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골의 추억.


개인적인 이야기들입니다 :)

언제나 뛰어다니던 그 길, 그 골목.
참살잇길 입구에서.
내가 마지막 살았을 적엔 저 자리에 토다코사가 있었는데..

저 길 너머로 걸어들어가면 절이 하나 있는데, 난 그 근방에서 하숙을 했었다.
꽤 여러 명이 살았지만 나중엔 시트콤 제목처럼 남 셋 여 셋의 하숙생들이 남았다.
남 셋 여 셋이였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별 일은 없었다. ㅋㅋ
옆 방 법대생 오빠 방에 놀러가서 처음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근처 바에서 그 오빠 친구가 (아마도 어제 생일을 맞은 7살 연하의 꼬맹이랑 비슷한 나이였을게다, 그 시절엔) 사귄다는 연상의 여성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훔쳐본듯 두근두근하곤 했었다. 그 시절에는.

ㅎㅎ 별 게 다 생각나네.
하숙집 근처에서 사기 당할 뻔 한 거라던가, 늘 겨울에 즐겨먹던 근처 편의점 찐빵도.
하숙집 아주머니는 건강히 잘 계실까?
같이 방 쓰던 언니도, 옆 방 성신여대 언니도? 그립다. 모두가.

노란 간판의 저 안경점에서 컬러 렌즈를 했고
대구 친구들과 함께 가서 처음으로 소프트 렌즈를 구입했었지.
하나 끼는 데 30분 넘게 걸렸었어..ㅍㅎㅎ

그리고 내가 저걸 찍은 자리에서 만창동 사람들과 안동찜닭을 먹기도 했었고
나를 좋아하던 참치군이 내가 아프던 비오던 날 인스턴트 죽을 사 주기도 했었지. 어렸어, 그땐 정말.

내 다리 부러진 걸 오진했던 고대 안암 병원.
나중에 용두동에서 자취했을 때 집 주인 아주머니 막내 아드님께서 밤에 구급차 불러놓고 정원까지 기어나온(...) 나를 업어다가
응급실까지 같이 가 주셨었는데, 무척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
구급차의 요원들이 들어오려면 문을 열어줬어야 하니까;;

그때 당시 누워있던 내게 달려와준 성신여대쪽에 살던 언니에게는 지금도 정말 감사하고 있어.
이제는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 부분도 있었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잖아.

비가 와서 많이 흐린 날씨.
난 저 길- 이공대로 향하는-을 유선이랑 같이 많이 걸었었어.
기억난다, 그 여름.

그리고 다른.. 하이텔쪽 동생이 저기서 나한테 건냈던 말들도 기억나.
미안해, 보답할 수 없던 마음이라.

아 나 왜 남들 울린 기억만 생생한 거냐-_-; 무서운 여자;;

혜성분식.
여기 떡볶이랑 튀김 맛나지. 여름밤엔 늘 나와서 냉면이랑 같이 시켜 먹곤 했어.
음.. 고대 학생회관 식당의 냉면은 2000년도엔 천 원이였는데, 지금은 얼마일까?

같이 먹던 B님께 항상 떡볶이를 한 입 크기로 잘라주곤 했는데...뭐;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들.

엄청 자주 가던 만화방! 마일리지 꽤나 쌓았었는데.. 신간도 많았고;
동대 주변 만화방은 저정도 시설이 되는 데가 없어서 아쉽.

어젠가 압구정에서 보드카페 쥬만지아 아직 영업 중인 것을 보고 놀랐어.
보드카페에서 밤 새워 놀던 기억들, 재미난 벌칙들.
보드 카페도 안동찜닭도 스티커사진도- 그냥 다 지나가버린 세월의 흔적들이 될 줄이야, 그 땐 잘 몰랐어. 그치?

고 대 앞에 스타벅스가 생길 무렵이 언제였더라?
리미가 저기서 날 기다리곤 했었는데.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다]님의 포스팅 안에 스타벅스 스콘이나 베이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저길 떠올렸었어.
얼굴도 보지 않은, 호감만 잔뜩이던 이웃분들.
잘 살고 계십니까?

몇 달 전 페이퍼 시절의 이웃분이 돌아가셨단 이야기에 조금 충격이였는데..
다들 건강하면 좋겠어요, 정말로. 몸도 마음도- 어디서든요.


하이텔 유명인이시던 imp 님이랑 같은 이름의 커피숍.
집을 구하기 위해서 벼룩시장을 들고 여기서 죽치고 기본안주(?)로 나오는 소라깡을 먹어치우기도 했고-
하순이가 놀러 오면 여기서 차 마시면서 수다 떨기도 했지.

하순이랑은 인제 일년에 한 두번 얼굴 보기도 힘들구나; 쳇;;
진아언니랑은 스트라다에서 보고, 잰언닌 프랑스 간 이후로 감감무소식. 현아언니도 미국 갔다는 소식만 어렴풋.
왠지 슬퍼지네요, 혼자 남겨진 기분. 그치만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믿고있어.

한 여름 해질 무렵 저녁에 일 끝나고 여기서 맥주랑 통닭이면 남 부러울 것이 없었지.
유선아, 기억해?
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네가 정말 정말 좋았단다..

