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을 위한 기념일이지만 비정규직은 서럽고, 실업자는 소외되고, 정규직은 불편한 날이 노동절이다. 어제 제119회 노동절도 그러했다. 다가오는 경제위기의 한기로 가득했다. 광주 로케트전지의 해고 노동자들의 애끓는 하소연은 600일이 넘었고, 서울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천막농성도 500일이 코앞이다. 기륭전자, GM대우, 동우화인켐, 코오롱에서도 비정규직 시위가 이어졌다. 양대 노총의 정규직도 기념행사를 벌였지만, 옥죄어오는 비정규직화와 실업의 양자택일에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다.
고용위기는 더이상 방치하기 힘든 지점에 이르렀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2에 육박하고, 경제활동인구의 7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자다. 이는 개인 삶의 위기만이 아니다. 내수기반을 무너뜨려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국민경제의 위기이자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안이 없다며, 임금을 깎고 비정규직만 더 늘리려 할 뿐이다. 노동자들의 반발엔 경제살리기에 역행하는 폭도로 몰아갈 태세다. 노동절을 서럽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가 국민의 손으로 뽑은 정부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물론 어둡기만 하지는 않다. 올 노동절에는 새로운 풍경이 더해졌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노조·시민단체 ‘미행’은 노동절에 앞서 9일간 자전거를 타고 전국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을 방문하는 ‘질주’란 행사를 벌였다. 개별 사업장을 넘어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한 첫 시도였다. 청년실업의 대안을 찾는 20대 당사자 단체 ‘희망청’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메이데이’란 행사를 열었다. 주어진 일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터를 만들어보자고 나선 것이다. 이는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돋는 희망의 신호라고도 할 수 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진정 심각한 문제는 고용위기가 너무 크고 복잡해서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사회의 냉소주의와 자포자기에 있다. 대안과 해법은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대안은 정부가 고용안정으로 정책기조를 바꾸고 기업에 고통분담을 강제할 때, 그리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실업자들과 연대할 때 발견될 수 있다.setFontSize(0);
"신문 방송법은 저 사람들이 날치기 통과를 하면서, 혹은 일방적으로 통과를 하면서 밀어부쳤던 법률들입니다. 현재 이법들이 위헌법률로 판정돼서 보완하는 내용들입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임태희의원이 어제 한나라당 의원들을 모아놓고 방송법처리 강행을 독려하면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mbc뉴스데스크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이 말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먼저 '궁색한 논리'라고 운을 뗀 뉴스데스크는
이어 표결 당시의 표결결과와
찬반토론까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방송법이 오히려 2006년 합헌판정을 받았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모두 여야 협상을 거쳐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었고 표결에 앞서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 토론까지 들었습니다. 야당 의원들까지 표결에 참석한정상적 의결 절차를 거친 법률들이어서 날치기 처리된 법이란 주장은 거짓입니다.
위헌으로 판정됐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닙니다. 재벌과 거대 신문의 방송진출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방송법은 지금까지 헌재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신문법의 경우도 지난 2006년 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에 한해 일부 위헌 결정이 있었지만 이번 방송관계법에서 없애려 하는 신문의 방송 겸영 금지조항에 대해선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이 내려졌었습니다.(12월26일 mbc뉴스데스크)
바로 2년 전의 일을, 그것도 입법했던 의원들을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정권입니다.
고백하건데 나는 바보였다. 정치와 경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려운 것은 싫었고 쉽고 재미난 것만 좋았다. 여학교에서의 관심사란 어차피 다 그렇고 그런 것들이다. 성적, 만화책이나 아이돌 가수, 대입, 짝사랑, 집안문제, 친구와 교우관계, 학원, 선생님, 서클... 그 외에도 각자의 취미와 관심사.
나는 중학교때부터 동인활동을 했었다. 대구의 053이라는 대구,경북지역 만화 서클 연합 안에서 내가 든 동아리는 최저 연령대의 서클이였다. 내가 겪은 최초의 정치적 사건은 만화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한 서명운동 같은 것들이였다. 많은 만화인들이 분노했고 나이가 있고 여유가 있는 분들은 서울로 올라가셨었다. 하지만 그 때 당시의 상황을 나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 소식을 전해주는 것은 소식지나 만화잡지의 몇 페이지 기사들이였다.
