은 갈색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쇄골 선에서 부드럽게 말려 있다.
언제나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라는 평을 듣는. 스스로의 얼굴.
뺨에 손을 가져다 대어본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촉감.

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걸까?
아주 아주 평범한 20대의 대한민국 여성.이라고 스스로를 칭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건 호기심 가득한 시선들.
쿵짝이 맞으면 즐겁고, 그렇지 않으면 피곤하거나 부담스러운.
아 몰라. 어렵다.

고개를 돌려 방 구석 구석을 훑어본다.
읽다만 책들과 이불, 여기 저기 흩어진 옷들이 가득한 방 안.
그나마 저번 주 내내 치워서 바닥이 꽤 많이 보인다. 화장대와 옷장, 책상은 다음 주 수요일쯤 도착이라 조금 휑해 보이는 방이다.

어떤 소개를,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4시부터 시작되는 성당 봉사활동에 나가려면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널어놓은 빨래에서 커다란 타올을 집어 샤워실로 향하며 중얼거린다.

"담에 하지 뭐."

역시나, 나는 무책임하고 게으른 아이일까?
이글루스 빌라 주민들과 정식으로 인사할 기회는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by 아이 | 2009/02/08 14:08 | ㄴㄴ이글루스 빌라 204호 아가씨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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