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일기] 오늘의 미션 - 혼자서 영화 보기






아카데미 극장 포인트로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적립 포인트를 쓰고 나머진 남는 건 줄 알았는데 영화 여섯편 당 한 편 공짜라는 제도였다.

조조영화 티켓을 끊으며 "오후 것으로 바꿔 드릴까요?" 하는 언니에게 웃으며 그냥 달라고 말했다.

어차피 혼자 볼 영화고,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 금요일도 조조다.

아마 앞으로도 대구에서는 오후 시간 대에 영화 볼 일은 없을 거다. 내 돈 주고 보는 이상은.

 

생각보다 시시했지만, 다코타 페닝이 귀여웠으니 넘어가자.

혼자서 공포영화 보기- 생각보다 별 거 아니잖아?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영화를 잘못 선택한 감도 없잖아 있다.

 

나는 무자비하게 사람이 죽어나가고 끔찍하고 괴이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소름끼치게 싫어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신경을 긁는 영화는 그닥 무섭지 않다.

게다가 범인 추측도 너무나 쉬웠고-_-; 두 가지 엔딩 중 보지않은 나머진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건 무척 시시했다.

예측 가능한(뻔한) 영화만큼 시시한 것도 잘 없지.

블레어 위치 같은 영화를 선택했어야 하는건데. 쳇.

 

그치만 뭐 이제 다시 공포영화를 혼자 보러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시시하게 끝난 도전 때문이 아니라, 원래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호러에 투자할 돈이면 액션이나 SF, 드라마에 투자하겠다.

 

여전히 찬 바람이 부는 봄날을 헤치고 대봉도서관으로 걸었다.

볕은 따뜻한데 바람이 차가워서 겨울이랑 별반 차이도 없다.

아니 오히려 봄인데 이렇게 추우니까 뭔가 억울한 느낌이다.

봄이면 봄답게 살랑살랑 따슨 바람이 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대구역에 내렸던 그 날처럼 말이다. (얼마나 감동했는데!)

 

대봉도서관에서는 거의 매일 오후 2시에 시청각실에서 영화를 틀어준다.

양배추 삶은 거랑 특제쌈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4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내 앞에 쉬엄쉬엄 한 발짝씩 계단을 오르는 노부부의 등이 보인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한손으로는 계단 손잡일, 한 손으로는 할머니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신다.

다정한 모습에, 슬밋 미소를 짓게된다.

 

나랑 같이 맨 앞 줄에 앉게 된 그 커플분들은 다정하게 딸기우유와 크래커를 나눠 드시며 화면을 응시하신다.

오늘의 영화는 청풍명월.

안 그래도 엉덩이가 시려 죽을 맛인데,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아 손까지 차가워져 온다.

영화는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최민수 입술이 의외로 귀엽다는 것말고는 얻은 정보가 없는 영화다.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언제 이렇게 사람이 모였는지

시청각실 내 뒤로는 마을 주민인듯한 사람들이 좌석 반 이상을 차지하고 앉아 영화를 보고 있다.

물론 졸고 있는 이장(스러운) 아저씨도 계시고.

 

어쩌면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그대로 볼 수 있는걸까. (물론 재미야 개개인의 문제겠지만)

내 눈에는 모두들 영화에 빠진 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다는 스스로의 행위에 도취되어 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가방을 집어들고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복도엔 창문으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와서, 차가운 공기와 대조적으로 보였다.

 

일층 문학실로 내려가서 책을 읽었다.

하루 평균 다섯 권이나 네 권정도 읽는 편이다.

문학실은 늘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좋은데, 오늘은 왜인지 창문이 열려있어 쌀쌀하다.

견딜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 참고 책을 읽었다.

내 옆엔 쪼글쪼글한 주름에 진갈색으로 탄 얼굴의 남자어른이 앉았다.

노년, 중년, 장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애매한 남자어른.

그에게서는 골방 냄새가 났다.

시골 할아버지방에서 나는 골방냄새.

나도 언젠가는 저런 체취를 풍기며 녹슨 몸을 이끌고 다니게 되는걸까.

알고싶지 않은 미래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이마에 난 여드름 문제도 생각하기 싫은데 뭐.

그나저나 이 끈덕지고 집요한 여드름들은 언제 사라지는걸까.

