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게된 지도 이제 10년이 넘었다. 학교 앞엔 마땅한 하숙집이 없어서 고대 주변 안암동, 용두동, 신설동에서 살다가 졸업 즈음에 정릉에서 살았다. 일본으로 가기 전 신림동에서 자취를 하다가 지금은 장충동에서 살고 있다. 거의 10년을 강북에서 살았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살아왔던 이 도시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다닌 학교, 내가 일해온 일터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 외에.. 서울은 늘 오늘의 모습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나에게 서울은 늘 동경의 도시였다.
여고생 시절 잡지에 나온 마로니에 공원을 보며 어떤 곳일까 궁금해했고 각종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서울의 지명들은 왠지 신나는 일이 가득해 보이곤 했다. 중학교때 처음 ACA에 다녀오면서 들렀던 혜화동, 입시시절 과외 선생님(이라기보단 이웃집 언니였지만..^^)을 따라서 가 본 홍대. 지금은 그저 익숙한 동네들이고 내 생활 영역들의 일부지만 어릴적 내겐 생소하기 그지 없는 곳들이였다.
내게는 그랬던 서울의 옛 이야기들을,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던 옛 모습들을 이 책은 이야기 해준다.
내 안에서 서울이란 도시는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커가기 시작했다.
늘 혼잡하고 복잡하고 때론 뜨겁지만 차가운 옆 모습을 가진 도시.
그런 도시도 한 때는 한옥들로 가득하고, 사대부 어르신들이 거닐던 한 나라의 수도였고 온갖 유행과 또 전통이 피어났던 장소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말투는 참 간결하고도 목소리에 울림이 있다.
마치 어려운 먼 친척 할머니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손을 잡고 조근 조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랬단다. 알고는 있었니?
하면서 이가 빠진 입으로 홀홀 웃으시면서 이야기 해주시는 느낌도 들고
검버섯 핀 무뚝뚝한 얼굴의 할아버지께서 요즘 것들은... 하는 표정으로 옛 이야기들을 느릿느릿 늘어놓으시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도 든다.
평소부터 늘, 옛 것에 대한 향수는 그저 미디어나 남겨준 타인의 향기같다고 느꼈다.
왜냐면 내 기억 속에 그 과거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지나던 삼청동 길이며 무심히 지나치던 북촌의 한옥들이 제각기 각자의 긴 옛 이야기들을 품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꺼운 책 사이 사이로 서울의 화보나 엽서처럼 아름다운 사진들과 또 그보다 더 진득한 감동이 배어나오는 이야기들로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서울의 옛 얼굴들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내가 태어나기 전의 사촌언니의 앳된 얼굴이나 엄마의 소녀시절 사진을 찾아낸 것 같은 감동이였다.
오래된 골목마다의 지난 이야기들.
또 한옥에서 살아가면서 전통을 지키고 또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이어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전통 가구 나무 표면의 손 때 가득 묻은 반질거림처럼 곱고 향기로운 글들이 가득해서
읽는 내내 기분이 참 좋았다.
책에 소개된 곳들은 내가 늘 지나다니면서도 그닥 눈 여겨 보지 않았던 곳들도 있고
아직 몰라서 채 찾아가보지 못한 곳들도 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여느 때처럼 후루룩 빨리 읽기 보다는, 한 문장 한 단어씩 꼭꼭 씹어 음미하며 넘기고 싶은 책이다.
책을 다 읽게 되면 내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몇 군데를 찾아가 산책을 하고 거닐면서 내가 읽었던 서울의 옛 이야기들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나라의 수도, 그 옛 이야기가 찰랑 찰랑 가득 담겨있는 책.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의 옛 것과 고유한 문화들을 잊은 채 살아가는 한국의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
ps. 책의 두께만큼, 감동의 깊이도 컸다.
글 하나 하나 어디 빼먹거나 할 데 없이 이야기들이 알차고, 곁들여진 사진은 글과 잘 어우러져 감칠맛을 돋군다.
책장에 꽂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고 싶기도 하고, 친구에게 시간 여유 생길 때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기도 하다.
대신 정보 위주가 아니라는 점은 미리 알아두면 좋겠다.
우리들이 평소에 원하는 먹고 보고 듣고 쇼핑하는 꺼리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이면 충분하다.
이 책은 전통과 현대의 우리들 모습과 감동을 전해준다.
예전 같으면 이 책의 말투는 어색하게 다가왔을텐데, 지금은 참 은은하게 느껴진다.
나도, 서울처럼 이 나라와 함께 시대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나보다.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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