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나 요법 세 번째 날. (2/22)에 이어 네 번째 추나를 받으러 갔는데 기계요법만 하고 왔다. 추나사 선생님께서 오늘은 기가 약한 것 같으니 내일 그냥 추나만 받는 걸로 하자고 하셔서;; 기가 약할 땐 추나 받으면 몸에 무리가 간단다. 에고 어렵네;;
암튼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온열기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손 내 놓고 있었다; 땀 엄청 흘려서 온 몸이 다 젖을 정도에다가 숨 쉬는 게 힘들어;;;;;;;;;;; 분명히 얼굴은 밖에 나와 있는데도=_=;;
중력 기계에 들어 가 있을 땐 손을 낮게 하고 있으면 손이 저린다. 가끔 왼손에만 쥐가 나곤 했었는데 오늘에야 손 위치 두는 걸 알았다.
요가는 당분간은 하지 않는 게 좋대서.. 아무래도 요가 끊었던 거 취소하러 가야할 것 같다 ㅠㅠ; 친구한테 미안하네;; (추나가 너무 비싸서 추나 안 받고 요가만 하려고 했음;;) 선생님께서 기공법 같은 것도 배워서 그러는데 요가는 지금 몸 상태로는 무리라고;; 차라리 산에 가거나 걷는 걸 추천하신단다. 흐음-_ㅠ 나란 애는 청개구리일까 요가 왤케 하고싶니;;; 몸 상태는..
어렸을 적에 동경하던 연예인이라던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누구에게나 한 명쯤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좋아했던 인물이나 캐릭터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긴 했지만 늘 비슷 비슷한 이미지였다.
온화하고, 강하고, 흔들림 없으면서,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그런 캐릭터를 늘 동경해왔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었다. 어릴 적엔 말이다.
내 어릴 적 첫번째 꿈은 선생님이였다. 일단 솔까말; 스승의 날마다 선생님들이 선물을 한아름 받는 것이 참 부러웠고-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히메나 선생님처럼 예쁘고 우아하고 멋진, 모두에게 모범이 될만한 정숙한 여성(아 표현 유치 쩐다 ㅠㅠ;)이 나의 미래의 자아상이였다.
그 이후로 샤오유나 김윤아씨를 좋아하기 전까지 내가 동경했던, 그렇게 되고 싶었던 캐릭터들은 다 비슷 비슷한 이미지였다.
오 나의 여신님의 베르단디.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후지사키 시오리. 연예인으로 치면 강수지씨? 혹은 오드리 헵번?
긴 머리카락을 가진, 부드러운 미소의- 갸냘퍼 보이면서도 완벽해보이는, 틈이 없는 그런 사람. 동경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했다. (지금 생각하면 만화를 너무 많이 봤던 거라는 생각이-ㅂ-;)
원래 예쁘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커 온 타입은 아니였고, 듬직하다던가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살아온 어린 시절이였다. 여성적인 매력을 가진 그녀들에게 반하고 또 동경했던 것은- 아마도 사랑받기 가장 쉬운 타입이고 또 사랑을 많이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여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게 된다.
어떤 타입의 이미지를 동경하고 있을 때는 알지 못한다. 그녀들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지 말이다.
이를 테면 구김없는 깨끗한 옷차림을 위해서는 세탁과 다림질을 능숙히 하면서 쉬는 날을 청소와 정리로 보내야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머리를 단정히 빗고 묶고, 늘 남들보다 일찍 집에서 나서야 하며- 싫은 소리를 듣거나 해도 웃는 얼굴로 그런 것들을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서 마음을 써 주고, 친절을 받으면 그 이상을 베풀어 주고..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기보다는 혼자 이겨내려고 애쓰는~
아아; 뭐랄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야말로 이야기 속에 나오는 히로인 타입? 굉-장히 피곤하고 지치는 인간형이다. 모든 스트레스를 스스로 풀고, 또 모두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면서도 많은 부분이 완벽한. 그야말로 세상에 존재하기 힘든 타입. 모두의 이상이 만들어 낸, 허구에나 있을 것 같은 만능 여인.
나는 뼛 속까지 게으른 인간이고 허영심이 쩌는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물론 그 노력들은 과거 이야기지만-_-;) 겉모습이나 껍데기는 조금 내 이상형들과 비슷해 질 수 있었다. 다행히 긴 머리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고, 피부 같은 것은 부모님 덕에 좋게 타고 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나카미なかみ[中身]. 속 알맹이는 - 내가 꿈 꾸었던 그녀들을 닮기가 참 어렵더라. 진심으로,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을 위하기보다는 실상은 늘 자신을 향해있는 중심이라던가 부끄럽고 수줍어 하면서도 사실은 주목 받고 싶은 욕망이 열등감 거 안에 감추어져 있다던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어하는 얄팍한 사회적 욕망.
