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성야] 사랑은, 용서일까.


[성금요일] 세례 받은 후, 처음 맞이하는 부활축일.을 보내고 토요일 밤 9시 부활 성야.

6시부터 연습이였는데 앓다가 7시에 출석했다. 세실리아 성가대와 함께 연습을 했는데 2시간이 금방 지나가더라.



처음 드리는 부활 성야는, 뭐랄까 꽃밭 같았다.
성가대는 늘 위에서 바라보니까.. 어제까지 아무 것도 없던 제대 앞이 노란 색 꽃과 새로 화사하게 꾸며져 있었고
어린이 복사들도 스무명이 넘게 많이 있었다. 졸렸을텐데 기특한 것들.

모든 불이 꺼진 상태에서 조용히 입장하시는 신부님과 모두들,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하나씩 켜지는 촛불이 인상적이였다.
내 옆엔 클라우디아가 있었는데 언제나처럼 뽀얀 피부에 하얀 미사보를 쓰고 성가대 단원복을 입고 촛불을 든 모습이 예뻤다.

부활 성야라 그런지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신자들이 많았다.
여자들이 많았던 것처럼 보였던 것은 하얀 미사보가 많이 보여서다.
마치 화단에 핀 꽃처럼 느껴졌었다.

연습하면서부터 으슬 으슬 몸이 아파서 정말 힘들었는데, 다행히 노래를 부를 때는 괜찮아지더라.

1,3,5,7번째 회답송과 글로리아, 아뉴스데이, 상투스.. 그리고 할렐루야.
모두들 연습한대로 잘 부른 것 같다. 녹음을 해 왔지만 파일 변환하는 걸 (용량이 커서;) 못 찾아서-_ㅠ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 뭐 대충 휴지로 수습하면서 미사를 드렸었다.

절을 연꽃향이 싫어서 싫어했었는데, 성당에서도 연꽃은 아니지만 향을 피운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계란에 축성드리는 것도 첨 봐서! 왠지 귀엽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성십자가 성가대에 들어와서 소프라노로 미사를 드린지 이제 2년하고도 4개월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 크리스마스에 프랑스 노틀담에서 성탄 미사를 드린지도 4달이 지났다.
시간은 참 빠르구나.

토요일 새벽에 잠이 들어서 낮 동안 자다 깨다 먹다 토하다 방을 치우다 뭘 버리다 또 잠 들다가- 했다.
 아침에 빨래를 하고 널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광진의 진심-이란 노래 때문에..
다시 그 사람이 내게 돌아오겠다고 해도 내가 과연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끊임없이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사랑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아니 우선은- 나는 내 자신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용서할 수 있을까?

토요일 내내 그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었다.

.....

하지만 미사를 드리면서, 왠지 용서받는 기분이였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모두를 용서하고 나 자신을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런 마음이였다.
다행히도.


누군가 내게 무언가를 요구해도 난 이미 아무 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을까.
살아가는 것이 죄를 쌓는 것인지 혹은 모두를, 전체를 용서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지.
하루 하루에 자신이 없는 나는 요즘 너무 쉽게 운다.

눈물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몇 년 전처럼 마냥 허약하고 아픈 아이처럼 보일까.
잘 모르겠다.
내게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든 나와는 관련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 것들은 내 것이 아니니까.
당신의 몫이지 내가 감수해야할 것은 아니다.

이 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일부러가 아니라 자연스럽다. 내 일상은 타인과 공유할 것이 아닌, 내가 만나는 이들. 내 가족,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하느님은 계신다고 믿었다.
나는 과연 그 분과 함께일까.
매일 매일 나를 괴롭히는 통증 속에서 내가 그 분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요즘이다.
나는 그 분과 멀어져 있을까, 얼마만큼..

내일은 부활절이다. 활짝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나듯 세례를 받은 영혼이 성수에 적셔지듯 새로 태어나고 싶다.
그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아득한 요즘이다.



사진은 파리의 노틀담 성당에서, 2009년 12월 25일.

오늘 미사곡의 솔로도 참 좋았다.
아름다운 음색이 성탄 미사의 프랑스 성가대를 떠올리게 하더라.
(라틴어로 부르는 건 똑같으니까..)

노래하는 게 참 좋다.
내 자신의 몸이 하나의 악기가 된 기분으로 소리를 뽑아낸다.
(배근육을 막 울룩 불룩 움직이면서=ㅂ=;;;)

내일 부활미사도, 잘 드리고 싶다.
기도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는데-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ps2. 바보 같은 짓을 연거푸 연거푸 하고 있는 기분이다.
무언가 바뀌고 있을까? 더 건강해지고 싶다. 나를 위해서, 또 모두를 위해서.

이글루스 가든 - 상처에 입맞추기





by 아이 | 2010/04/04 02:13 | ㄴCatholic holic | 트랙백 | 덧글(14)
트랙백 주소 : http://anex.egloos.com/tb/471487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10/04/04 02: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04 14:21
하느님 품에 안겨서 잠들고 싶은 요즘인데..
이미 안겨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 하는 것 같아요.

