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블로그에서 이야기 하지 않아서 비공개로 퍼 왔던 포스팅.. 허락을 구하고 공개로 돌린다. 아이들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화나면 화내고 웃기면 웃고. 그게 아이들이니까. 중요한 건 아이들이 화를 어떤 방식으로 풀 수 있게 하느냐이지 무조건 화를 내지 말라고 억누르는 건 아니라더라.
어떤 강사가 고교생 대상으로 화풀이 수업을 했다. 신문지를 뭉쳐서 동그랗게 만든 후 그게 나를 정말 화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신문지에 마음껏 화풀이를 하라고 했단다. 아이들이 '열심히' 신문지에 화풀이를 하는 걸 보 그 수업을 참관한 한 명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것이 매우 폭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전해준 이는 자신은 그것이 폭력적일지언정 의미가 있고 또한 그 모습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모습 자체는 폭력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러나 왜 아이들 안에 그같은 분노와 공격성이 들어앉아있는가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다. 그것이야말로 폭력적이다.
젊은 우리 역시 얼마나 많은 술을 들이키고 얼마나 많은 사고를 쳤던가. 나는 때로 쪽팔림보다 그 안에 숨어있는 폭력성, 공격성, 분노, 억압되었던 마음에 몸서리를 친다. 그가 술을 마시고 주변 물건을 차거나 부수려고 했을 때 나는 참 무서웠다. 그러나 비단 그의 일만이 아님을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술에 취해 조그만 일에도 주먹을 쥐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평화학>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전쟁 종결 뒤의 평화, 혹은 전쟁을 막고 있는 평화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학문이란다. 중요한 것은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에서의 감수성이라고 한다. 분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비폭력적으로 발산하기 위한 감수성.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았다.
화를 부정하고 억누른다고 화가 사라지지 않는다. 화를 적절히 발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화를 느끼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화의 원인을 타인에게만 전가하는 것에 있다. 혹은 자기비하를 하거나.
또 다른 문제는 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불씨를 계속 안고 가거나 (그러다가 한이 생긴다) 상호에게 큰 피해를 안기는 방법으로 발산할 때 생긴다.
짧게 살아오며 지켜본 바로는 남자들은 화를 내고 여자들은 짜증을 내는 비율이 높은 것 같다. (짧은 인생의 한정적 경험치이니 틀릴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남-여가 생물학적으로 원래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남녀에게 그렇게 다른 방식을 권하는 사회에서 자란다는 거다.)
여기서 말하는 화를 낸다, 는 것은 상대방을 공격하고 누르는 방식으로 발산하는 것을 뜻한다. 짜증은 일종의 칭얼거림이며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방식으로 발산하는 걸 뜻한다.
(나의 경험치 안에서) 남자들은 분노를 직접적-공격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 안에서 자라고 -힘을 드러내 서열을 매기는 방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여자들은 분노를 간접적-매개적-요구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 안에서 자란다. -감정을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 분노 외에도 슬픔 등의 다른 감정으로 전환되거나 그것들이 섞이고 타인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당연한 것처럼 요구한다.
간접적으로 발산할 경우 섞이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자기의 화 자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때를 놓친 화들이 뒤늦게 찾아오는 것을 홧병이라고 부른단다. 그래서 한국 여자들에게 홧병이 많다고 한다. 때를 놓친 화들이 나이 들면 찾아온다고 읽었다.
그러면 남자들이 더 나은가? 그렇지도 않다. 한국사회에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결국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은 미숙한 인간 취급을 받는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짜증나는 인간.
우리는 모두 화를 억누르며 살아가길 강요받는다. 그러나 불이 억누른다고 사라질리 만무하다. 그 화는 어디로 가는가? 자신에게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타인에게로 향한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억누르던 것이 폭발하면 그 흔적은 서로에게 크게 남기 마련이다. 그 시간, 그 상대에게 제대로 화를 내지도 못하고, 뒷수습 하느라 애먹고.
감수성 이야기를 했지만, 화라는 것은 어려운 생물이다. 무엇이 화인지 정확히 잘 알 수가 없다. 단지 피곤한 것일 수도 있고, 단지 낯선 감정일 수도 있으며, 단지 불편한 것일 수도 있고, 단지 놀란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누르면서 화가 생기는 지도 모르겠다.
화를 상대에 대한 공격으로 화를 상대에 대한 짜증으로 풀어내는 것 모두 자신에게 좋을 것 같지는 않다. 때로, 특히 전자의 경우는 만만하지 않은 놈, 할 때는 하는 놈, 으로 인식되는 효과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그게 과연 자기 자신에도 좋을까 싶다. 결국은 끊임없는 힘의 투쟁을 내면화한다는 거니까. 이기는 놈이 장땡이 되는 거다. 그래서 화도 전략적으로 내야 하고, 감정의 콘트롤이 너와 나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아닌 니들이 세운 잣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분야에서 똑똑해지기,이다.
어른들이 다른 아이를 때리는 아이를 윽박지르고 다그치며 혼내는 것을 보면 입맛이 쓰다. 아이의 폭력성을 나무라면서 어른도 똑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힘과 힘의 대결. 더 센 놈의 이야기가 통하는 법. 아이가 당장에는 그 윽박지름이 무서워서 행동을 멈출 수 있어도 결국 그 논리 자체는 일관적으로 허용되고 적용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화, 분노,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다.
