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매우 부끄러워졌다..


한국에서 20대가 경제적 자립 하기. 포스팅을 하고서 이런 저런 댓글들을 읽고 많이 부끄러웠다.
사실 내가 한 고생보다도 더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내가 뭐라도 된 냥 떠든 것 같아서.
그리고 기부 역시, 내가 나를 위해 쓴 돈에 비하면 아주 아주 작은 금액일 뿐인데-
그걸 마치 면죄부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저렇게 힘들게 생활하다가 나는 직업을 내 전공이나 꿈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금전적인 보상이 크게 돌아오는 일을 시작했었다.

....
그리고; 그간의 보상이라도 받은 듯 돈을 마구 써댄 적이 있다.

난 힘들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 이 정도는 누릴 수 있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비싼 것들을 마구 사들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였기에-
내 취향의 싼 옷과 패션 아이템들을 자안뜩 지르거나
읽고 싶던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러가고-

... 생각난다. 고민 끝에 만원짜리 구두를 검은 색/ 갈색 하나씩 질렀던 걸.
왜 난 지금도 그 일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걸까.
같은 디자인의 다른 색상의 구두를 구입하는 건, 그것도 싼 가격의 것을 구입하는 게- 왜 그렇게 죄책감을 가질 일일까.

왜냐면, 나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돈 쓰는 것을 조금 주저하던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한 턱 쏘는 자리에는 출석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크게 한 턱을 쏘아본 기억은 정말 적다.
(보통은 일대일로 선물을 하는 편...;) 참 얄미운 짓을 했었구나 싶다.
나를 위해 그렇게 돈을 쓰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는 돈 쓸 때 마다 몸을 사리고, 궁상을 떨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얼굴이 붉어진다.
사람도 많이 잃었다, 그 시기에는.

나는 내가 힘든 것만 생각하고, 내 힘든 사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면서, 내 곤궁함을 쓸데없는 지출과 소비로 매웠다.
아무리 많은 것을 사들여서 창고와 옷장을 채운다고 해도 내 빈궁한 영혼과 양심을 채울수는 없는데-
그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는데, 쇼핑은 내 스트레스 해소의 몇 안 되는 출구 중 하나였으니까.
부모님이나 친구를 위한 비싼 선물을 사고, 나를 위한 화장품과 옷과 구두를 사고.
돈을 버느라 바빠서 누굴 만날 시간도 없었으면서, 그 허전함과 공허함을 이상한 방식으로 달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 듣지 않는 여자였다. 나는.
(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잃고, 나에 대한 소문들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였던 나는 많이 아팠다.
아프면서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했는데- 아픈 동안에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동시에 이해인 수녀님이나 다른 분들이 투병생활 중에 쓰신 글들을 보며 더 부끄러웠다. 같은 아픔도 누군가에겐 독이 되고 누군가에겐 비료가 된다는 걸 보게 되어서^^;)
아픈 것도 가난한 것도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 수 있었다.

사회는 냉정해서 나는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할 수가 없어서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는 걸 피하고 우울하게 매일 매일을 보냈었다.

세상으로 나가기까지, 내가 연락을 끊었던 친구들에게 다시 웃으면서 전화를 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던가.
친구의 결혼식에 가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선후배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울면서 싸이월드 사진을 보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 정도의 인간 밖에는 못 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땐 그랬다고 말을 할 수는 있다.

이야기 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알게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것 역시 동정받고 싶지 않아하는 내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인 것을 아니까.

우울은 전염이 되니까 우울한 얼굴을 하고 싶지 않았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그 부츠를 사고 싶었고 나도 그 케이크를 먹고 싶었고 나도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유학도 가고 싶었고 공부도 더 하고 싶고 - 
근데- 그게 참, 혼자 힘으로는 힘들더라.

화려한 일을 동경했었고, 어릴적부터 꿈꾸었던 길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려고 시도했지만 하고있는 일이 다른데, 그건 잊혀진 꿈일 뿐이였다. 더 이상 간절하지 않은.

내가 처세술이 부족하고, 어리석고, 속기 쉽고, 감정적이고, 나약하고, 방도 못 치우는 사람이라는 걸 나 자신도 잘 안다.
과시욕이 내게도 없지 않게 있지만 그것보다도 누군가에게 비난당하고, 또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욕을 먹는 게 너무 무서운 나는-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대졸의 취업 준비생, 비정규직 자취생이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끄럽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는 돈을 벌 수도 없었고, 아프다고 집에 손을 벌리기도 싫었다.
누군가를 걱정시키는 걸 싫어하는 전형적인 착한 아이 컴플렉스와,
그 나이 되도록 뭘 했냐는 이 시대의 눈초리가 두려워서
나는 평범을 가장하고,
우울할수록 밝은 것을 찾고
진심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 기대면서-
여기까지 왔구나.

나는 부끄럽다.
내가 번 돈을 내 교육과 내 유흥(여행과 의류 구입, 취미생활, 영화 보는 게 전부지만;), 나를 위로하기 위한 것에 썼기 때문에.
(그리고 다이어트에 쓴 돈만 해도... 하하하. ㅠ_ㅠ)
분명히 풍족할 수 있던 시간들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던 시간들도, 내 실수로 나는 놓치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 나이의 누군가는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한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을 본다.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였던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초라한 딸이라서 더 슬펐다.