우리 잘 살자.
고대 이공대 뜰에서 함께 걷던 그 여름이 어제같아.

ㅇㅁ 언니덕에 알게되었던 떼르드 글라스.
난 여기 녹차 아이스크림에 중독되어서 매일 두세번씩 먹곤 했었는데.
옥수수랑 토마토를 좋아하던 언니님. 잘 살고 계십니까, 허허..

이젠, 떠올리는 것으로 마음 아프진 않으니. 잘 된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제 한국에도 네일 전문 잡지가 나오네?! 하고 놀라 찍은 사진.
저 서점 말고 내가 자주 가던 곳은 문과대쪽 서점..


용두동 집으로 향하는 길.
밤을 새고서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이 길목에서 일본 여행에서의 새벽을 떠올렸지.
까마귀가 있으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

리노아님이랑 만나서 여름에 미역국과 딸기잼 샌드위치가 나오던 돈까스를 먹었던 가게는 사라져 버렸더라.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랑 제육덮밥 맛나게 하던 밥집도 못 찾겠어서.. 좀 화가 났달까?
세월은 너무 많은 것을 변하게 해.

기억만 남아서 나를 조금 외롭게 해.

내가 저 거리들을 어떤 마음으로 걷고, 달렸던가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해져.
20대의 시작을 이 곳에서 보냈었어, 이젠 30대를 손꼽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기서 보냈던 소중한 시간들을 나는 잊지 못할 꺼야.


학교 가는 길에 차비를 빌리기도 했던 18살 어린 내가,
촌스러운 긴 치마에 무심한 표정으로 마음을 감추었던 내가-
아직도 저 거리 어디에선가 서성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비가 오던 6월, 어제.
참살이 길에서 찍은 내 추억의 흔적들.
이제는 너무도 달라져버린 거리의 모습과, 그리고 나.

자주 가던 빵굼터는 파리 바게트로 바뀌어 있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이제 만나기 힘든 사이가 되었어.

나는 또 이곳에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부디 좋은 곳으로,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래.

ps. 마치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같네; 쓰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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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 2009/06/10 10:15 | ㄴ사진 (前 in my days)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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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6/10 10: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9/06/15 00:15
와~ 정말 토박이시네요!!!

반갑습니다 ^--^
Commented by 대건 at 2009/06/10 14:58
고대 안암병원... 얼마전에 저희 둘째가 갑자기 아파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처가집이 용두동이라 처가에 놀러가던 길에 애가 갑자기 아파서...
첫째는 처가집에 떨궈놓고 아이를 싣고 고대 안암병원으로...

뱃속에 방출되어야 할 노폐물이 쌓인게 원인이었던....
5살짜리 꼬마가 응당 해야할 응가를 못해서 배가 아팠던...
어찌저찌해서 병원 응급실 한구석 처치실에서 뱃속을 비우고 그 뒤처리를 하던 기억이 나네요...

좀 지저분한 댓글을 달게 되어 죄송스럽네요. 반가운 지명이 나오는 바람에 그만... ^^
Commented by 아이 at 2009/06/15 00:16
에고에고- 아녜요~
전 애기때부터 만성변비라 어머니께서 손가락으로 응아를 파내신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쿨럭;;)

고대안암병원은 오진이 많다는 이야길 들어서 별로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대건님 리플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네요^^ ㅎㅎㅎ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9/06/10 18:02
바로 고대 정문 앞에서 살았더랬죠.
그래서 주변에 온통 고대생 하숙을 치는 집이 많았더랬구요.
데모 터졌다 하면 하숙집 주인들이 골목에 서서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 학생 아직 안 왔는데, 그 집 학생은 왔소...이러면서.
그 때가 1960년대 초였답니다.

오빠가 고대 나왔고, 큰조카가 고대 나왔고, 어머니가 고대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고대 영안실에 계셨고...내 인생의 반 이상이 그 동네군요...
Commented by 아이 at 2009/06/15 00:18
아.. 정문이면 - 어딘지 알 거 같아요!!!!!! 거기구나..

1960년대의 고대 안암골이면 파전과 동동주의 시대, 또.. 통기타와 나팔바지, 낭만이 가득했을 것 같아요+_+

언니도, 요 동네랑 연이 깊었구나..(끄덕끄덕끄덕...)
뭔가 아련하시겠어요.
Commented at 2009/06/15 00:4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9/06/15 20:36
아..그렇구나..

10년 사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해왔네요, 한국.
사진으로만 보던, 부모님들의 10대 시절..

언닌 넘 어려보여서(젊어보여서?>_<;) 6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요! ㅎㅎ
종로가 고향이라니, 멋진데요?!
Commented by 말코비치 at 2009/06/15 20:03
오늘도 혜성분식 꿀꺽 ;;
Commented by 말코비치 at 2009/06/15 20:04
참고로 참살이길 보드방은 살아남은게 없는 것 같더군요
Commented by 아이 at 2009/06/15 20:35
핫! 드신겁니까;ㅁ;/

..음; 참살잇길 보드방 몇 개 됐었는데;;-_ㅠ
이젠 다 지나간 추억의 이야깃거리죠. 제가 자주 가던 만화방 건물에도 하나 있었는데;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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