다른 정치적인 문제라면 일본문화개방 정도일까? 나는 아직도 가끔 공공장소에서 일본음악이 들리면 깜짝 깜짝 놀란다. 예전에 일본음악을 듣는다고 매국노 소릴 듣고 충격을 받았던 나에게 요즘 같은 세상은 자연스럽고도 신기하다.
또 뭐가 있었을까? 그래, 대학교 등록금. 우리 학교는 국내에서 학비가 비싸기로 손꼽히던 비리사학재단 아래 운영되고 있었다. 단식, 천막농성, 그리고 삭발식..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학교 품위가 떨어진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디자인대와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는 문과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집회에 참가했었다. 그 덕인지 요즈음의 내 모교 등록금은 그렇게 높지 않다. 내가 다닐 때와 비슷한 것 같다. 그 혼란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물론 그 시절에 학교에 다니던 학우들에게 패해가 많이 돌아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혹은 학생이라는 입장 전체를 대변해서- 싸운 투쟁이 좋은 결실을 맺은 셈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이 정도의 설명이면 될까?
그렇다, 나는 사회가 돌아가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정치와 경제는 신문을 읽으시는 아버지의 몫이였다. 뉴스보다 오락 프로그램을 더 좋아했고 학생운동의 흔적이 닿지 않은 교내에서 내가 고민했던 것은 학점과 화장이나 옷, 혹은 연애에 대한 것들이 거의 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 더 심하게 무관심한 아이들도 많았다. 필수과목인 독서와 토론 시간에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학우를 보고 느낀 충격은 꽤 컸다. 아, 나도 참 모르는데 더 심한 사람도 있구나. 깨달았었다.
하지만 변명하고 싶다. 우리는 바보로 키워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바깥 세상이나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 성적과 등수만 바라보도록 커온 우리다.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해나가기보다 사지선다,오지선다에서 답 하나를 고르도록 에스컬레이터식 교육에 실려 대학까지 떠밀려 왔다.
여대 안에서 화장을 고치는 친구들이 자신의 얼굴이나 외모에 쏟는 관심의 일부분만 바깥을 내다보는 데 내어 주었어도 결과가 이렇지는 않았을텐데. 하지만 스스로 느끼기 전에는 소용이 없다. 나 자신도 그랬다. 내가 약자가 되어 약자의 입장에서 아파보기 전까지는 많은 것을 몰랐다.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고, 질문할 공간도 없었고, 내 권리에 대한 것도 몰랐다.
내가 접해온 사회는 나에게 필요한 생각하는 법과 현실 사회의 기준, 그리고 제도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았다. 껍데기뿐인 지식 속에서 얄팍하게 배운 역사와 경제는 언제나 재미없고 따분한 과목 중 하나일 뿐이였다.
나는 인터넷을 접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들을 알아간다. 누군가들은 이미 알고 있을 여러가지를 뒤늦게 배우고 있다.
대구 지역 내에서 유일하게 노무현전대통령을 지지했던 나의 첫 선거를 기억한다. 소금꽃 나무를 읽고서야 왜 아버지께서 나를 탐탁치 않아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은 아주 단편적이였고, 그 좁은 정보의 화분 안에서 자랄 수 있는 생각의 나무 역시 큰 뿌리와 가지를 키울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입이나 취업, 혹은 업무에 바쁜 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 뉴라이트의 발언과 조선일보만으로 세상을 평가하기도 한다. 움직임은 일부분이다. 세상을 휘감고 있는 어리석음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가고 있다. 어리석은 어른들과 현명한 아이들이 함께 살아간다. 오늘은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했던 누구에게나 처음 맞이하는 날이다.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빌려입은 옷에 몸을 맞추듯 갓 해방된 조선이라는 나라에 끼워 맞추었다. 삐그덕대던 과거, 잘못 채워진 첫 단추를 다시 채우기 위해 풀러야할 단추가 참 많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 꼴 보기 싫고 답답하고 속 상하지만, 겪어야할 성장통 없이 키가 클 수 있길 바라지만- 겪어야할 과정일런지도 모른다.
