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마음의 때.


요즘은 몇 시에 자든 새벽 일찍 눈이 떠진다.
일찍 잠들면 4-5시. 늦게 자면 6시 정도.
몸이 고되고 피곤한데도 항상 그 시간에 눈이 떠진다. 마치 내가 아닌 것 같고,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아침잠이 없어졌어;

요 며칠 아침저녁으로 남산 한 바퀴를 하고 있다.
피곤해도 걷고 달리고, 땀이 나고 숨이 차지만 내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차고 상쾌하다.
걷고 달리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외국인들은 다들 건강하고 즐거워 보인다.

오늘도 새벽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아니 아침부터 때를 밀었다.
운동의 효과인지 때도 참;;=ㅂ=;
뽀얗게 밀려나오는 내 각질과 땀, 피지의 흔적들을 보면서 문득 고해성사나 죄책감을 떠올린다.

자신의 죄를 고하면서 혹은 기도를 하거나 자신을 돌아보며
얼마나 많은 죄와 욕심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쉬며 제 몸을 불려갔는지 깨닫고, 참회한다.
울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하기도 하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잘못을 뉘우치기도 한다.

...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쉽게 제 버릇대로 돌아와버린다.

비슷한 죄를 짓고, 같은 실수를 범하고
또 신에게(혹은 스스로나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고, 구하고
혹은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그렇게 살아간다.

마치 때와 같다.
더러운 때는 인간이 살아가고 숨쉬며 땀 흘리고 먼지를 접하는 이상, 생길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도 피지나 각질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더럽다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그것들로 인해 피부는 호흡할 수 있고
배설을 통해서 몸 안의 것들을 바깥으로 내 보내고
외부의 것들로부터 제 살을 보호할 수 있다.

씻지 않으면 악취가 나고 때가, 먼지.피지와 만난 각질층이 두껍게 쌓여간다.
제대로 호흡할 수 없도록 그렇게 때가 쌓인다.

죄책감.
휴식.
마음의 평화와 인간이 규정한 죄와 벌.

모두들 제 마음의 때를 밀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하고 있을까?

또 하루 살아간다.
내 욕심과 때도, 내가 땀흘리고 열심인 만쿰- 또 쌓여간다.
이것이 삶인가보다.

열심히 씻고 또 어지르고 또 정리하면서
스스로와의 끝나지 않는 싸움을 계속한다.

그 어딘가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오늘도 때를 만들고, 또 때를 밀고.

웃으며 살아가야지 :)

ps. 소설 동의보감의 저자는 이런 말을 하셨다.
소설은 코딱지 같은 것이라고.
사람이 살면서, 호흡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코딱지 같은 거라고.

어린 시절, 큰 충격이였던 그 표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by 아이 | 2010/06/04 06:44 | girl talk (18세 소녀감성)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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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6/04 08:34
오늘도 때를 만들고 또 때를 밀고....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말씀처럼 때가 너무 없어도 문제고 너무 많아도 문제고....적절한 자리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0/06/28 21:00
빈익빈 부익부의 시대.
마음의 자리 잡기가 가장 어려운 일 같아요, 힘내요 함께.
Commented by 구름 at 2010/06/04 11:36
아침조깅.. 부지런하시네요. 전 아침에 저혈압이라 눈감고 밥먹기 바빠요. 그나저나 소설이 코딱지라니.. 뭔가 이해가 될 것 같긴해도 상상하긴 싫군요. ;ㅁ;
Commented by 아이 at 2010/06/28 21:02
ㅎㅎ 근데 이것도 잠깐였구 출장 + 비 땜에 또 많이 쉬었었어요.

으음.. 제 표현력이 부족해서;; 근데 정말 와달던 묘사이긴 했어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들과 표현과 생각들의 응집 같은 것?

상상하긴 저도 좀 그렇지만요^^;;;
Commented by Xeon at 2010/06/04 17:10
부지런하시는군요;ㅅ;...
...저는 일어나면 이미 해가 중천이던데(...)
Commented by 아이 at 2010/06/28 21:02
요즘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ㅠㅠ
Commented by 朱淵 at 2010/06/04 20:49
진지하게 음음, 하며 읽다가 PS 마지막 대목에서 뿜는군요. 어헛, 참으로 신랄하고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그려.

근데 정말 생각할수록 묘하게 반박하기가 애매하다...? 어허?
Commented by 아이 at 2010/06/28 21:03
그쵸 진지해지면 지는 겁니다?! ^^

정말 그 분은 명필이셨는데.. 마지막 장편을 마무리 짓지 못하시고 가신 것이 안타깝습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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