내가 잘 알고 있는, 나의 진실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하고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뒤돌아서 보면. 순수하게 타인을 위하고 사랑할 줄 알고, 또 자연스럽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었다.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가 되고 싶던 사람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가?
난지도 마냥 엉망으로 어질러진 방 한 쪽 구석의 거울을 들여다 보면, 게으르고 통통한. 핑계 대기를 좋아하고 좀 지저분한 여자가 머리띠를 하고 안경을 끼고 피곤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병약해진 것은 뭔가 맞는데.. 병약해 보이는 이미지란 얼마나 그릇된 환상인지 온몸으로 깨닫고 있는 요즘-_-;)
인생의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해내고픈 것들은 무엇이며, 잘 하는 것과 또 고쳐야 할 점.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들을 좀 더 명확히 바라보고 또 고쳐나가야지.
나는 구설수에 많이 오르는 타입이다. 내가 잘못해서(이를테면 과거의 시간약속 엄수..) 그런 것도 있고, 혹은 얼토당토 않은 소문이 나는 경우도 있(내 행실이 나쁘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것에 억울해서 반박하고 싶지만..소문이야 흐르다 마는 것이고 일일이 대꾸해 주는 것이 오히려 그 풍문에 다리를 달아주는 것임을 알기에.. 관심 1G v필요한 이들이려니 하고 만다)고,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내 험담을 했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많이 마음이 아팠고, 나는 언제나 마음을 주는 편이라서 더 속상해 했다.
내가 연을 끊은 경우도 또 내게 먼저 이별을 고하고 등 돌린 이들도- 나는 사실 여전히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추억한다. 미련하게도. 정말 미련하게도.
사람들, 아니 친한 친구들은 말한다. 그렇게 남 생각하고 챙겨주다가 너만 손해보고 너만 바보되고 너만 잃는다고. 어차피 너를 그만큼 사람들이 생각해 주진 않는다고. 배려하고 참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없을 거라고.
»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파면 통보를 받은 최혜원 길동초등학교 선생님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이들이 보내온 사진을 들어보이며 울먹거리고 있다. 닫힌 교실문과 뜯긴 컴퓨터, 셔터가 내린 복도문 등이 담겨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열 몇 살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동백꽃처럼 낙화하고 무덤조차 없는 아이들의 뼛가루가 황사처럼 날리는 땅. 이 척박한 땅에서도 봄은 과연 만인에게 평등했는가. 새끼들하고 발 뻗고 누울 게딱지만한 집을 지키겠다고 살인범이 되어 세 시간의 물대포와 최루탄에 생쥐처럼 끌려 내려오던 철거민들. 그들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위에서 빛나던 햇살은 얼마나 따사로웠는가. 월남전 파병용사에 해외 산업역군에 60평생 일만 해 온 늙은 노동자가 외친 "서러움이 뭔지를 알려거든 나를 보아라" 그 외마디 절규에 600명을 연행하고 마흔두 명을 구속시키는 걸로 화답했던 참여정부의 곤봉과 군홧발 위에도 햇살은 자애로웠는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집으로 돌아간 텅빈 학교에서 한 달 6-70만원으로 당직을 서며 혼자 라면발을 건져 올리는 경비용역 아저씨들의 젓가락질 위에도 햇살은 온화했는가.
급식종사원인 엄마와 학생인 아들이 아침마다 가는 목적지가 같건만 단 하루도 함께 등교해 본 적이 없다는 신발공장 해고노동자 정희. 매일 아침 엄마에게 등을 돌린 채 뛰어가는 아들의 그 작은 등에서 잔인하게 부서져 내리던 햇살은 얼마나 찬란했는가. 그 아들을 불러세워 함께 가자 단 한번도 얘기할 수 없었다던 정희는 "난 다시 태어나면 우리 재경이 학교에 선생으로 태어날 거야.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재경이 손잡고 학교에 같이 가보는 게 소원이야"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마저 서럽던 못난 에미의 눈물 위에도 햇살은 눈부셨는가.
