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예쁘지 않고 가진 것 없는 서른살, 나는 루저? -오마이뉴스 기사 스크랩


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woman/view.html?cateid=1001&newsid=20110608140325745&p=ohmynews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아니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뭐라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서, 쌓인 마음들이 너무 간절해서-

그래서,
그냥 기사만 스크랩 해 둔다.


예쁘지 않고 가진 것 없는 서른살, 나는 루저?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6.08 14:03 | 누가 봤을까? 20대 여성, 서울


[[오마이뉴스 유은숙 기자]연재 '여성, 여성을 말하다'는 세대별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인물 르포입니다. < 편집자말 >



"엄마요? 미웠죠. 너무 미워서 내 엄마가 아니었으면 하기도 하고 더 나쁜 생각도 했었죠. 이젠… 그냥 여자로 생각하니깐 불쌍해요." 서른 살 경희(가명)는 16살부터 햄버거가게에서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 한 번도 제 손으로 돈을 벌지 않고 살아온 적은 없었다. 서른 살이 되는 지금 현재까지…. 아침마다 새벽일 마치고 돌아와 세 딸을 돌아가며 깨워 씻기고 머리까지 그 커다란 손으로 직접 묶어주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버지 그늘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엄마는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 같았다. 술과 도박에 빠져드는 엄마를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가 아니라 엄마의 끝없는 사고가 시작되면서 경희와 언니들의 삶은 매일매일 위태로웠다. 경희의 큰언니는 그때부터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보살피고 엄마가 벌이는 사고를 막느라 하루도 맘을 놓을 수 없었고 16살 경희도 알바를 시작했다.

언니들한테 얘기하면 돈을 주기도 했겠지만 차라리 일을 하는 게 좋았다. 햄버거가게에서 언니들, 오빠들이랑 같이 일하는 게 즐겁고 좋았다.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었고 당장 학교에 육성회비 같은 돈을 낼 다른 방법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용돈을 벌기 위해서도,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래도 언니들도 다 그렇게 지내기에, 아니 언니들이 사는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마음이 아픈 경희가 자신이 억울하다고도 원망할 여지도 없었다.

16살 첫 알바는 한 시간에 1800원. 밤 10시 이후에 노래방 카운터 알바까지 하느라 학교에 가면 늘 피곤하고 힘들었다. 돈을 벌면 버는대로 큰언니한테 다 내놓고 용돈을 타서 쓰면서 그 또래 아이들처럼 멋 부리고 노는 건 꿈꾸지도 않았다. 지금껏 저를 위해선 만 원짜리 옷도 사기가 손이 떨린다는 경희였다.

"생각해보니깐 그때 아무도 저한테 공부해라, 공부 열심히 하면 다르게 살 수 있다, 이런 말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 같아요." 그 시절에는 그런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단지 고등학교를 잘 마치고 큰언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경희의 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희는 재즈댄스 강사가 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배우다가 포기한 무용, 다시 강사자격증을 따고 그때부터 진짜 알바가 아닌 사회인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와중에 이대로 공부를 끝내면 안 된다는 큰언니 손에 이끌려 대학에 늦게라도 입학했지만 새벽 6시부터 시작해서 하루에 세 개 네 개 댄스강의를 하다 보니, 도저히 학교생활은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큰언니는 그때 어떻게든 더 공부 못 시킨 걸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경희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 되는 만큼 일해서 엄마가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했거든요" 한다.

춤을 추는 일은 즐겁고 강사라는 직업도 마음에 들고 수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하고도 좋았지만 끝이 안 보이는 미래, 답이 안 보이는 빚, 빚, 빚… 정말 지긋지긋했다. 엄마와 한 번 싸우면 경찰을 불러 정신병원에 데려갈 정도로 상황은 점점 나빠져갔다. 경희는 아무도 몰래 양산을 떠났다. 엄마 옆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엄마가 너무 미워 정말이지 이러다 내가 미칠 거 같아 집을 나와 몇 달을 광주에서 혼자 지냈다. 혼자 벌어 혼자 먹고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낄 때쯤 큰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경희아, 미안한데 돈 없나?"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그 힘든 생활을 어떻게 버텼을까

그때 엄마가 얻은 빚은 그 전보다 규모가 큰 사채였고 큰언니 직장에까지 쳐들어가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 그때 경희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서글퍼 울었던가, 아니 언니들에게 미안해서 울었던가?

