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그것도 젊은 이들의 죽음 앞에서 나는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무엇이 그들을 죽음의 문턱을 넘도록 했는가 생각하면-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있을 생명들이 가엾어지기도 하고 그들의 화창한 청춘이 그늘에서 시들어 가는 것이 슬프다.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입을 막고-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을텐데, 남의 일 같지 않아 쉽게 눈이 돌려지지 않는다.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경악을 하다가도 무덤덤해지게 되는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한다. 결국은 타인의 일일 뿐이고, 지금 당장은 내 앞 길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니까.
관심은 가지지만, 나는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바뀌고 내가 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는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정말로 작은 것들 뿐이였다.
타인의 비극을 가쉽으로 여기면서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 식으로 넘어가기보다 내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끊고 싶지 않다.
왜냐면 그들은 나니까, 나 역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들 중 한 명이니까.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너무 힘이 들었다. 당신도, 혼자라고 느끼면서 힘들어 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 언젠가 나도, 당신도 그 누군가의 우는 어깨를 안고, 붙잡고 등을 쓸어주며 함께 해 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살아있다면.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인생의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나는 생각한다. 살아남아서, 어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대든, 울든 웃든, 친구 가족들과 함께 늙어가고 나이를 먹고 -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훌륭한 승자라고.
병, 우울, 패배감과 분노가 나를 짓누르고 삼키려 들 때야말로 나는 비로소 최선을 다해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사실은 무척이나 감사하면서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변한 것은 내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뿐인데 세상 전부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누구나 우울한 이야기는 싫어한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할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를 취재하는 이의 마음은, 또 그 이야기의 주변 인물들은- 어떤 마음일까?
세상은 화려하고 떠들썩한, 그리고 과격한 이야기에 주목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사랑과 선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고 있고, 우울한 소식을 통해서도 우리가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생을 떠올린다. 살아남은 자의 몫은 떠나간 이가 누리지 못한 만큼 더 행복해지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제역 판정에 자살하신 아저씨, 빚 때문에 자살하신 아주머니, 사과를 기다리다 떠나신 위안부 할머니, 자살한 이등병, 요절한 작가, 젊은 회사원의 죽음..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울고 있을, 혹은 죽음을 꿈꾸는 어린 사람들, 나이든 이들.
언젠가 나도 그 사람들 옆에 있어주고 싶다. 나도 당신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다고- 아니 그냥 그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가만히 들어주고 싶다.
고통은 그냥 지나가는 감정들 중 하나일 뿐이지, 우리 자신을 파괴하거나 상처입히는 것은 그저 갇힌 세상에서 흔히 겪는 오류 중 일부일 뿐이라고.
토닥 토닥, 가만히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을 바라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나가고 나면 많은 것들은 성장통이였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몸과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이 힘들었고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몰아붙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나날들에도- 나는 살아있는 귀신처럼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일을 했었다.
악몽같던 시간들 안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지만 지나고 나면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라고.
참고 견뎌야 하는 유혹은 죽음 한 가지뿐이다. 다른 유혹들은 지고 실패하고나서도 살아있기만 하다면 또 싸울 기회가 오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마니까.
내가 꿈꾸던 모든 것들은, 내가 꿈 꾸기를 포기하면서부터 이루어졌었다.
그러니 그냥, 살아가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조금 더 멀리 날 수 있는 날까지- 우리 함께, 살아갑시다.
