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잊고 싶지 않아서


가슴 속 끓는 피를 고이 바친 그대들.을 보내며.

4월 15일. 전시 세번째 날이다. 상무님이랑 협력 업체분이랑 전시장 건너편 김치말이 국수집에서 점심을 시켜놓고 앉아있는데 텔레비전에서 천안함을 바지선으로 인양하는 장면이 보였다. 또 맘이 덜컹,했다. 며칠 내내 작업 소식을 들었는데 이제야 끌어올리는구나 싶었다.





생떼같은 아들들을 군에 보내놓고, 시신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지인 그 누구도.

요 며칠간은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일부러 좋지않은 이야기들은 보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집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기사를 클릭했다.

남동생보다도 어린 장병들의 사진과 인적사항들이 줄줄이 뜬다.
88년생, 90년생.. 초롱 초롱한 눈망울들과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뺨으로, 어떤 이들은 활짝 웃고 있고 어떤 이들은 긴장한 채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아.. 인터넷은 어쩜 이렇게 잔인할까. 가족들과,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며 환한 얼굴의 사진.
군 복무 중에 까까머리로 찍은 사진들은 옆집 개구쟁이 동생 같기도 하고, 누나 누나하며 나를 따르던 동아리 동생 같기도 하다.

결혼과 생일, 전역을 앞두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람들.
하늘도 무심하시다. 남겨진 사람들은 이렇게 예쁘게 웃는, 아직도 마냥 소년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까.

이발병, 조리병, 보일러병.. 병사들 업무도 제각각이고 저마다 살아오며 품어온 꿈도 사연도 참 다양하기도 하다.
이 사람들의 내일을 어쩌면 좋을까.
효자에, 힘들어도 밝게 살아오던 성실함에, 전역 후의 계획들에- 그 이야기들에 눈물이 난다.

내 동생이였다면, 내 아버지고 오빠였다면, 내 남자친구였다면 , 하나의 가정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타인의 현실 앞에서 나는 정말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저 웃는 뺨을 어루만지고, 얼싸 부둥켜 안고 살아 돌아왔구나 기뻐하고 싶었고 다행이다 하며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싶었는데.. 기적은 없었다.

누나 둘 있고 아들 하나인 집이였는데 이를 어쩌나, 이 사람은 유족도 이모 한 명 뿐이라 더 슬퍼지고, 누구는 귀한 손주 자식을 잃으셨고, 아기는 아빠를 잃어버렸고, 우리는 친구를 잃었고, 아내는 남편을 잃었고,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을 잃어버렸다.
다들 너무나 멋지고 바른 사람들이였을텐데- ..........

 
그래, 추모의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살아 돌아와주길 바랬다.
아마 가족과 친구들은 지금도 믿기지 않을테지. 앞으로도 그럴테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은 떠난 사람들의 발걸음만큼이나 무거울테지.

남동생의 부인은 임신 7주라고 했다. 아들일까 딸일까를 생각해 보다가, 언젠가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살게 될 이 곳이 제발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두 번 다시는 이런 비극을 보고싶지 않다. 살아가면서 어떤 사고든, 재난이든 또 어떤 일들은 터지기 마련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젊은 목숨들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마음 아프다. 원인이 무엇이든 철저히 알아내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는 떠나보낸 목숨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만큼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이던가, 오래 전 유치원 화재 사건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해외로 이민을 가기로 했다는 심경 보도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아이가 살던 집이며 그 흔적을 못 잊어서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기 아이를 떠나보낼 수 밖에 없던 한국이라는 나라를 용서할 수 없어서 떠난다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귀엽던 아가를 가슴에 묻고, 그 부모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나라가 사람을 울린다.
세상이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이렇게 속상할 것을 알면서도, 한 장 한 장 기사 속의 사진들을 두고 두고 보고 기사 한 줄 한 줄을 읽어내려갔다.
어차피 우리는 곧 모두가 잊어버릴테니까, 조금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오래 오래 사진 속의 떠난 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8명의 다른 분들이,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또 해 본다.

웃는 그 얼굴 잊혀지지가 않네.
떠나간 김상병의 미니 홈피에 적혀있는 말이라고 한다.

떠나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들. 남겨진 사람들이 더 강해져야 하고, 더 꿋꿋해져서 잘 버티고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이렇게나 더 남아있다.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남겨진 사람들은 살아내야지. 힘을 내야지.
마음으로 빈다. 남은 이들의 안녕과 떠난 이들의 평온을, 기도 드린다.



ps.
요 사이 너무나 추웠던 날씨를 무척 싫어했는데, 찬 수온의 냉장효과 덕에 시신 훼손이 적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추운 날씨가 그것을 위한 것이였다면... 4월의 눈은 떠난 이들이 흘린 눈물은 아니였을까.

하느님이 참 밉다.
좋은 이들, 착하고 성실한 바른 사람들만 쏙쏙 골라 데려가시는 하느님이.. 때론 참 밉다.

한 때 모두의 안락한 부대였고 나라를 지키던 배 한 척이, 이제는 나라의 자식들을 잡아먹은 괴물처럼 끌려와 시신들을 뱉아내고 있다. 천안함도 마음이 있다면 제 스스로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길, 다시 한 번 기도 드린다.

ps2.
19세 육군 일병의 총기 사망 사고 소식..
해군 링스 헬기 실종 소식. 
군대, 정말 무서운 곳이구나. 아니, 젊은 목숨들을 삼키는 이 세상 현실이 참말로 무섭구나.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저 어린 것들을 데려가시나, 하늘도 정말 무심하시다.





