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울 기회를 찾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고 힘들 정도로 우리는 매일 보통과 평범을 가장한 성실을 강요당한다.
사회와 미디어는 빨리 빨리 일어나 달리라고 모두를 재촉하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달리다 숨이 막힐 때쯤에서야 우리 존재의 의미를 묻게 된다. 아니, 혹은 잊고 더 달리려 애쓴다.
나는 늘,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며 축제에 목마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억눌린 감정과 하고싶은 말들을 숨긴 채 살아가는 모두들은,
다들 무엇으로든 이 답답함을 벗어던지길 원하고 있구나 - 하고.
언제나 내가 속해 있는 축제의 무대 아래에서 생각했다.
슬픔도 마찬가지이리라.
마음껏 슬퍼하고 애도하면서
우리는 그를 보내면서
한 시대의 종말과 또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느끼고 있다.

거대한 한 막이 내렸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비통함과 안타까움.
이 시대는 우리에게 비극으로 남을 것인가 희극으로 기억될 것인가?
...
모두, 제각각의 시대를 살고 있고
모두가, 나름의 생각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가 원하던 세상.
배고프고 억울하고 서러워서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이가 생기지 않는 사회.
그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길 빈다. 바란다.
그가 정말로 절실히 원했던 것은 무엇이였을까.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마음의 평안.
손녀의 미소 안에서 찾고 싶던 무언가를,
나는 그 대신 이루어 내고 싶다.
우리가 함께 찾을 수 있다고, 한 번 믿어보고 싶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고 나서 계속해서 문자랑 엠에센으로 나를 찾는 아이 하나가 있다. 어쩌다 이전에 인문학을 같이 공부한 적이 있는 아이였는데 노무현이 죽고 나서 계속 눈물바다란다. 그때 같이 그 아이를 나와 같이 가르쳤던 후배는 **가 애타게 오빠를 찾는데 대답 좀 하라고 하길래 썰렁하니 문자 하나를 보냈다. '너 지금 만나면, 내가 나를 주체 못할 것 같다. 좀 지나고 보자.' 난 이 아이가 우는 이유를 아는게 울면서 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가 더 두렵다.
후배중에 덕수궁같은데 가서 절대 조문같은걸 안할 것 같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조문을 갔다왔다고 한다.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자기만큼이나 그런 곳을 안 갈 것같은 '탈정치화'된 자기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갔단다. 가서 그 친구가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왜 우냐고 물으려고 하니 후배 입을 틀어막으면서 '묻지마. 그냥 슬퍼. 그냥 나 좀 슬퍼하게 해줘. 그냥 울고 싶어.'라고 하더란다. 그 친구 우는 걸 보다 자기도 슬퍼져서 울었다고 한다.
친한 교수중에 한 사람이 대학원 수업시간에 한 시간이나 넋두리를 하더란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이 자기가 그렇게 슬퍼하는 걸 보면서 '어머 나 어떻해. 나도 몰랐는데 나 노사모였나봐.'라는 말이란다. 그 교수는 노무현이 자기에게 이렇게 가까이 있고 자기가 그렇게 노무현에 밀착되어 있는지를 몰랐다며 스스로도 헷갈려하였다고 한다. 수업내내 다른 대학원생들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고 한다.
좀 전에 아는 기자가 문자를 보냈다. 아...이 긴 행렬은 무엇일까요. 별로 슬프지 않은 나는 진정 사이코패스인가요?
우린 무엇을 슬퍼하는걸까.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그리고 무엇을 애도하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바꾸어보자. 왜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이 슬픔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일까라고.
엠에센으로, 문자로, 전화로 숱하게 '문의/상담 전화'를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하소연을 듣다 문득 깨닫게되었다. 이 사람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슬퍼하고 있는 것이라고.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들이 본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꼬라지이다. 지금 여기서 사는 모습의 궁상맞츰과 망가짐과 팍팍함과 초라함과 강팍함을 슬퍼하고 있는게다.
