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발톱


어젯 밤에 부모님께서 무척 늦게 들어오셨다. 사고가 있어서 차를 견인시키고 오시느라 늦었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운전 중에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으셔서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가드레일을 박으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랐는데 다행히 두 분 다 외상은 없으셨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런 일이 생겨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이 된다.

늘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출근하시는 아버지신데 오늘은 이상하게 늦게까지일어나지 못하셔서 아침상을 차리시는 엄마 대신 내가 어버지를 깨웠다. 다리를 주물러드리면서 일어나세요 아빠~ 그러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아버지 발톱이 너무 길더라. 그래서 손톱깎이를 가져와 주무시는 아버지 발톱을 깎아드리는데 목욕 후에 깎곤 하는 몰랑몰랑한 내 손발톱과는 달리 마치 짐승의 이빨처럼 딱딱해서 놀랐다. 노르스름한 살색 발톱은 마치 스리랑카에서 본 지친 눈의 코끼리 상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깎는 것이 아닌 바수는 기분으로 발톱을 손질해 드리면서 아버지 손이며 발을 유심히 보았다. 나보다 더 길죽하고 잘 생긴 발과 투박한 손톱. 어느새 조카의 할아버지가 되신 울 아버지의 주름이 패인 피부.

봄볕 가득한 방 안에서 조금 울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깎아보는 아버지 발톱과 어제의 일, 그리고 부모님을 고향에 두고 일 하러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스스로의 상황이 그냥 많이 속상했다.

고속터미널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는 기사 아저씨 자제분들 자랑을 들으면서 부모님들의 행복 중 하나는 자식 자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라한 딸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자식이고 싶은 것은 세상 모든 딸들의 바램 아닐까?

아버지의 딱딱하던 발톱의 감촉을 떠올리면서 서울로 향하고 있다.

더 건강하시고 더 많이 웃으실 수 있도록 내가 더 잘 해야지.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으시고 어제의 일은 그냥 피로에서 온 사고이길 간절히 기도 드린다. 아버지 아빠 딸이 낳는 손자손녀도 조카만큼 예쁠꺼예요,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서 손자손녀 결혼식까지 다 보셔야 해요!

엄마는 늘 아버지 인물이 별로시라고 하시지만 내 눈에는 세상 그 어떤 남자보다 제일 멋지신 아버지. 일을 쉬게 되면 대구에 자주 오고, 전화도 자주 래야겠다.

딱딱하게 굳은 아버지의 발톱과 발등의 주름살들
분명 그 사이 사이에 배인 세월의 흔적에 나와 내 동생, 어머니. .
우리 가족의 시간들이 남아있겠지.

앞으로 한동안은 아버지를 떠올리면 오늘 아침의 모습과 택시로 나를 배웅해주시던 아버지 뒷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잘 해야지. 나는 우리 집 장녀니까 더 의젓해지고 더 어른스러워지고 싶다. 부끄러운 딸이 아닌 좋은 딸이면 좋겠다.





by 아이 | 2011/04/11 14:58 | ㄴ日記 (2008~now)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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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무니 at 2011/04/11 15:14
내가 어린 딸의 손발톱을 깎아주면서 내 것과 비교하던 때가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말랑말랑해서 딱딱 끊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던 딸애 손발톱이 단단해지고 두꺼워진 것이 슬펐더랬죠.
내가 가는 길을 이 아이도 가는구나 하는 안쓰러움, 슬픔, 미안함 같은.
부모도 자식이 크는 것이 마냥 대견하지만은 않아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1/04/11 18:08
하지만 그건 사람으로, 아니 생물로 태어나면 다 겪는 일인걸요.
세상 풍파에 견디기 위해 껍질은 더 단단해지고 뼈도 더 자라는 걸지도 몰라요.