내가 나눈 화에 대한 대화는 처음에 아이들. 아이들 대하는 어른들에서 출발하였다. 아이를 대하는 어른은 아이에게 무조건 화를 내지 말라고 해서도 안 되고, 그러나 자기 자신의 화를 어른에게 푸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다 당연한 말이기는 한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한때 알바를 했던 유치원에서는 아이에게 꾸지람을 할 때, 반드시 언성을 높이지 않고 존대말을 쓸 것을 요구했다. 아이에게 정황과 잘못한 점을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과 함께. 그러나 그게 나와 아이 둘 간의 문제 상황에도 통하는 것일까?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니라 나하고의 관계에서 둘 다 서로 감정이 상했을 때.
훈계하지 않으면서도 화를 표현하는 것은 어떤 방식이 최선일까? 아이에게 어른이 기분이 상했다, 는 감정 표현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놀라 움츠러들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길 나누던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반대로, 아이들이 화를 풀어내는 방식은 어떤 것이 권장되면 좋을까? 신문지를 구기고 분노를 표하는 수업을 참관한 이가 놀란 것은 학생들이 정말 진지하게 신문지를 마구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게 신문지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참 무서운 일이었겠지. 왜 사람이 아니라 신문지인지를 그 애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란 이유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유로 깨닫게 되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떨까? 어른들은? 나는? 개인 간의 분노도 있지만, 사회에 대한 분노는? 그런 것들은 어떻게 인지되고 어떻게 발산되어야 할까?
화는 반드시 단순한 분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슬픔 수치심 무력함 등등의 많은 것에서부터 오고 그만큼 많은 것으로 전환된다. 많은 기원과 많은 변종을 항상 해소하며 살고 싶다.
어떤 계기가 이미 내 안에 있던 다른 많은 억눌림의 뿌리들과 너무 많이 만나기 전에 빨리 캐치해서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발산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분노를, 평화적으로, 잘, 풀 수 있을까?
구체 사건이 있는 경우는 차라리 나을 것이고 우리 인생이 안기는 분노들은 어떨까. 오래된 나 자신에게 생기는 분노들은. 그래 그 이차 삼차의 파생된 괴물들은.
아, 그래서 연기를 말하나, 불교에서? 사실은 처음의 원인이 있던가? 그런데 그건 어떻게 현재로 가져오나? 그래서 그저 비우고 버리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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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잘 느끼는데 잘 풀지는 못하는 나. 벌컥벌컥 화가 난다기 보다 웅크려있는 덩어리가 있는 것 같다. 찰랑찰랑, 조금만 흔들려도 넘친다. 마치 넘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뭉근하게 오랫동안 눌려온 것 같은 기분.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인지도 모른 채 그런 기분에 티나게 흔들릴 때가 있다.
억눌림마저도 삶의 와중에 조금씩 조금씩 풀어져가길. 내가 감지하는 나의 감정들은 때로 나를 몹시 불안하게 만든다.
혹자는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라 한다. 남들은 지나치는 걸 너는 왜 그리 깊이 느끼냐고. 나는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이해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분노를 삼킨다. 니가 이렇게 살아봐라, 는 말을 삼킨다.
어쨌든 난 그냥 삶과 세상에 반항하고 있는 것일게다. 그 감정의 사슬들은. 아 왜에! 아 왜 꼭! , 유치한데다 뚝심있는 옹고집. 납득하지 않고서는 넘어가지 못하는. 무뎌지라, 는 말의 속뜻 모르는 바 아니나 나의 역사와 나의 습관이 있으니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 그것밖에 안 된다.
약간 허탈한 일은 내가 그렇게 까탈부리며 나라는 인간이 왜 이따구로 생겼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서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면 그건 내가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제야 겨우 인간이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끌어안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끌어안아 다 녹여내면 그제야 겨우 평범해지는 것.
사람들이 안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나 불안은 아마 그런 원리일 거라 생각한다. 그걸 풀어내면 천재, 영웅, 쏘쿨한 자유인...등등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제야 겨우 빈 지게를 짊어진 평범한 나무꾼이 되는 것. 내 지게 위에 얹혀있던 내 짐을 겨우 내려놓는 것.
니 짐이랑 내 짐이랑 서로 다르고 자기에게는 저마나 자기만이 느끼는 무거움이 있고 그 감수성의 그림도 저마다 다르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건 여기서도 해당하는 것 같다. 니 짐이 더 가볍고 쉬워 보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매우 무거운 짐을 진듯이 보이는 사람을 보며 자기를 위로한다. 난 그 사실이 좀, 끔찍하고 싫다. 그러니까 쟤들에 비해서 난 행복한거야, 같은 사고가. 난 좀 소름이 끼친다.
사람이 아니라, 그 사고 방식이.
이글루스 가든 - 나를 사랑하며 20대를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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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my life 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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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펴고,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조근조근.
어설퍼도 감사하며 먹고 사는 이야기.
by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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