먼저 티켓을 구입해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여러분들 덕에 굉장히 성공적인(개인적 의견이지만^^;;) 일일주점이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뭐랄까.. 일반적으로 비정규직 노조나 그 일에 관계된 사람들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인 자리라 뜻 깊고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좀 죄송했던 것은^^; 7-8시경에 사람이 무척 몰려서 기다리셨거나 하셨던 분들께 죄송했어요. (9시 정도 부터는 점점 테이블이 생겼어요;;) 사람이 많고, 또 공연 등으로 시끌시끌해서 제대로 계시다 가셨는지~ 챙겨드리거나 할 수 없었던 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다들 어떠셨는지; 전 왜 어제 일인데도 이렇게 기억이 어렴풋할까요 ㅠㅠ; 정신 없었던 기억이 젤 강해요; 와 주셨던 분들 정말 감사했습니다(꾸벅)
저는 수업 마치고 고양이님이 급히 찾으셔서 지하철+택시로 갔는데 일본분 한 분이 와 주셔서 그 분 통역 해 드리느라 도착해서는 계속 그 테이블에 앉아서서 통역해 드렸거든요. 다른 자원봉사자분들은 정말 바쁘게 서빙하시고 그러는데 혼자 편하게 앉아 있는 기분이라 죄송했던; 특히나 귀여운>_< 공룡 옷을 입으신 카렌님이 완전 열심히 (그치만 웃으시는 얼굴로) 바쁘게 움직이시는 걸 보고 으아- 나도 도와야 하는데 ㅠㅠ; 뭐 이런 기분였어요. 다른 자원봉사자분들도 굉장히 수고 많으셨는데 다른 분들은 제가 잘 모르고 그래서^^; 카렌님이랑 이번에 인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멋지신 분!
제가 통역을 맡았던 일본분은 일본전국체신노동조합(우리나라 우체국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듯합니다) 00장의 아드님이신데 이름은 000군(27?)이고.. 조금 취해서인지 기륭노조 사진들 보고 계속 울더라구요. 너무 슬프다고, 한국의 현실에 동감하고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면서요. 음.. 이래저래 통역하고; (근데 조금 취하셔서.. 말이 좀 꼬이셨던 듯^^;) 자신은 보통 새벽2-3시부터 오후 5-7시 정도까지 4톤 트럭 모는 일을 하는데, 일이 고되고 힘들긴 해도 일본에서는 같은 일을 하면 누구나 같은 급여를 받는다고,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불공평하다고 느꼈다고. 그리고 민중가요 공연 때 가사 부분 부분 일어로 알려드리니까 또 감동하시고;; 일본인에게 우리나라의 이런 광경은 감동적으로 느껴지나 봅니다^^;
기륭전자 분회 일일 주점 티켓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일 주점은 구속자/연행자 법률비와 부상자 치료비 마련을 위한 것입니다. 주최는 금속노조 서울 남부 지역 지회 기륭전자 분회, 후원은 기륭공대위와 다음 카페 함께 맞는 비, 촛불 시민 일동입니다. (제 할당량이 20장..인데-ㅂ-;; 19장 돌려드리고 싶진 않아요 ㅠㅠ;/)
혹시나 월요일 저녁, 친구들과 술 한 잔 하실 분들 아니면 회식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께 강추, 강추입니다!!! +_+//
날짜는 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오후 4시-11시까지구요 장소는 용산철도웨딩홀입니다.
저는 7시 수업 마치고 달려가서 자원봉사 할 듯합니다^^;
계좌 : 국민은행 435001-01-029818 김소연 앞 으로 만원(혹은 그 이상도 무관해요) 입금 해 주시고 제 홈에 리플로 입금자 명과 주소 남겨주시면 빠른 우편으로 보내드릴께요!
티켓 중 83,84는 ㄱㅇㄷ님께 등기로 부쳐드렸습니다. 92,93은 중구 진보신당 송년회에서 잠깐 홍보 판매로 팔렸습니다. 90번은 inip2p로 어여쁜 아가씨 손으로 넘어갔구요(직접 전해 드렸는데~ 배송 확인 부탁드려요^^ 그래야 입금이 된답니다^^) 94-98은 ㅎㅅㅎ님께서 구매하셨는데 월요일 아침 빠른 등기로 보낼 예정입니다. 티켓 번호 메일로 보내드렸는데 못 받으셨다면 다시 리플을 부탁드립니다.>_<;; 87은 미행 첫 오프 모임에서 ㅎㅂㅇ님께서 구매해 주셨습니다.>_</ 88,89는 ㅁㄷㄴ께서, 00-00는 J님께서 구매해 주셨어요.
이렇게 제가 가진 20장 중 18장이 팔려나가는 쾌거가;ㅂ;/// 정말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넙죽)
15이 오후 7시에 수업 마치고 바로 저는 용산웨딩홀로 가서 자원봉사로 일을 할 예정이구요 혹시나 자원봉사 해 주실 분들께서는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 주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