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그리고 비정규직 단상.


오늘이 첫 출근이였다. 두 달 정도만 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맘으로 씩씩하게 출근했다.
시청역에서 가까운 곳이라 집에서 헬스 들렀다가 걸어 갔다.

유니폼은 soso.. 근데 고 한 달간 살이 쪄서 스커트 앞 부분이 좀 짧아보인다;
어서 빼야지;;; 끙차;

일본에서 알바하던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랑 너무 너무 즐거웠고, 활기차던 그 때.
어릴 때나 하던 아르바이트를 이 나이 먹고도 하고 있다고 어머니가 아시면 눈살을 찌푸리시겠지만, 나는 그저 즐겁다.
그리고 조금 흔들릴 뿐이고.

회사 두 어군데를 거쳐서 결국 내가 돌아온 자리는 일용직, 파견직, 비정규직이다.

주변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충고를 하지만,
나 역시 많은 길을 거치고 거쳐서 온 자리가 여기다.
그것밖에 안 되느냐는 부모님의 따가운 시선이 등 뒤에 서늘하니 붙어있는 기분이지만,
나는 괜찮다.

어느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내가 돈을 벌어서 내가 쓴다.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2월부터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번 달에는 조금 적게 벌고 나를 위해 많이 투자하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시간도 짧은 편이고.
그치만 직원들 일할 때 난 주문만 받으니 왠지 미안해서- 더 돌아다니면서 테이블 케어하고 그랬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10시-2시에 일하는 바는 두 배의 돈을 주던데
그냥 차 끊기기 전에 일하고 걸어다니는 호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네 시간 일하고 요정도구나, 하고 나는 생각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많이 받는 거라며 놀라워 했다.
요즘의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와 내가 하는 건 조금 다른 편이니까;

모르겠다. 내 선택이 잘못 되었던 건지도.
일본에 다녀오면서 모델 쪽 일이 거의 끊겼다.
홈쇼핑 촬영이나 출사 쪽 일들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번번히 면접이나 프로필에서 떨어지니까 뭐;
그렇다고 간절히 하고 싶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좀 씁쓸하다.
내가 내 위치를 알기에, 좀.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직이나 내가 하는 일들에 나이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고 싶은걸.

돈을 아주 많이 벌거나, 혹은 인기를 얻거나 그런 것을 원하진 않는다.
그저 평온하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케잌 쪼가리나 나눠 먹으면서 한가로운 오후를 가끔 즐길 수 있으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게 참 생각처럼 쉽지 않네;

인터넷 기사로 쌍용의 이야기를 읽었다.
작년 가을, 투쟁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며 인천의 대우 금속노조 사람들이 떠올랐다.
대치된 현장에 높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노동자들과 용역깡패들,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끼리 어깨를 부딪치고 고함을 질러대야만 했었다. 속상해.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비정규직이다.
20대 여성이고, 내 능력으로 돈을 벌어 생활한다.
남자를 지갑처럼 보는 짓 따윈 하지 않아.

그치만 가끔 힘이 든다.

어서 결혼을 하고 안정된 직장을 찾길 바라는 어머니 아버지의 시선을 알고
위태 위태한 내 정신 상태와 현실적 상황을 안아주는 친구들을 생각하고
내가 배우고 싶던 공부들을 떠올리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뒤로 미룬다.

내 안에 욕심이 너무 많아 나는 휘청 휘청하곤 한다.

내가 버는 돈의 액수가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성수기/비수기를 타는 한 철 장사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프로필에서 붙고 실물 면접을 통과해서 의전을 하고 MC일을 따내고 전시회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난 잘 모르겠다.
대강 30대 초반까지겠지.

만 30세까지 남은 시간은 2-3년.
프랑스어를 배워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뉴질랜드로 양 치러 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살고싶은 마음, 나한테 없겠냐만은
결혼이나 연애 같은 거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내가 옳다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가끔 힘이 들 때는, 지칠 때는 현실이 조금 서글퍼진다.
제 때 급여를 지급해주지 않는 에이전시들도 밉고, 55사이즈가 되지 못해서 혹은 다른 친구들보다 날씬하지 못하고 덜 예뻐서
하고싶은 일을 하지못했던 현실도 조금 속상하다.

영혼을 팔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던 기회가 수 차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그럴 수 없었다.
애를 써보아도, 나는 부모님께 말할 수 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할수 없었으니까.