십대가 다 지나도록 이렇게 여드름이 난 적은 없었는데, 난 이제서야 사춘기를 앓는 걸까.

 

엄마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밖으로 나선다.

여덟 시면, 도서관이 닫을 시간이기도 하다.

자판기에서 이백원짜리 커피를 뽑아 마셨다.

오슬오슬 추운 몸에 온기와 달콤한 편안함을 불어 넣어준다.

200원의 훌륭한 사치.

왠지 싸구려 광고문구 같아 우습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문자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부터, 자신을 삼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문자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지만

그 쓰면서부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엄마 미용실에 들어서니 다들 분주히 청소 중이다.

방해가 안 되게 구석에 앉아 빌려온 책을 읽었다.

엄마가 나갔다가 들어오셔서 앞머릴 잘랐다.

너무 길어서, 오기 전부터 잘라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역시나 잘라달라고 말하진 못하겠더라.

쑥쓰럽고 귀찮아서- 민망한 A형은 엄마가 오실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1번 언니가 앞머릴 잘라줬다.

 예전에 맘에 들지 않게 잘라줘서 짜증을 부렸던 기억이 나서,조금 부끄러워졌다.

언니도 기억할까?

웃으며 맘에 드냐고 묻기에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그맣고 귀엽고 정직한 언니처럼

정직한 앞머리가 나와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격나쁜 오빠가 잘라주는 게 더 맘에 들었는데,

그 오빤 일찍 나갔으니까 뭐.

 

어째서 창조물은 주인을 닮는걸까.

이렇게도 서글프게.

 

정직한 앞머리를 좋아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정직한 언니는 너무나 좋으니까.

 

도서관 앞에서 떨이로 사온 딸기는 참 달고 맛있었다.

루비같은 빛깔에 달콤하고 신선한 향기가 입 안에서 터져 녹아 사그라든다.

봄의 보석같은 과일이다.

늘 딸기의 예쁜 구석에 반하고, 감탄한다.

저번에 우방 앞에서 사온 것들은 맹물이었는데 이번 것은 참 만족이다.

 

엄마는 아빠 생신선물로 사드린 수면 양말이 탐나시는지, 오늘은 빌려 신으시고 주무신단다.

아무래도 내일 나가 엄마 것도 한켤레 더 사와야겠다.

사실은 내가 너무 신고싶던 건데, 정작 너무 비싸 나는 못 사신고

선물로 사드리기만 하게 된다.

돈 벌면 사 신지 뭐.

 

엄마 등과 배에 부황을 해 드리고, 얼굴 마사지를 해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하고 행복한 날이었어.

늘 그런 것처럼.







오래 전의 일기.
내가 잘 하지 못하거나 안 해본 것들에 도전하던 시즌이였는데..
난 공포영화를 무서워하는데, 혼자서 공포영화 보는 걸 미션으로 잡았지만.. 영화 선택을 잘 못 한듯?

무서운 장면, 놀래키는 씬에선 옆 사람 손을 꼬-옥 잡고 으아아아아아악!!!!!!!!! 소리 지르는 습관이 있어서-_-;;
민폐;;;곤란하다.

공포영화.
그러고보니 여름철이네.
보고싶은 생각 없다. 공포영화 아니라도 볼 영화가 밀리고 깔렸으니까.

또 혼자 보러 가야할까 싶다.
친구들은 바쁘니깐;
내가 보고싶어 하는 사람에겐, 연락하면 안 되니깐.

굳쎄어라, 나님아!!

2005년 봄날의 내가 그립다. 쬐끔.

ps. 그땐 학생이였지.. 후후후 ㅠㅠ
오늘은 2009년 6월 15일, 주말 같은 월요일. 남들 다 출근하는데 나는 부은 뺨 움켜 쥐고 병원으로 가따.
혼자 병원 다녀왔어... 대단해 ㅠ_ㅠ 왠지 대견해..싶지만 사실 그냥 이것은 일상. 뭐든 다 혼자 한다.
막힌 변기 혼자 뚫는 건 진짜 힘들지만 엉엉엉..ㅜㅜ 해야만해... 아 진짜 싫다.. 왜 막히는 거야 변기님.. ㅠㅠ 막히지 말아줘 제발..ㅠㅠ
이글루스 가든 -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쓰기




by 아이 | 2005/03/14 16:12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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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6/15 16: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9/06/15 1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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