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봄날.


햇살이 참 따뜻했던 어느 일요일, 화이트 데이 전 날.
혼자 조조로 영화를 보았다.
내가 외계인이라면 귀찮게 저런 짓 않고 물이나 공기에다 독을 풀어버리고 세균전으로 끝내버릴텐데.
하는 잔인한 생각을 했다.

외계인이 침공해오지 않아도 인간은 조금씩 공기와 물에 독을 타고,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고 있는데-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속도로 진행될 뿐이지.

밀양에 공항을 양보하지 않는 부산을 보며 이렇게나 속상한데,
외계인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옆 동네 아니 옆 집 사람과도 친하지 않으면서.
인간은 늘 자기 멋대로야.
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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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참 따뜻했던 어느 일요일, 3월의 두번째 주일.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저번 주에는 눈물을 마구 마구 흘리면서 기도했는데, 오늘은 모두에게 미안할 정도로 평온했다.
나 혼자만 행복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아픈 이를 낫게 하시고, 재난을 가라앉혀주십사 하고-
또 무언가를 청원 하는 기도를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더 미안하다.
고난의 40일을 어떻게 보낼지, 그리고 인간의 5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뿌리 깊은 내 욕망은 부끄럽기도 하지.

하느님의 어린 양을 부르면서, 수화도 함께 한다.
하느님 제 목소리를 들으셨나요?
모두를 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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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참 따뜻했던 어느 일요일, 도서관 여자 열람실에 앉아 문제를 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많이 지친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한 달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해외에 있으면서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오늘은 내가 들어주는 입장이였다.

두 시간 가까운 통화 끝에 그래도 웃으면서 다시 만나자고 기운낼 수 있어 좋았다.

내 목소리가 그래도 밝고 편해져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더 고마웠다.
내가 나를 추스리지 못하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무언가를 도와주는 건 더더욱 어려울테지.
나부터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것은 온전한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닌
사실은 모두를 위해서의 기본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 옆에 앉아서 평온한 표정을 나눈다.
소중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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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참 따뜻했던 어느 일요일, 혼자 시내를 쏘다녔다.

책을 무진장 많이 가지고 도서관에 갔었는데 봄볕이 너무 따뜻해서 혼자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친구랑 통화하면서는 혼자 저녁을 먹었고.

언제부터 봄이 설레이기보단 서글프고 외로운 계절이 되었던걸까?

대구의 친구들은 다들 모두 바빠서.. 고향에 온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무도 만나지 못 했다.
예쁜 아가를 낳은 친구에게는 다음 주에 갈까 하고 있다.

햇살이 너무 너무 예쁘고,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친구끼리 연인, 가족끼리라서 맘이 외로웠던 건 아닌데-
그냥 좀 아까웠던 걸꺼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를 혼자 만끽한다는 것이.
식사를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다이어트 때문에 이런 식단을 공유할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혼자서 리락쿠마 캐릭터 상품 고르는 건 좋았다.
봄날과 곰은 참 어울리는 조합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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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참 따뜻했던 어느 일요일,

혼자서 누군가를 떠올렸고 그리워했다.

내가 좋아했던 친구, 나를 좋아했던 누군가, 한 때 참 좋은 인연이던 사람들, 오래 전 너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그리고- 옆 나라에서 일어난 비극을 떠올리며 마음 아팠다.

바다를 건너 비행 몇 시간이면 닿는 곳에서는 재난이 일어났고
차를 타고 몇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에서는 지금도 누군가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우리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평안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미안했다.

도와줄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해요.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데,
나는 오늘 조금 슬펐다.

봄날이라서.
봄날이라서.




...

모두의 일상에 따스하고 평화로운 봄날이 깃들길.
모두가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길.
개개인의 이기심이나 욕심이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한 명 한 명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모두에게 희망으로 빛나길.

지금도 울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어딘가에서는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외롭고 힘든, 지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봄날이기를.



ps. 도서관 앞 뜰에서 움이 트는 나무들을 만져보았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목련은 꽃이 피기 직전이라 정말 강아지나 고양이 목덜미 같은 솜털로 봉오리가 덮여 있었는데
꽃나무의 숨소리가 손 끝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인간이 아픈 것은 자연과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가끔 이렇게 외로운 봄날에는 혼자라도 좋으니 조용한 뜰이나 정자를 거닐며 봄공기를 만끽하자.
친구가 되어주는 존재들은 인간 뿐만이 아닌데.
사람에게 받은 작고 큰 상처들이, 자연을 바라보며 치유가 된다.

참 고마운데, 해줄 수 있는 게 대중교통 이용이나 분리수거 같은 것들이 전부라 미안해.

덜 미안해하고 더 감사하고 싶다.

이 봄.
이 40일.





by 아이 | 2011/03/14 01:01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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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okaNG at 2011/03/14 01:18
그 어떤 봄날, 저는 몸살난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백양산을 타고 왔습니다.orz
그다지 힘들진 않을 거라는 말에 가볍게 운동이나 할 요량으로 올랐는데, 생각보다 가파른 길에 깜짝!
하지만 등산을 하면서 땀을 좀 흘렸더니 몸살이 씻은 듯이 낫더군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1/03/15 17:15
우와 백양산! 저희 아부지도 산악회 분들과 함께 산에 다녀오셨었는데.. 역시 봄엔 산행인 것 같아요!

저도 산에 가고 싶은데.. 혼자 가게 될 것 같네요. 함께 갈 친구나 가족들은 다들 바쁜 듯..^-^;
Commented by Xeon at 2011/03/14 02:31
저는...
...노트북이 고장난 덕에 새걸로 사려고 아침부터 용산을 헤집고 다녔죠(...)

이제 사순 시기 시작입니다;ㅅ;... 거룩한 사순 시기 보내시길'ㅂ';;
Commented by 아이 at 2011/03/15 17:16
네 고난의 사순시기를 슬기롭게 잘 보내고 싶습니다.

제온님도 거룩한 사순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3/14 09:54
저는 어제 마눌님이랑 같이 경주에 있었답니다.
따뜻한 봄날, 너무 행복한 시간 보내면서도 일본 뉴스를 볼 때마다 안타깝고 그랬는데,
아이님 글을 보니 제가 느꼈던 생각들이 더 잘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착하디착한 아이님 마음에 따뜻한 봄날이 자리잡길 응원합니다. 날마다 파이팅~
Commented by 아이 at 2011/03/15 17:16
착하디 착한일까요 전 요즘 제 게으름과 이기심에 놀라고 있는데요^^;

날마다 파이팅! 곧 벚꽃이 피고 봄이 화사하게 꽃 피길 바랍니다 :)
행복하세요!
Commented by 늄늄시아 at 2011/03/14 21:15
봄날.. 저는 러시타임에 밀리고 있겠죠 ;ㅅ;
Commented by 아이 at 2011/03/15 17:16
일에서의 러시 타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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