운이 없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선 접고 다음 생에서나 기약하자, 고 생각했다.

...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일하는 것도 좋다.

더 공부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는. 내가 꿈꾸는 내일이 올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소중한 한 달의 시작이다.
차근히, 원하는 것들을 해나가자.
한 발 한 발 걸어가다보면 닿을 곳,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나쁘진 않을 거라고 믿고싶다.

괜찮아, 그렇게 힘들 던 날들도 다 지워지고 잊혀졌잖아?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부러워 하듯이
나 역시 잘 알지 못하는 정규직의 세계를 부러워 하는 것 뿐일 꺼야.

...
일본에서 알바를 마치고 나면 늘 12시 정도의 시간이였고,
바로 근처에는 1시까지 영업을 하는 회전초밥 집이며 맛있는 슈크림을 파는 콘비니(편의점)들이 가득했었다.
7시부터 11시까지 일을 하고 나오면, 시청에서 명동- 그리고 동대입구 우리 집까지 이어지는 거리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걸어다니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하자, 싶어 하기로 한 일인데
왠지 밤마다 생각도 늘고 군것질도 늘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일본에서 바이트 마치고서 매일 800엔 정도의 군것질로 살을 찌웠었는데- 시급이 900엔이였으니^^;;;

노곤노곤 피곤하다.
내일 오전엔 인터컨티넨탈에서 의전 일이 있다. 늦지 않게 어서 자야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그 전에 해야할 일들은 더 많다.

솔직해져야지 마음 먹긴 했는데, 솔직하지 못했던 시간 동안 쌓인 것들이 너무 많다.

ps. 운전면허.. 계속 고민 중이다. 휴우;
춤도 배우고 싶은데.. 으으음;
7월이 시작된 지 벌써 일주일이 다 지나가는데, 아직도 갈팡질팡하는구나, 난.

내년의 계획을 대충 세우고는 있지만, 하루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나의 오늘이다.

이번 달엔 성당 미사도, 성가대 연습도 꼬박 꼬박 나가고
자전거도 꼬옥 배우고,
시사일미 새 프로그램도 제대로 준비하고,
발성 발음 호흡 연습도 거르지 말고,
청소 좀 하고!!!
헬스도 PT 끊어놓은 것 소진하고,
벼룩으로 옷장 정리도 좀 하고..
외국어 학원 수업 듣는 것 시작하고..
..................

에고에고고 ㅠㅠ;; 할 일들이 너무 많구나~~~~~~~~~~~;

밀린 리뷰들이나 제대로 다 작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
그래도, 연초의 불안감 같은 것은 많이 사라졌다.
암만 일이 적어졌다고 해도 회사 다닐 때보단 많이 벌고,
경력 인정이 안 된다고 해도 그때보다는 행복하다.
그러면 된 것 아닐까? 아닌가?

내 행복과 남들의 행복이 같을 수 없는데, 굳이 비교하고 따져가면서 키쟤기 하려는 내 심뽀가 우습다.
분명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생각일게다.
그런 것들로 위축되지 말자.

세상 모두가, 넌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내게 소리지른다고 해도
그냥 웃으면서 그래 그렇구나, 하고 받아쳐주고 싶다.

몇 년 전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나서,
누군가에게가 아닌 이 세상에 특별한 무언가가 되길 원했던 적은 한 순간도 없었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더 노력하느니,
나는 그냥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살아남기 위한 내 노력을, 나는 알고 있다.
안쓰러운 나의 매일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좀 더 제대로 걸아가고 싶다.

나의 오늘 내일. 그리고 먼 미래도.
이글루스 가든 -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쓰기





by 아이 | 2009/07/07 01:28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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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데지 at 2009/07/07 01:35
최선을 다해 자신에 만족하고 힘내서 살다가 뒤를 돌아보면 비록 삐뚤삐뚤 할 지언정 휘어지지 않은 자신의 길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 :D

Commented by Iren at 2009/07/07 01:40
완전 장문의 솔직한 일기..
시청으면 예전에 자주 갔었는데..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으 시네요.
그것이 전 가장 부러워요^^ 하고싶은 일을 쌓아놓고 하나씩 해간다는게..
저도 비정규직 전전하던 막 재대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ㅎ
무튼 내일도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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