세상이 약자에게 얼마나 차가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려웠다.
누구에게도 신세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배가 고프고 서럽고 아파도 힘껏 참았다.

피해자인척 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나의 힘든 일을 이야기할수록 나는 더 부끄러워진다.
나는 어느 때인가,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인적도 있었으니까. 분명히.

가장 내가 힘들었을 때는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죽어버리고 싶다는 의지와 싸워야했을 때였다.
누군가를 슬프게 하고싶지 않았지만,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서 견딜 수 없던 시절.
어머니는, 또 누군가는 내게 엄살을 떤다거나 너무 나약하다고 하지만-
고통에 잠겨있을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다른 사람 눈에, 그냥 밝고 명랑한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연기하면서 살았던 것 같기도 한데; 천성이 밝고 솔직하고 긍정적이란 이야기도 어릴 땐 많이 들었었는데.

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유서 한 장 못 남기고 병으로 떠난 이가 너무 가엾어서.
나는 그 마음을 알아서.
그리고 너무 아파서 전화 수화기를 들 기운도 없을만치 아플 때- 엉망인 방에 누워서 이러다 내가 죽어도 누가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울었던 기억도 나서. (다행히 자취가 아니라 하숙생 시절이라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죽 해주시고 먹여주셔서 살아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불행을 드러내놓길 싫어한다.
동정 받는 것이 싫고
구질 구질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싫고
내 슬픔과 우울을 전염시키는 게 싫고
혹시 어쩌면 내가 가진 어두운 부분 때문에 나중에, 향후에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의 출세에 지장을 줄 지도 모르니까.
세상 일은 정말 모르는 법이니까.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더욱 숨기고 싶었던 과거 이야기들을 마구 마구 써내려가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처지를 조금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겪지 않으면 모르는 아픔이기에.

감기에 단 한 번도 걸려보지 않은 사람이 감기의 증세를 들어도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것처럼
생활고에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난과 병마가 주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나는 못 한다.
하지만..

그냥 안타까워하기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게 틀린 방식일지라도, 후회하게 될 일이라도 그냥 그게 최선인 것 같으면.

바로 지금, 내 부끄러움을 낱낱이 고백하는 이 포스팅처럼.

나는 행복하다.
나는 건강하고, 새로운 것들을 즐겁게 배우고 있고, 좋은 친구들과 가족이 있다.
일을 하면서 익힌 것들은 내 실력이 되었고, 내 경력으로 쌓여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나약한 패배자이고 초라한 백수일수도 있지만
나는 동시에 무언가를 견뎌낸 사람이고 아직은 살아있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부다.

부끄러운만큼 더 행복해지자고 생각한다.
울면서 죽은 이들의 몫만큼 더 행복해져서
언젠가 내 조카, 내 사촌동생들, 어쩌면 내 아이가 자라날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자, 한다.

떠난 이들의 꿈은 그저 헛된 꿈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내가 이룰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의 한 갈래 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살아서 내가 들어주고 싶다.

ps.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묵묵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을 통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 스스로를 미화시키고 있다는 걸 느끼지만!!! (그래서 더 부끄럽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볼까 두렵기도 하지만; (특히 내 블로그를 읽는 친구들에게 매우 미안함...orz 얘들아 생까줘;;)
살아남았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까 두려워 하기보다는-
그런 일이 내 주변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애도는 떠난 이를 보내는 슬픔과 더불어,
살아갈 나날들을 그 사람 몫만큼 더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그저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가 달라지자는 표현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억울하고 서러운 죽음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그들의 삶과 생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 생각해봅니다.

저는 아직 모르는 그 사람이 꾸었던 꿈을, 다른 누군가가 마음껏 꾸게 해줄 세상이 바로 오늘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 앞에서 마음이 아팠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만 더 주변을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조금은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하다보면-

우리는 바뀌어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가 꾸는 꿈이 부끄럽지 않도록,
제 포스팅을 읽는 분들은 활짝 웃으면서 오늘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떠난 이들이 꿈꾸었던 내일이 바로 오늘이 되길.

기도합니다.
amen.




ps2.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부끄러운 건, 행복했던 나날들이 너무 많았는데- 가난했든 어쨌든 진짜 즐거웠던 시간들이 많은데
왠지 이런 이야기들로 고생한 걸 부풀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린 것도 정말 많았고, 진짜 좋았던 날들이 많았는데 왜 구태여 이런 이야기로 내가 나를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지..싶어서?

담백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그냥 부끄럽네요; 늘 감정에 취해서 글을 써내려가서요.





by 아이 | 2011/02/10 17:00 | 低俗하게 blahblah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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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늄늄시아 at 2011/02/10 22:15
화..화이팅 입니다 ;ㅁ;
Commented by 아이 at 2011/02/10 23:15
끄아악 지금은 힘든 날 다 지나가고 평온히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구직자에 솔로니까..(상관없나?;;) 파;파이팅;ㅁ;/
Commented by Xeon at 2011/02/11 01:12
자신에게 당당하시다면 자신이 부끄럽지 않을거예요'ㅁ'.

...그래서, 화이팅^-').
Commented by 아이 at 2011/02/11 20:37
아마 아직도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으니까 당당하지못해서 부끄러운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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