보내는 마음으로 생각한다.
남은 사람은, 지켜진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다가 바쳐진 생명들인데.. 내 하루 하루가 참 소중하구나 하는 걸 뒤늦게야 깨닫는다.

해 준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며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울고만 있기에는 갈 길이 멀다. 우리..
그렇지만 지금은 눈을 감고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존재로구나, 자신의 슬픔도 이겨내지 못해 쓰러지고 마는.

제대로 살아야겠다.
모두를 위한 희생, 지금도 바쳐지고 있는 땀과 피와 청춘들이 너무도 아쉽다. 참으로. 참으로.


◇순직장병(수습순)
▲서대호 하사(21) ▲방일민 하사(24) ▲이상준 하사(20) ▲이상민 병장(22) ▲안동엽 상병(22) ▲임재엽 중사(진급예정.26) ▲신선준 중사(29) ▲강현구 병장(21) ▲서승원 하사(21) ▲박정훈 상병(22) ▲차균석 하사(24) ▲박석원 중사(28) ▲김종헌 중사(28) ▲김선명 상병(21) ▲김선호 상병(20) ▲이용상 병장(22) ▲민평기 중사(34) ▲강 준 중사(29) ▲손수민 하사(25) ▲조진영 하사(23) ▲심영빈 하사(26) ▲문영욱 하사(23) ▲이상희 병장(21) ▲최정환 중사(32) ▲조지훈 일병(20) ▲문규석 상사(36) ▲정종율 중사(32) ▲이상민 병장(21) ▲이재민 병장(22) ▲장철희 이병(19) ▲안경환 중사(33) ▲나현민 일병(20) ▲김경수 중사(34) ▲정범구 상병(22) ▲김동진 하사(19) ▲조정규 하사(25)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by 아이 | 2010/04/16 01:19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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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Xeon at 2010/04/16 01:40
아...ㅠ_ㅠ
오늘 하루 종일 내내 밖에 나가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했는데...
사진 보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나머지 8명도 빨리 찾았으면 좋겠습니다;ㅁ;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16 01:51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하지만 왠지 한 편으로는 안 돌아와도 좋으니 부디 어디에선가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마음도 생기네요.
하느님 무심하셔요..ㅠ_ㅠ
Commented by 그린필드 at 2010/04/16 01:43
제 대학친구의 고교동창이 오늘 신원 확인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의 심정에 맞장구는 쳐줘도 완전히 공감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하던.
Commented by 아이 at 2010/04/16 01:54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꽃들이 바다에 지고 말았습니다 살아 숨쉬는 미안함을 넘어 이들이 바랐던 꽃피는 세상을 대신해 피워야 할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더 치열하게 봄을 만들어 이 분들께 바쳐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밝은 봄길에 서 있음이 한없이 미안합니다
- 김제동씨가 몇 시간 전 트위터에 올리셨던 글입니다.

그냥 이렇게 건강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지는 건... 아마 떠나가신 분들이 우리 주변의, 어쩌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마음이 많아 이파요, 다들 힘내서 아픔을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tanato at 2010/04/16 06:15
처음엔 몰랐는데 함미 안에 있던 사람중엔 동기가 있더군요.
친한 애는 아니어서 몰랐는데 여튼 알고나니 착잡해지더군요,
Commented by 늄늄시아 at 2010/04/16 08:19
..;ㅅ; 장병들의 부모님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시간 금방 갈거라고.. 금방 군복무 마치고 전역복 입은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날거라고 생각했는데, 싸늘한 주검으로...
Commented by 아롱이 at 2010/04/16 08:49
어제 뉴스를 보는 데 고인들의 슬픔이...그냥 가슴이 아파지더라구요.
Commented at 2010/04/16 10: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ZeroDevice at 2010/04/16 10:42
너무 오랫동안...

... 달리 할 말이 없네요.
...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습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4/16 11:26
모든 영령들의 명복을 빌어요.....
아이님 조카 아기가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에는 더 평화롭고 나은 세상이 되도록
우리들이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노력해야 하겠지요.
우리나라, 여러 고난 속에서도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나라니까
꼭 좋은 나라로 나아가리라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세라피타 at 2010/04/16 11:52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at 2010/04/16 12: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 at 2010/04/20 01:07
절대 못잊죠..잊을수가 없는데..서해바다를 보면 더 생각날거같아요...
저 46명을 어찌 잊으리오.... 아....나도 마음이 아픈데...정말 가족들은 오죽할까?
왜 이런사고가...참...원망스러울뿐입니다....
그래서 구사일생한 천안함생존자여러분들 저분들을 위해서라도 두배로 힘차게 사세요...
그분들도 화이팅이고..
금양호 분들 너무 안타깝고..그분들도 영웅이고..누가 남일이라고 나서는가..
멋있고..잊혀질까..더 안타깝고..금양호분들 하늘에서 편안히 쉬시길...
고 한준위대원님도...
이젠 더이상 사람이 죽어나가지말기를...바랄뿐...
모든게 다 잘되고 함수인양도 잘되서 나머지 시신이라도 꼭 가족에 품에 돌아가기를..
그저 바랄뿐입니다....

너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플뿐이네요...
이기사보거나 뉴스를 보거나 천안함...다신 이런사고가 나지않기를 바랄뿐입니다..

해군여러분들 모두모두 화이팅!!!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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