그 때 빚쟁이들한테 쫓기다시피 고향인 양산을 떠나 부산으로 옮겨와 시작한 일이 대형마트 푸드코트였다. 뭐라도 자격증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중에 제 돈 안 들이고 국비로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아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취직하게 된 일자리였다. 그게 2003년,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화장실도 못 가면서 일해서 받는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숨이 막히는 좁은 주방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손님들의 주문을 바로바로 처리하는 것은 그야말로 중노동이었다. 어린 애들은 버틸 수가 없었다.

매장은 전부 6개였는데 정직원 중에 여자는 경희까지 두 명뿐이었다. 남자직원들은 조금만 경력이 붙고 사장한테 잘보이면 금세 실장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여자직원들은 달랐다. 몸이 너무 힘든 것도 있었지만 아무리 능력 있고 열심히 해도 여자직원은 실장으로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당장 돈이 급한 경희가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여자직원들이 오래 버틸 수도 버틸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경희는 그렇게 그야말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 6년 동안 부산 시내의 대형마트 푸드코트에서 일식 양식 중식 매장을 다 돌아다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을 그만둘 수 없는 건 경희가 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아이들이야 몇 달 겨우 버티고 다른 일 찾아서 떠나지만, 다른 일자리도 변변찮은 아줌마들은 갈 곳이 없었다. 50살도 넘은 아주머니들이 그래서 20살 갓 넘은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갖가지 무시와 희롱을 당했다.

하루 종일 다리가 퉁퉁 부어가며 한시도 못 쉬며 일하는 그들에게 막말은 기본에, 아무 때나 옆구리를 만지면서 뚱뚱하다고 타박하고 허드렛일 하는 아줌마들이라며 기분 나쁘면 내일 안 나와도 된다며 협박을 수시로 해댔다. 고작해야 자기도 그 좁은 주방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같은 처지이면서 월급이 좀 많다고, 실장이라고, 남자라고 어깨에 있는 대로 힘이 들어가서는 사장에게는 갖은 아부를 해대며 사는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지금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그 힘든 생활을 어떻게 버텼을까? 무슨 재미로 희망으로 살았을까? 잔인하게도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게요, 근데 전 피곤한 걸 즐기는 거 같아요. 출근하는 순간부터 한시도 가만히 안 있어요. 그래서 사장들이 절 좋아하는 거 같긴 해요. 그냥 막 눈에 보이는 대로 일하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그래요. 잠을 못자고 몽롱해지는 게 좋아요… 그래요, 뭔가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 하는 게 무서웠을지도요." "한 번도 마음 편하고 몸 편하게 산 적 없고 엄마 때문에 그리고 내가 왜 사는지를 모르겠어서 죽을 결심도 몇 번 했지만, 그래도 언니들에게 의지하면서 언니들 보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엄마가 안 미웠냐구요? 미웠죠. 나쁜 생각도 많이 했고… 그런데 이젠 엄마가 좀 가여워요. 공주처럼 살았어야 하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여자로 생각하게 되면서 이젠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엄마 모시고 살고 싶어요." 엄마처럼 안 살고 싶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족을 꾸려 그냥 여자로 살고 싶어 연애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 평범한 게 제일 어려운 거라는 걸 이제 경희는 알고 있다.

본사 전화 한 통이면 교체될 수 있는 부품 같은 노동자






▲ 사진은 영화 < 달팽이 식당 > 의 한 장면.


ⓒ 도호



6년을 끝도 미래도 안 보이는 그 무덥고 비좁은 푸드코트 주방, 지긋지긋한 집, 사람들… 도망치듯 부산을 떠난 경희는 작은언니가 살고 있는 서울에 왔다. 서울에 와서 자리 잡은 일자리는 국비로 딴 자격증을 가지고 들어간 프랜차이즈 제과점이었다. 그래도 푸드코트 보다는 낫겠지 생각하며 들어간 일자리였다.

하지만 하얀 가운을 입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먹어줄 맛있고 향긋한 빵을 굽는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제빵기사로 들어간 그 곳은 86만 원짜리, 달라지는 건 없었다. 화장실 갈 때나 겨우 다리를 접고 앉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두 번 정도 밖에 갈 여유가 없었다. 내가 쉬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이상 일해야 하므로 쉴 수도 없었고 대충대충 할 수도 없었다.

