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의 고양이처럼.에서 떠올렸던 비 오는 날 밤 고양이 이야기.






옷을 만들고, 디자인을 끄적거리다 희곡 수업 보강때문에 대학로에 갔다.

연극 연습 구경도 재밌었고 (두나씨가 한다는 썬데이 서울..) 수업도 즐거웠지만

혼자 돌아오는 길은 쓸쓸했다.

 

수업을 같이 들은 몇 명에게 전화했는데,

모두 전화기가 꺼져있거나 번호가 바뀌어서

닿지 못한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버스 안에서 좋아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외로워" 라고 이야기 했더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정은 섣불리 입으로 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신여대에 내려서 마침 집에 가는 00언닐 만나,

만화책을 읽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일을 맞은 언니에게 선물은 커녕 내가 위로를 받았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울음 소리같은 고양이 목소리에 쯋쯋 고양일 불러봤더니

세발 달린 검은 고양이가 비오는 골목길을 막 돌던 참이였다.

 

순간 약간 섬뜩하단 기분과 측은하단 기분을 느낀 스스로에게 몸서릴 치며

고양이를 바라보다 다시 길을 갔다.

 

차에 치였는지, 누군가에게 다릴 잘렸는지,

아기 울음소릴 내는 날씬한 검은 고양이는

인간의 눈길 따위는..이란 표정으로 내 앞을 유유히 지나쳐 갔다.

 

비가 조금 거세지자 우산을 폈다.

좀 더 비를 맞으며 길을 걷고싶었지만, 힐을 신은 발엔 물집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쉬고 싶었다.

 

이런 밤엔 맨발에 파자마 바람으로 웅크려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또 간만에 혜정이와 속닥속닥 통화하며 서로 보고싶어 했다.

 

아직 비가 오나보다.

세 발 달린 고양이가 생각난다.

감기 걸리지 말아라.

 

스스로에게도 타이른다.

아프지 말아라.

 

나는 강하다고,

해낼 수 있다고,

소리 내어 말 해보면 용기가 생긴다.

 

Fly to the moon을 허밍으로 부르며 집까지 걸어왔다.

외로웠지만, 그런 건 익숙해져서 아프거나 힘들지 않았다.

자취 5년차면 요령이 생기는 법인가보다.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나 둘 해가며 내 모습을 만들자.

예뻐졌단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을 만들자.

 

쓸쓸해 보이던 세 발 까만 고양이.

눈길이나 도움 따윈 필요없다는 표정의 까만 고양이.

난 지금 세 발 달린 까만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글루스 가든 -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쓰기

by 아이 | 2004/06/19 03:59 | ㄴ韓國日記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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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ren at 2009/07/22 09:18
그래도 그 세발 고양이는 강하군요!
Commented by 아이 at 2009/07/23 01:14
네, 이 도시의 뒷골목을 거니는 승자!!!
Commented by 은솜 at 2009/07/22 10:29
"난 지금 세 발 달린 까만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의 맨트가.. 왠지 많이 슬픈.. ㅠㅠㅠㅠㅠ


가끔은 감정표현을 하며 속에 쌓인것을 토해내야 좋다는거~ 잇힝~
Commented by 아이 at 2009/07/23 01:15
그 땐 그랬다는 거죠~

벌써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네요^^
Commented by 은솜 at 2009/07/23 08:41
왠지.. 카니발 - 그땐 그랬지.

가 생각났...... 하핫;;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7/22 11:04
같이 슬퍼지려고 하는 1人.....
Commented by 아이 at 2009/07/23 01:15
토닥토닥;; 벌써 몇 년 전의 우울이랍니다~
Commented by 모모 at 2009/07/22 11:05
좋아요 글.
Commented by 아이 at 2009/07/23 01:15
감사해요 리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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