세상에 권력의 정점까지 올랐던 대통령마저도 알고보니 텅빈 생명이었다니. 최진실의 죽음에서 사람들이 본 것도 참 가진 것 많고 남 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알고보니 텅 빈 삶을 살았다는 것에서 오는 동정과 연민이었다. 사는게 참 허무하구나하는 말에 담겨있는 사는 것의 초라함과 강팍함에 대한 씁쓸함. 노무현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최진실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정서와 그리 멀지 않다. 몰락이, 죽음이, 나락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 저런 사람들마저도 삼키는 그런 나락이 우리 삶에 아가리를 떡 벌리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그 나락을 보며, 우리는 나락에 떨어져 죽은 자를 보며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락옆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애도하고 있다는 것이. 더 우습지 않은지. 우린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 품위없고 보잘것없으며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애도가 있다. 그가 가고 난 다음 사람들로하여금 그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점에 올랐던 최진실의 죽음에서 많은 여성들이 그들과 다르지 않은 '같은 여성'의 삶의 강팍함에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말이다.
왜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가.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분열적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권력의 정점에서도 보여주었다. 전교조의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대안학교를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치고 나와 까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투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만하면서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다닌다. 우리는 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분열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을 뒤죽박죽으로 가지고 살아간다.
아래아래 어느 당원분께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날 노무현이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지금 국민들이 저를 보고 계십니까?'하는 말한 장면을 보고 그의 고독을 느꼈다고 하셨다. 바로 그것. 영혼과 실천이 따로 떨어져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그는 권력의 정점에서도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비록 지금 당신들이 반대하는 것을 하지만 나의 영혼은 당신들과 함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가 파병을 반대했을 때 그거하라고 당신들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을 때,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을 했을 때. 봉하로 내려가서 한 첫번째 말이었던 '죄송하지만 참 좋다' 등의 말은 집권해 있을 때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비겁한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가고 나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분열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없는 우리의 이 초라하고 팍팍한 삶이 아닌지.
그래서 그를 신자유주의자라고 말을 하는 것은 부족하다. 적어도 하나 확실한 것은 그는 신자유주의자이지만 다른 신자유주의자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정책적으로 신자유주의자였지만 그의 인간관은 신자유주의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관점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통치의 이데올로기와 달랐던 것. 이것이 그에 죽음 전과 후에 사람들이 그에 대해 느끼는 정서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가 그냥 신자유주의자였다면 그는 봉화로 내려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의 비애를 그렇게 표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인간관은 참 뜨거웠다. (나는 그의 통치에서 그가 자신의 영혼과 통치를 분열시키지 않았던 유일한 정책이 황우석과 미FTA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라크파병과는 달리 정말로 한미FTA를 누구 등떠밀려서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릴 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가 죽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니 참 좋다'고 활짝 웃었던 것처럼 봉화에서 영혼과 삶이 일치하여 살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시골로 내려가더라도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젠장. 조선 천지에, 어디에도, 율도국 따위는 없다.
노무현은 정치를 하는 동안에도 늘 실패하는 정치인으로 비극적이었고, 대통령이 되어 통치를 하는 동안에도 많은 경우 자의 영혼과 대통령으로서의 자기의 역할을 분열시켜야했던 비극적인 사람(으로 이제는 기억되고)이였고, 그 좋다던 봉화로 내려와서도 결국은 해피앤딩을 맞이하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우린 그의 삶에서 비극을 본다. 그리고 그 비극에서 우리의 삶과 운명을 보고 슬퍼하고 애도한다. 우리는 그의 삶의 비극에 감응되고 있다.
우리가 애도하는 것이 우리 삶의 비극이라면 나쁘지 않다. 충분히 울고 난 다음, 비로소 우리는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작을 시작해볼 수 있는 용을 써볼 수 있을테니깐 말이다.
엄기호, 2009-05-29 02:52:39
출처 -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page=3&no=3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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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6/01 00:39 | Scrap & Tag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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