ㅎㅎ
즐거운 부활절 보내세요. 전 오늘 5시부터 연습예요 :)
Commented by 맑아릿다 at 2010/04/04 02:27
저도 미사 드리러 다녀왔어요^ㅅ^
고해성사 안해서 성체는 못 모셨지만(..)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04 14:22
으악 저 고해성사 못 봤는데 성체 모셨어요!!! 으앙 어쩌지 ㅠㅠ
오늘은 꼭 고해성사 봐야지;;

성가대는 늘 먼저 준비하고 연습하느라 고해 볼 시간이 늘 없네요 ㅠㅠ 아후;; 변명이고 핑계지만 진짜 그래요 ㅠㅠ
Commented by 맑아릿다 at 2010/04/04 18:13
지난 주일미사 보셨으면 고해성사 없이 성체 모셔도 돼요:)
저는 지난 주에 땡땡이를 쳤기때문에 고해성사 봐야함......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10/04/04 07:10
사랑은 용서하는거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도저히 용서 못하겠는 대상은 있는거죠 쩝쩝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04 14:23
어쩔 수 없죠, 인간이잖아요.
그래도 가끔은 용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 스스로나, 미운 이들을요. 사실 어떤 경우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Commented by Xeon at 2010/04/04 08:39
음'ㅅ'...
그 간절함... 잘 담아서 빌어보아요'ㅂ'~
그나저나 지금은 컨디션 괜찮으셈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04 14:23
ㅎㅎ 아침 문자 감사했습니다.
많이 나아졌어요. 아마 이거 독감인 것 같아요.
어서 나아서 몸이 가벼워지고 싶어요~
Commented by Xeon at 2010/04/04 14:26
아!!
부활달걀 드셨나요+_+?!(...)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04 14:56
아뇨 대신 어제 미사 마치고 치즈케이크와 마카로니치즈와 자몽과 쿠키와 와인 등등을 거하게 먹었어요;;;
=ㅂ=;; ㅎㅎ 부활계란은 갯수가 모자란 것 같더라구요~~
Commented by Cpt Neo at 2010/04/04 14:45

저도 비슷한 생각 가끔 해보지만...
저보단 참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시는거 같아요.
전 아직은 용서가 안되는 일이 많은거 같으니까요. ^^;

역시 신앙의 힘이려나요.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04 15:00
하지만 저 역시 눈 앞에서 마주한다면 용서고 뭐고 떠나서 크게 화를 내고 소릴 지를지도 몰라요.

그 문제에서 떨어져 있고 회피할 수 있는 자리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몰라요.
누군가 제 눈앞에 그걸 들이대면 예전처럼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죠.

근데 나이 들면서 느끼는 건데요,
결국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계속 그 무엇이나 누군가에게 마음을 붙들려서 미워하고 있는 상태인데-
으음.. 적극적인 용서는 아니여도 소극적인 용서는, 잊는 것일까요.
잊으면서, 그냥 미워했던 혹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을 떠나보내면서 일시적인 홀가분함이라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 것인지 느끼고 있어요.

신앙의 힘,보다는 가르침에 대해- 살면서 그걸 따르려다 보면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cpt neo님도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
Commented by Cpt Neo at 2010/04/04 15:33

그러게요.
웬지 아이님 말씀이 정말 하나하나 다 맞는거 같네요.
용서란건 결국 내가 자유로워지는 길 같긴해요.

저의 경우엔 내가 용서를 해주는 시점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게 되는 다른 문제가...
그래서 절대로 상대방을 용서를 못해주는 상황이 있다보니 더 힘든거 같기도 하네요.

모처럼의 휴일인데...
좋은 생각만 하면 좋겠어요 ^^

편한 일요일 보내시길 바래요. ^^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가슴을 펴고,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조근조근. 감사하며 먹고 사는 이야기.
by 아이
카테고리
전체
about here & me
Why?@! (Q&A)
低俗하게 blahblah
Healthy& Beautiful 삶
ㄴDiet & Healthy life
ㄴFashion & Make up
ㄴ착장 기록, 메이크 업
ㄴyammy yummy - 食
ㄴㄴ자취생의 소꿉놀이 (요리)
Earth trip 지구별 여행 일기
ㄴ東京日記 (2007)
ㄴ日記 (2008~now)
ㄴ3&ka logs (2010~2011)
ㄴ韓國 내 나라 탐방
Enjoy study
ㄴCatholic holic
ㄴWorkroad
ㄴㄴS/M/C/G
ㄴ외국어 공부 연습장 (E,日)
ㄴ빵과 장미 (노동법,인권,심리)
ㄴ미디어 행동 네트워크 美行
Unlocked Secret (뻘글)
girl talk (18세 소녀감성)
ㄴ♡
My Favorite
ㄴ라이더가 되고 싶어
ㄴHappy hobby logs
Make something-文,畵,音
ㄴReview & 후기
ㄴ글(시,소설,수필,동화,기사)
ㄴㄴ이글루스 빌라 204호 아가씨
ㄴ그림 (일러스트, 원고, etc)
ㄴ사진 (前 in my days)
ㄴㄴ 오늘의 펑 포스팅 ^^;
ㄴ소리 (radio, 낭독, 노래)
Scrap & Tag
ㄴ기사,칼럼,영상,이미지등 감상
ㄴ알림장
etc
2011 인턴쉽 log
2014 호주 워홀


2016 달콩 봉봉
미분류

step by step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이글루스 처음처럼 campaign이란?

When the Lore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示善香 翅宣向 時鮮享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