아주 조금만 더. 이어지는 내용은 메일 스크랩입니다
삼성전자 직원 자살사건 취재기 구도희 기자가 전합니다 <민중의소리> 독자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민중의소리> 경제부 겸 산업부 기자 구도입니다. 경제부 겸 산업부 기자지만 요즘 제 머리 속 한 편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의 자살사건입니다. 지난달 11일 스물 여섯의 젊은이가 삼성전자 LCD공장 기숙사에서 자살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우울증으로 인한 두 달간의 휴직 후 복직을 앞둔 몇 시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네, 이 젊은이는 <민중의소리> 독자들이라면 알고 계실 고(故) 김주현씨입니다. 주현씨의 죽음 이후 벌써 한 달여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주현씨의 시신은 아직도 차가운 냉동고 안에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인천 집이 아닌 장례식장이 마련된 천안 빈소에서 한 달여 가까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삼성이 그렇게 힘들고 괴로웠으면 진작 그만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 ‘부모들이 삼성으로부터 돈 한푼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장례조차 치르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가족들을 만나보면, 주현씨의 사정에 귀 기울인다면 이 젊은이의 죽음 앞에 그 어떤 얘기도 쉽사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요즘도 주현씨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주현씨의 시신이 안치된 안치실을 찾아 혹 불편할까봐 주현씨 머리맡에 수건을 놓거나 아들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십니다. 또 매 끼니마다 당신들이 먹는 음식 그대로 주현씨 영정 앞에 올리곤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속에 묻는다고 하죠. 주현씨 부모님께서 장례 후 유골을 집에 두겠다는 힘든 결정을 내린 것 역시 사랑하는 아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기 때문이겠죠. 주현씨 역시 자살을 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을지 저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주현씨가 투신 직전 기숙사 방을 오가며 4차례나 자살시도를 하기까지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마지막까지도 주현씨가 가족들에게 전한 말은 “죄송합니다”였습니다. 아버지는 학원차량 운전, 어머니는 청소 일을 하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을 향한 가족들의 기대가 얼마나 버거웠을까요. ‘초일류기업’ 삼성에 입사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주현씨가 “나 못가. 회사 가기 싫어”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고통을 참아야 했던 걸까요. 오늘도 주현씨의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어나 1인 시위를 하러 삼성전자 앞으로 향했습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삼성의 진심이 담긴 공개 사과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제 2의 김주현’이 나오지 않도록 삼성전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 보탬이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삼성과 맞서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유가족들이 택한 것이 바로 삼성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싸움은 더 힘들고 더디기만 합니다. 누군가는 ‘보상’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과 돈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돈이라 해도 말이죠. 그게 가족이니까요. 실제 보상을 받고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면, 주현씨의 투신 자살은 3일장으로 이미 끝났을 사안이겠죠. 그러나 지금도 주현씨의 부모님과 누나는 생업도 마다한 채 매일같이 아들, 동생의 죽음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처음 빈소를 찾은 날, 저는 주현씨 영정 앞에 서서 눈물을 참고 계신 주현씨 아버지께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은 벌겋게 충혈된 채 얼굴에는 눈물 자국과 회한이 가득했습니다. 또 어머니는 빈소 한 구석에서 미동조차 않은 채 넋을 놓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애간장을 끊어내는 듯한 슬픔을 참고 계신 유가족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민중의소리> 독자 여러분들께 주현씨의 죽음을 전해야 했으니까요. 취재도 쉽지 않았지만 기사를 쓸 때에도 저는 온갖 번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인과 유가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주현씨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전할 수 있을까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삼성전자에 출입(대부분의 기자들은 출입처를 갖고 이 출입처에서 나오는 뉴스들을 주제로 기사로 생산합니다.) 하는 만큼 삼성으로부터 항의 아닌 항의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직원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다면서도 유가족과 반올림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기사화 해 섭섭하다는 식이었습니다. 출입기자로써 매일같이 삼성전자 홍보팀 직원들을 상대해야 하는 제게 있어 그들이 불편해만한 기사를 쓴다는 것은 매번 이런 과정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일부 메이저 언론과 경제지들이 주현씨의 죽음을 단신처리하는 것을 바라보며 저는 이를 더 악물고 빈소가 있는 천안행을 자처했습니다. 저는 힘없는 노동자, 소외된 우리 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중의소리> 기자니까요. 편안하게 쓴다고 시작했는데, 너무 감상에 젖어들지는 않았는지 걱정됩니다. 이게 주현씨의 죽음과 관련된 제 취재 후기입니다. 아직도 날은 차고, 삼성은 공개 사과를 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유가족들은 얼마나 더 힘든 싸움을 이어가야 할까요. 주현씨는 언제가 돼야 편안하게 쉴 수 있을까요. 다음 편지는 삼성이 작업환경 개선을 공언하고 유가족들에게는 주현씨의 죽음에 대해 사과해 장례식을 잘 치렀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주현씨의 마지막 가는 모습까지 함께 할 것이고 이를 고스란히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민중의소리> 독자들을 향해 두서없는 제 애정을 전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민중의소리 기자 구도희(dohee@vop.co.kr)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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