울 엄마 아부지는 어떤 기분이실지 모르겠어요.
요즘엔 그저 부끄러울 뿐이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가족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크면서 느끼게 되요.
언닌 좀 덜 그럴 것 같은데, 부러워요. 사이좋은 모녀!
Commented by 도시조 at 2011/04/11 15:29
누나는 정말 효녀인거 같아요 ;ㅁ;
Commented by 아이 at 2011/04/11 18:11
...이런 돌 맞을 이야기를^^;;

진짜 효녀는 아마 이렇게 글 쓸 시간에 자기 할 일 제대로 해내면서 효도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다른 사람들하고 비교하면 초라하기만한 딸이라...ORZ 아마 내가 결혼하는 날이 효녀 노릇하게 되는 날 아닐까 싶기도 하고; (4년째 엄마 새해 소원 우리 딸 시집 보내기-_-;)
Commented by Xeon at 2011/04/11 16:27
아이구....; 두분 후유증이 없으신기 천만다행인듯;ㅅ;
Commented by 아이 at 2011/04/11 18:11
일단 아버지는 병원 가 보셔야겠지만 정말 천만다행이예요;ㅅ;
지금도 걱정스럽지만.. 괜찮으심 좋겠어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4/11 17:40
큰 사고 아니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이님 아버님도 아이님 마음 이심전심으로 다 아시고 속으로 격려해 주실거에요.
아이님은 절대 초라한 딸이 아니라 대견하고 멋진 딸이라고 생각합니다.
힘, 내세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1/04/11 18:13
그러시면 좋겠..기보다도 그냥 걱정 안 끼쳐드리고 자립하는 딸이 되면 좋겠어요.
대견하고 멋진 딸이 되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싶어요.
늘 아직 결혼 못하고 취업도 못한 철부지 딸래미라..

힘, 낼께요!! ;-;/
Commented by 꿈꾸는 곰 at 2011/04/12 00:41
인명사고가 아니여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치지만 않으면 되요..

어느덧 우리네 나이는, 어릴적 떠올리지 못하던 생각들을 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네요(아이님이나 다른분들 나이는 잘 모르지만, 대충, 다들, 거기서 거기일..듯?) 그리고 아이님의 걱정은 모든 이의 걱정이기도 해요, 그러니 초라하다거나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1/04/12 08:38
네 정말 교통사고는 다른 누군가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지라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죠;

사실 제 직업이 정규직이 아닌데다 집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하나 남은 딸 시집 보내기 운동이 한창인지라 집안 행사에 가거나 부모님과 대화하면 제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거든요. 실제로도 연수 다녀오기 전에는 고정 원 수입이 어느 정도 되었는데 저번 달 입국하고 나서부터는 시험 준비 하느라 백수 상태인지라...

그래도 스스로가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겠죠?

부모님 곁에 있다 다시 서울 올라오면서 좀 마음이 여려진 것 같아요.
맞아요, 모두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거 같아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pondant at 2011/04/12 01:17
많이 놀라셨겠어요. 큰 사고 아니라 천만다행이네요.

근데 아이 님, 굉장히 속도 깊으신데다, 다리 주물러드리면서 아버지 깨워드리고 발톱 다듬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쁘고 멋진 딸인 것 같아요. 제가 이 정도만 철이 들고 살가웠다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ㅁ; 철 드는 건 당장은 힘들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아이 님처럼 아빠 다리 주무르면서 한 번 깨워드려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아이 at 2011/04/12 08:42
네, 어제 병원 다녀오셨을지 오늘 전화해 보려구요.

그리고.. 으하하하 속 깊지 못해요 ㅠㄱㅠ;; 그러니 부끄럽고;;
그리고 매일 저런 것도 아니였고, 아버지의 발을 유심히 보는 게 태어나서 두번째인가 그랬으니..^^;

pondant님 기회 있으시면 부모님 발 한 번 씻겨 드려보세요. 저 몇 년 전에 아버지가 싫다고 됐다고 하시는데도 발을 씻겨 드린 적 있었는데.. 참 좋은 경험이였거든요. 발 전용 스크럽제 바디샵에서 사다가 씻겨드렸는데 말씀은 안 하셔도 은근 좋아하시더라구요. ㅎㅎ

그 이후로 자주 해야지 생각했지만 딱 한 번 하고 못 했는데..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한번 어깨나 손 같은데 주물러 드리면서 깨워드리시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것도 정말 감사할 일 같아요.

아침에 눈 떠서 혼자 서울 집에서 아침 대용식으로 식사 때우는데 어머니 잔소리가 그리워질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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