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는 도중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보았다.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긴 긴 겨울의 끝에서 봄이 기다리고 있다.
스리랑카의 내 방 벽에는 이런 문구를 써 놓았었다. (나중에 지우느라 고생한데다 페인트값까지 치르고 왔지만^^;)
There is no spring, without winter.
길고 긴, 추운 나날들을 버티지 못하면 새싹도 꽃도 필 수가 없다. 가을 겨울 내내 숨죽이고 봄을 기다렸을 생명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성장이 있고 그 자라나는 마디마다 겨울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긴 긴, 정말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수험 기간이나 무언가 열매 맺기까지의 과정 같은 것 말이다.
주말이면 (뭐 주중도 비슷하지만) 빼곡히 들어차는 도서관 자리 자리마다, 저마다의 청춘과 열정이 숨을 죽이고 제 겨울을 버티고 있다.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그냥 꾸준히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한다. 어느 순간에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엔가 예전보다는 그래도 낫네- 하고 스스로 느낄 뿐이다.
무척 게으르고, 기본적인 공부 습관도 제대로 안 잡혀 있는 나라서 사실 매일 실망하고 분노하고(이 게으름탱이 멍충아!!..하면서도 공부 진도 못 빼고 흑흑..ㅠㅠ 하루 한 챕터는 고사하고 무슨 일주일 걸려서 한 챕터 ㅠㅠ) 울적해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미련퉁이 바보라서.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관문이 있다. 심사 기준이라던가 그냥 지원만 해도 그 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봐 주지 않는다. 원래 세상은 그런 곳이다.
예전에는 그게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 노력하는 것을 알고서 순응하고 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보다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다. 부끄럽다, 아직도. 많이.
이 겨울이 언젠가 끝나고 나 역시 봄을 맞아 피어나는 꽃봉오리와 새순들처럼 환한 얼굴로 세상을 향해 웃을 수 있을까?
계절과 관계없이, 어쩌면 지금 내 인생의 계절은 한창 자라나는 여름이거나- 혹은 열매 맺는 가을, 피어나는 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걸 느끼지 못할 뿐이고 한참. 아주 한참이 흐른 다음에야 아, 내가 그런 시기들을 겪으면서 커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 옆 나라가 겪는 불행이 그러할지도 모르는 것처럼.
시련이 없이는 성장도 없고 성장통 다음에 보이는 변화는 모두를 놀라게 하지만 그래도 덜 힘들고 덜 아프고 덜 슬프고 싶다. 천천히 커도 좋으니까, 단단하게 여물어 가자.
사순 시기가 지나간다. 하느님의 아들이 광야에서 보낸 40일이 없이는 지금의 교회도 있을 수 없었다.
모두가 평온해지길, 평화를 되찾길, 하늘나라로 간 이들과 남아있는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했다.
고난의 사순 시기가 지나가고 부활절이 오면, 나는 또 활짝 웃으며 우리 성당 성가대 친구들과 함께 노래 부를 수 있겠지.
지구야 행복해라.
찡그리고 견디는 겨울이 아니라, 웃으면서 추운 날씨를 즐기고 있다. 이제 봄이 코 앞이라서. 조금만 더 견디면 돼.
모두가 힘을 내어 각자의 고비를 잘 넘기길 기도했다.
행복한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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