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운 풍경들을 늘리면서 기억의 앨범을 채워가는 것이 아닐까?




090911 포스팅을 읽다가, 며칠 전의 아주 가벼운 우울이 떠올랐다.
눈에 익은 풍경과 순간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는데, 울적하던 그 당시의 기분이 손을 타고올라와 심장을 적신다.
(아 이 10대 소녀 감성이 처덕처덕하는 표현이라니 ... 부크럽네 ㅠㅠ;;)



이번에 출장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내가 살던 집이나 다니던 학교, 일하던 곳, 만났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일정이 빡빡해서 아마 만날 수는 없겠지만, 찾아갈 수도 없겠지만.. 아마 그 풍경은 조금은 변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그대로인 채 세월이 흐르겠지?

일본에서의 시간들이 내게는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에 (물론 즐겁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익숙하던 풍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갑갑해졌다.
해질 녘, 학교 수업을 마치고 혼자 집 앞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보던 노을빛 하늘.
밤 12시가 지나서 아르바이트를 마치면서 그 당시 좋아하던 사람을 떠올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오던 귀갓길의 밤하늘.
중고 서점, 책방과 오오야마 시장 거리로 이어지던 길.
잠을 이룰 수 없어서 혼자 방황하면서 걷던 새벽 무렵 집 근처와 콘비니.
이케부쿠로 역에서 학교까지 이어지는 길.
신주쿠역에서 바이트 장소로 걸어가던 공원 샛길.
힘이 들어도 활짝 웃으면서 즐겁게 일했던 내 일터들.
내가 너무 좋아했던, 시끄럽고도 귀여운 친구들이 있던 교실. 좋았던 선생님들.
만났던 사람들, 내가 전해 받은 온기.
히데야의 텐쵸와 너무도 다정하던 단골 손님들. 카츠에상은 여전히 건강하실까? 제대로 인사도 전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늘 마음이 아프다.
혼자서 늘 붙어있던 책상 위 노트북과 얼어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던 침대 위랑..
늦은 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일이나,
처음 이사한 날 아래층 청년의 문을 발로 차는 소리에 놀라 벌벌 떨던 일이라던가-
시부야 클럽으로 놀러가던 날 밤의 덴샤 안의 술렁이던 공기.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순간과 어이없는 해프닝에 웃던 일.

혼자서 늘, 거리를 쏘다니면서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혼자 많이, 너무 많이 슬퍼했던
그래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던 시간들이 와르르르륵, 기억의 문을 열고 쏟아져 나온다.

그리운 풍경들을 하나 둘 늘려가면서, 우리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것일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외로움의 시간들.
내게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으며 보냈던 서울 신림동에서의 그 차갑던 겨울.

마음이 시리고 서늘해져서, 아직은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과
조금은 그리운 그 풍경..

...
언제나, 혼자서 역 안의 식당에서 서서 소바를 먹곤 했었다.
추운 날에는 코 끝과 손 끝이 녹으면서, 뱃 속이 훈훈한 온기로 가득차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글썽, 하고 맺히곤 했었다.

터키에서의 시간들도 잊지 못한다.
그 곳에서 만났던 얼굴들도, 카파도키아 마녀들의 밤과 같던 붉은 밤 하늘도..
괌에서의 그 친절한 미소들도, 태국에서 보낸 시간들도, 호주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밤 수영을 즐기며 바라본 그 큰 달의 모습도..



...

사랑스러운 풍경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과 그리운 나날들.

 나의 이 오늘도, 언젠가는 그리운 풍경의 한 페이지가 되겠지.

엉망으로 어질러진 방에서, 등받이 없는 화장대 의자에 앉아서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글을 쓰는 이 시간도.


떠나면 무척이나 힘들고, 고생하고, 또 아플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굳이 나가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할까?
허영이고 탐욕일까?
아니면 책임져야 하는 것들로부터의 도피?
아직은 준비하는 시간이니, 이 곳에 머무를 수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나누고 떠나야겠다.

