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늘 느끼던 거지만, 내가 자유롭게 적는 글들은 대부분 감정 위주의 전개로 흘러간다. 사건 위주가 아닌 감정의 흐름에 따른 서술이기에, 논리적인 면이 빈약하고 나약하고 감성적이기 쉽다.
더욱 스스로가 느끼면서 유치하구나..싶은 부분은, 대부분의 글을 감정에 도취된 상태로 쓰는 습관 때문이다.
어떤 감정에 흠뻑 젖어 있는 상태에서 쓴 글은, 아마 비슷한 감성을 지니고 있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어필이 되겠지만 논리적 사고방식으로 글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들에게는 와 닿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인어공주는 왜 물거품으로 변했을까-(http://anex.egloos.com/4685373)포스팅 같은 경우 역시,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어떤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하면서 쓴 글이지만 일단 제목을 그렇게 달면서 약간 논점을 흐리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포스팅에서 말하는 사랑은 자기 희생적이고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마더 테레사나 예수님의 인류애적인 사랑, 혹은 부모가 자식을 보며 느끼는 베푸는 사랑이지 현실적인 연인 간에 이루어지는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녀 사이에서는 서로에게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고 그 욕구와 바램들이 건전하고 (음?;) 원활하게 교환되고 이루어지면서 완성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베풀고 또 거기에서 배우고 자라는, 그런 자연적이고 은혜로운 사랑은 그러한 현실적인 사랑이 자라면서 이룰 수 있는 단계에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보다는 그러한 사랑에 대한 표현과 느낌에 치중한 글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을 지 모르겠다.
글쓰기의 목적은 여러가지다. 나는 대부분 글쓰기를 통해 내 감정이나 생각을 담지만 그것은 내 일상의 기록과 함께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쓴다. 하지만 간혹 어떨 때는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거나,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 쓰기도 한다.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글을 쓸 때도 있다.
블로그에 쓰는 글은, 내 생각을 말하면서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감정에 치중한 글은 다른 이가 들을 수 있는 대사가 아닌, 혼자만의 독백이나 방백이 되고 만다.
글 자체로서의 평가가 아니라 출발점에서 생각했던 목적을 떠올리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물론, 좋은 글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글쓰기 역시,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이나 좋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필요까지 있을까?
예전에 일본에서 라우렌시오신부님을 처음 만나서 어쩌다 삼성이나 피랍사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신부님께서는 난처한 표정을 하시며 서둘러 이야기를 피하셨었다. 나중에 읽게 된 가톨릭 성서의 집회서에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그 자리를 피하라고 적혀 있었다. 나쁜 말을 꺼내지도 말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쁘다고 느껴지는 것들 앞에서는 그것에 동조하지 말라는 것이였다.
최근의 나는 건강상태의 악화와 (일단 회복기이긴 한데 매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재정 상태, 인간관계로 인해서 약간 부정적인 감정상태를 느끼고 있다. (슬픔, 두려움, 비참함, 우울 등등?) 그런 감정은, 감정의 흐름 글쓰기를 하는 내 글에 분명히 조금이나마 비춰질 거라 생각한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어떤 감정들을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은 좋은 평가를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로그의 포스팅이라는 글의 매체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그런 글들은 좋게 바라볼 수가 없게 된다.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내가 디자인 하는 옷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각에 대해 배웠다면 문예 창작과에서 내 전공인 시를 통해서는 문학이 사회와 소통하는 것에 대한 고찰이나 인간의 생과 글에 대한 표현력을 기르고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두 가지 전부 무언가 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을 배운 것이지만, 그 표현 방식은 예술이라는 방향에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내가 논문을 쓰고 무언가를 연구해 보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접해보지 않은 신세계니까..;)
하지만 내 글의 단점이자 약점은 최대의 강점이자 장점, 특징인지도 모른다. 세부적인 사건 위주가 아닌 감정 위주의 흐름에 읽는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이입해서 읽을 수 있다. 딱딱하고 논리적인 글보다, 쉽게 씌여진 회화적이고 구체적인 표현들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역시 과유불급.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진 내 글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유치하구나 하면서 자신의 짧은 감정상태나 생각들에 한숨을 쉬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글쓰기의 방향에 대해 되돌아볼 때가 아닐까?
2010년 02월 28일 16시 30분에 남긴 음성
블로깅을 통해, 늘 쓰고 싶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것은 내 신변잡기적이고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의 흐름 같은 것이 아닌 내가 몇 년, 혹은 몇 개월간 일을 하면서 혹은 취미들을 통해 배운 어떤 스킬이나 일의 흐름, TIP 같은 것들이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 내가 배운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문서로 정리했을 때의 학술적, 혹은 실용적인 면에 있어서 아직 시도되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주목받음으로 생기는 트러블들이나, 다른 누군가가 내 글을 통해 내 개인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갖는 것. 혹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적이고 보통 사람으로 인식되어지길 바라는 바램이 그 글들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을까봐서 ... 그런 것들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다.
우스운 일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아주길 바란다는 것이나 주목받고 성공적으로 읽힐까봐서, 라는 자체에서 나는 이미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특이한, 혹은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정하에서 자유롭고 솔직한 글이 나오기란 어렵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내 글이 읽힌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준다는 것, 비판이든 동조든 의견을 이야기 해 준다는 것 역시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두려움과 부담을 넘지 않으면 아마 평생을 가도 쓰지 못할 이야기들이 아닐까?
... 꼭 쓰여져야만 하는 글들은 아니다. 그저 내가, 쓰고 싶어하고 그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 뿐.
사람의 행복은 기대와 만족(기대 충족) 사이의 갭이 적을 때 이루어지기 쉽다. 어떠한 욕구가 내 안에서 생겨났다면, 그것을 충족시키거나 뛰어넘는 행동과 결과로 만족의 상태에 이르던가 아니면 그 욕구를 제거하거나 줄이는 것으로 그 갭을 축소시킬 수 있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는 내 마음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선택 다음에 이어지는 선택의 결과와 책임들을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책임에 대한 부담감을 미리 안고 내 욕구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 바봆여서. 2. 왕자를 너무 사랑해서. 3.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 없이 살아가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4. 예전부터 한번쯤 물거품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5. 가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한 때나마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그것만을 가지고 떠나겠다고 생각해서 6. 기타 등등
5의 답은 왠지 내가 좋아하던 노래, 헝그리 스파이더-hungry spider-가 생각난다.
글 내용 추가하신 것 한줄 한줄 정독했어요. 제가 아이님의 블로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큰 이유가 아이님의 글은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주제가 뚜렷하고, 아이님이 그 글을 쓸때 느끼신 느낌과 생각들이 그대로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진솔한 글이라는 점이지요. 어떤 소설가, 수필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이님의 글들은. 그다지 감정의 과잉이랄까 그렇게는 느끼지 않았는데..... 아이님이 쓰고 싶으신 일이나 취미에 대한 내용들, 그런 글이 필요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참 많을거라 생각되는데, 꼭 도전해 보세요. 이제 3월입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리는 3월 봄날들 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