이제 경희에게는 웬만한 일에 까닥하지 않을 깡다구와 이력이 생겼다. 하지만 마음이 힘든 건 참기 어려웠다.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이지만 점장이 직접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채용하고 월급은 회사가 점장에게 받아 일정한 커미션을 중간에서 떼고 경희에게 전해지는 이상한 체계였다.

그러다 보니 매장 점장의 입장에서는 경희는 회사 사람이었고 언제나 본사에 불리한 얘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회사 입장에서도 경희는 점장이 자신들 모르게 다른 제품을 쓰진 않는지 계약 조건을 어기는 건 없는지 감시하는 사람이면서 언제든지 점장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그 이상한 구조 안에 경희는 서 있었다.

특히 한 공간에서 하루종일 같이 일하는 점장들은 알바생은 챙겨도 제빵기사인 경희에 대해서는 경계하면서 본사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는 대상에다가, 언제든지 본사에 전화 한 통이면 교체될 수 있는 부품 같은 노동자였던 것이다.

매일 일이 끝나면 술을 마셨다.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알바생들이나 다른 직원들하고 친해지고 싶기도 했고, 매장에서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부당한 일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하는 게 간절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먹고 그 이전부터 식사는 김밥 한 줄로 대충 때우는 생활 덕분에 몸은 만성위염에 소화장애로 망가져갔다.

항상 쫓기는 기분으로, 감시당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점장과 회사의 눈치를 다 봐야 했으며 작은 꼬투리도 잡히면 안 되는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새벽에 배송기사가 본사에서 매장에 재료를 배달해주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점장은 목소리를 높였고 경희는 배송기사 아저씨에게 빨리 와달라고 독촉을 하며 아침 시간 5분 10분 차이에 애가 탔다.

나이 서른,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아저씨, 늦으시면 안 돼요. 저 점장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빨리 좀 와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 전날 빨리 와달라는 독촉을 받은 배송기사 아저씨가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 교통사고였다. 새벽 매장마다 돌며 배송하던 기사는 서두르다 사고가 났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얼마 전 어린 아기 사진을 보여주며 흐뭇해하던 배송기사의 소식에 경희는 충격을 받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참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멀쩡한 사람이 죽었어도 배송은 어떻게 되는지부터 확인하는 점장과 회사,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하루 영업은 계속되었다. 마치 한시도 쉬면 빨려 들어가 산산이 사라져버리는 톱니바퀴 같은 기계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그곳에서 더 일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무섭고 그 매장이 싫어져 빵집을 그만두고 나서 경희는 2011년 봄, 갖가지 자격증을 따고 있었다. 한식, 양식, 일식 요리사 자격증에 이어 술을 만드는 조주,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다. 수시로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하다 보니 이제 그걸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현실이 보였다.

아무리 부지런하고 요식업에 관한 한 많은 자격증이 있지만 나이 서른에 경력 많은 여자인 경희를 달가워하는 일자리는 흔치 않았다. 경희는 말 잘 듣고 어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어린 여자가 아니었다는 게 이 사회에서는 흠이자 약점이었다. 나이 서른인 여자에게는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 것일까? 그런 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를 쓰고 딴 자격증들은 경희에게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못했다. 확실한 일자리도 희망에 찬 미래도 능력있고 당당한 전문직으로도….

"이제야 와서 제가 보여요. 눈앞을 뭘로 가리고 여지껏 온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막 살아왔는데, 이제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누가 뭐라 안 해도 나이 서른에 애인도 남편도 없고, 특출나게 예쁘지도 않고, 가진 것 없는 스스로가 가끔 부끄럽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주방일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아무리 아닌 척하고 활달하게 웃고 다 해내려고 기쓰고 살아도 세상은 결혼 안 한 여자, 그것도 번듯한 전문직이 아닌 경희를 우습게 보는 것만 같아 속상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나이 서른에 가진 거 없이 대책 없이 자격증이나 따는 자신을 '루저'로 보는 시선보다는 이제 나이 서른,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꿈이요? 그냥… 고향에 내려가서 사람들 많이 드나들어 북적거리는 술집 아니면 작은 커피숍 하면서 엄마랑 같이 사는 거?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면서 업으로 삼고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 봐요."






by 아이 | 2011/06/08 22:41 | ㄴ기사,칼럼,영상,이미지등 감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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