친구들과 더 자주 만나고, 엄마와 더 많이 통화하고, 이 곳의 풍경들을 가슴에 담고-

그리고 나서, 가야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내 인생을 살아가야지.

나의 내일은, 고독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과 좀 더 친해져서
너무 아파하거나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소중하게 여기던 인연들 중 떠날 사람들은 떠났으니
지금 남은 모두에게 감사하면서 아껴야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허술하게 씌여지거나 그려지지 않기를.
안녕, 나의 20대.

ps.  나는 슬픔이여 안녕,이란 제목이 bye bye의 안녕인줄 알았는데 hello의 의미가 담긴 안녕이였다.
한국어는 참 어렵구...아니 재미있구나.


ps2. 그립던 풍경들은, 제대로 사진을 남겨놓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내게 남은 것이 기억 뿐이여서일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풍경들이, 그 한 군데 한 군데가- 내게는 너무나 쓸쓸하고 고즈녘하고 훈훈하고 빛나고 어둡고 차갑고 시원하고 뜨거웠다.

ps3. 이타바시 성당에서의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대모 언니랑 신부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연락하기가 더 어려운데.. 올해가 가기 전에 꼭!!!

ps4. 그리운 풍경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기에 변한다.
어린 시절 뛰놀던 황금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는 롯데 골드 캐슬 상가단지로 변했고
일본에서 공사 중이던 집 주변의 곳곳 역시 변했겠지,
내가 일하던 곳의 동료 친구들도 바뀌었겠지...

하지만 하늘만은 여전히 푸른 빛으로 십 년 전이나 백년 전에도 늘 그 자리에 있어준다.

환경을 소중히 해야겠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
아 뭐 결론이 이래? ㅠㅠ;;

사진은 2007년 4월 18일? 정도? 일본으로 떠나던 날의 비행기 창 밖.






일본에서의 내 첫번째 방.
한국에서 아파트 사기 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일본에 가서, 또 비슷하게 집 문제로 고생을 해서..
당시에 많이 울었었다^^;

내 일어가 늘었던 것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 분노의 힘으로 초반에 익힌 덕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

서바이벌 일본어랄까-_-; 말을 못 하면 전기도 연결 못하고..ㅠㅠ 엉엉.. 참 분한 일도 많았었구나..^^;


우울하다,라고 시작했지만 역시.
지나간 많은 것들은 그립구나.
혼자라도 많이 즐거웠으니까. 아 그치만 왠지 쓸쓸하구나;;; ^^;
!#1#!




by 아이 | 2009/09/12 02:37 | girl talk (18세 소녀감성)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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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칼리토 at 2009/09/12 02:38
지나간 것들은 그립지만. 그것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기에 더욱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 봅니다.
그게 슬픈 것이건, 기쁜 것이건, 자신이 기억하는 한, 그건 자기의 역사 그 자체니까요.
Commented by 아이 at 2009/09/23 15:34
맞아요.
때로 너무 아픈 기억들은 잊혀지길 바라지만
떠올릴 수 있는 한 그 모든 것들은 제 것이고, 제 자신인 셈이지요..
Commented at 2009/09/12 06: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9/09/23 15:34
네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무사히 다녀오셔서 다행이예요~! ㅎㅎ
Commented by 데지 at 2009/09/12 12:45
아아. 분노의 일본어! ㅋㅋ
Commented by 아이 at 2009/09/23 15:35
ㅋㅋㅋㅋㅋ 상상이 가시나요?
Commented by 늄늄시아 at 2009/09/12 16:20
서바이벌 일본어... ;ㅅ; 뭔가 무시무시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일본에 가면 초밥도 있고~!" 라는 CF가 생각난..)
Commented by 아이 at 2009/09/23 15:35
ㅎㅎ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랄까..
일단 일본 접객용어가 존댓말이라...ㅠㅠ;; 열심히 공부하고 듣고 말해야 해ㅔㅆ어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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