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랫만에 책방에 들러 만화책을 빌렸습니다. 저는 월 2회 정도 홍대 만화카페에서 신간을 섭렵하고나서 서적 도매 총판에서 할인 받아서 책을 구입하거든요; 고향 집에 오래 머무르게 된 것도 몇 년만인지라, 정말 간만에 대여점에 들렀어요. 마지막으로 빌린 것이 너무 오래 전이라 전화번호 검색으로 제 아이디를 찾았는데- 무려 마지막으로 책을 빌려간 날짜가 2001년 4월 13일이더군요! (그 당시 저는 대학생이였으니 고등학생이던 남동생이 제 아이디로 빌렸을지도?) 무려 10년 전! 근데 대여점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10년 전에 계시던 바로 그 분이시더군요.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결혼은 했냐는 질문에 아하하^^; 하는 알쏭달쏭한 맘을 안고 책을 빌려 나왔습니다.
10년. 정말 긴 시간이네요. 저는 그 동안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유학..이랄까 어학연수를 두어번 다녀오고, 그 사이 제 친구들 역시 취업을 해서 대리나 과장 직함을 따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네요. 생각해보면 그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 남동생은 한의사가 되어 대체 복무를 하고 있고 이번 주 토요일이 제 조카의 백일! 우와.. 서울 상경해서 신기한 눈으로 고대 앞과 대학로를 쏘다니던 때가 어제 같은데. 신기해요 정말.
며칠 전 6개월 기간의 연수, 인턴쉽 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서울 집에 짐을 가지러 들렀다가 단골 가게던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독점판매의 호황을 누리던 GS25 옆에 새로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들어온 게 무척 신기했었어요. 그 반 년동안, 제 고향에도 드럭스토어가 두 개나 들어왔고 임신 중이던 친구는 제가 입국하기 전날 출산을 했죠.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면서 제 삶을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제가 중고등학교 때만해도 도서대여점이 출판계의 문제아였는데 지금은 대여점이고 만화방이고 죄다 사라지고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하고 있네요. 요즘은 책도 E-book으로 구입하고, 예전엔 걸어다니면서 화상통화를 한다던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건 정말 사치를 뛰어넘어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였는데.. 빨라지는 기술의 발전에 익숙해져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스마트 폰으로 이용하고 포털 사이트의 기사나 웹툰을 바로 바로 읽으면서도 우리는 아주 예전부터 당연히 누렸던 것처럼 편리한 많은 것들을 이용하고 있네요.
삐삐나 음성 사서함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이면 공중전화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거나 (그 땐 전교생 중 시티폰 가진 친구가 한 둘정도였죠-ㅂ-;) 편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거나,(인터넷을 통해서 그림 한 장 다운 받는데 꼬박 하루가 걸리던 시절입니다 ㅠㅠ 당연히 USB 메모리가 아니라 플로피 디스크 따위에 저장했었죠^^;) 인기있는 신간이 대여가 되어 나가버리면(퇴마록이라던가, 판타스틱 게임같은!!) 대여점 알바 언니랑 친하게 지내서 먼저 빌릴 수 있게 부탁하고 그랬었는데..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해가고, 많은 것들은 편리해지고 있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얻은 것만큼이나 많은 것 같아요. 약속 시간에 맞춰 누군가를 어떤 장소에서 기다리면서 느끼는 설레임이라던가, 이메일이나 문자가 아닌 예쁜 편지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내려가던 마음. 종이 신문을 뒤적이며 한자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던 아침.. (요즘은 사실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너무 많이 메인 화면에 노출되어서 좋은 이야기들보다 나쁜 소식들만 먼저 알게 되는 기분이예요 ㅠ_ㅠ)
바쁘게 살면서 연락이 끊어진 친구들을 온라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오히려 그렇게 메신저나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때문에 만나서 무언가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미루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10년 전의 마지막 도서 대여 기록 위에 새로운 대여 기록을 덮어 씌운 오늘. 마찬가지로 제 인생의 나이테에는 오늘 하루만큼의 선이 조금 더 굵게 생겼겠지요?
웃으면서 오늘을 회상할 수 있는 10년 후를 상상하면서, 6개월간 배운 것들을 잊지않기 위해 또 책을 펴고 책상에 앉습니다.
봄은 들과 나뭇가지 끝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새로운 스스로를 만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하면서- 3월의 첫 번째 목요일을 기분좋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여러분은 동네 서점이나 슈퍼, 아니면 버스 정류장이라도- 10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이 주변에 남아있나요? 분명 확장을 하거나 주인이 바뀌거나 디자인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주는 것들이 있어서 우리는 든든한 안정감을 안고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머니 아버지께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소리가 저를 행복하게 만들듯이 말이죠.
10년의 세월을 넘어, 반 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 집에서 행복한 오늘을 보내고 즐거운 내일을 기다립니다.
여러분들도 즐겁고 따스한 하루 보내시고, 좋은 봄날을 함께 기다려 보아요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choconeco/60000098811 이글루스 가든 - 행복한 사람 되기
일상, 도서대여점, 행복, 봄날, 10년전의일기, 10년후, 반년, 6개월, 인생, 세월, 나이테, 인생무상, 웃으면서살아요, 베실베실, 방긋방긋, 즐거운, 3월, 즐거운하루, 일상다반사, 이글루스로보는블로그세상
# by 아이 | 2011/03/03 20:57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