그 정희를 제가 처음 만난 건 그 아이 열두살 때였습니다. 열세살 아래는 취업이 안 되니까 이름도 두개였고 나이도 두가지였던 소위 생계형 위장취업자였던 아이. 목표량 달성이 생명보다 중요했던 공장에서 부산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어 조장에게 터진 날 밤에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보면 영어를 몰라 미싱사한테 엉뚱한 라벨을 갖다줘서 목덜미까지 손가락 자욱이 선명했던 그 아이가 쭈그려 앉아 울고 있곤 했었습니다.
그 아이의 꿈은 미싱사가 되는 거라 했습니다. 우리가 최대한 아낄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 20분이 전부였던 시절. 밥을 굶어가며 미싱을 배워 마침내 장군처럼 미싱을 타게 된 정희는 열네 살 때 이미 미싱바늘에 찍혀 손톱 두개가 없었습니다. 대학생하고 연애를 하면서 기숙사 삼동에 그 소문이 파다해져서 영웅처럼 의기양양하던 영자를 보면서 정희의 소원은 대학생하고 연애 한 번 해보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선 영자처럼 두꺼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고 헷세나 니체같은 책들을 미싱바늘 갈듯이 서로 바꿔가며 끼고 다니다가 밤엔 베고 자고 그랬습니다.
교복 입은 또래들을 보면 처음엔 눈물이 나다가 나중엔 저절로 욕이 나온다던 그 공순이들이 군복 입은 사람들을 보면 처음엔 무섭다가 나중엔 저절로 욕이 나오게 된 게 87년 꼭 이맘때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거리에서 만난 건 영자의 돈도 빼앗고 몸도 빼앗고 꿈마저 짓밟은 사장보다 더 나쁜 대학생이 아니라 또는 시내버스 안내양 시절 대학생 회수권을 들고 버스에 올라서는 파마 잘나오는 미장원 얘기 부츠 세일하는 얘기나 늘어놓던 한심한 대학생이 아니라 최루탄이 안개처럼 뒤덮인 거리를 질주하던 진짜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준비물을 안 챙겨갔다고 국민교육헌장을 못 외운다고 모내기 하는 날 결석했다고 코피가 나도록 줘패던 수많은 박정희들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라던 믿어지지 않는 말씀들을 하시던 여러분들 참스승들이었습니다. 그후로 우리들은 더이상 읽지도 않는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지도 않았고 안내양하면서 삥땅해뒀다가 남의 버스 탈 때 마패처럼 내밀곤 하던 몇 년이 지난 대학생 회수권도 비로소 버릴 수 있었습니다.
16년전 오늘.그 아이들이 얼마나 여러분들을 자랑스러워했는지 아십니까? 정문 앞에서 부터 쫓기고 쫓기는 숨바꼭질 끝에 부산대학교 기계관 앞에서 마침내 하늘을 향해 오르던 전교조 부산지부의 깃발을 보며 그 아이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아십니까? 16년전 오늘. 선생님들을 그렁그렁 눈물 매달고 지켜보던 그 아이들의 수천마리의 새들의 비상처럼 터져나오던 갈채소리를 아직도 기억 하십니까? 그때 그날 신용길 선생님이 형형한 눈빛으로 읽어가시던 축시를 들은 이후 정희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라 했습니다. 준재를 두고 떠나시는 그 오죽한 순간에도 눈을 세상에 남겨 전교조 합법화의 그날을 보리라던 꼭 신용길 선생님의 현신 같았던 조직. 1500명의 선생들을 학생들마저 폭력혁명의 도구로 삼는 좌경 용공 의식화 교사로 내몰고도 꺾을 수 없었던 조직. 학부모의 손에 머리채가 잡혀 정문 밖으로 끌려 나가는 선생님들을 울며 불며 따라오며 선생님들을 돌려달라고 목 놓아 울던 아이들을 가졌던 참 행복한 조직.
그 조직을 아이들로 부터 분리해내는 게 이제는 강압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으로 너무나 인텔리스러운 방식의 구조조정이 교원평가제입니다. 수백만개의 사업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 철도 통신 전력 도로 건설 운송 다 휩쓸어버린 신자유주의자들의 오직 단 하나 마지막 남은 미션. 학교입니다.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비정규직이니 환영식도 없고 수시로 짤려나가니 환송식을 할수도 없는 수많은 현장들. 아무도 노젓는 법을 나누지 않고 친구의 노를 몰래 부러뜨려 놓아야 내가 강물을 건널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은 결국 그 강의 끝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망망대해로 이어져 혼자 탄 뗏목으로는 난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제일은행 노동자들이 짤릴 때 주택은행 노동자들은 시금치를 무치거나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짤릴 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잔업을 하거나 축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짤릴 때 남성 노동자들은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형님들이 짤릴 때 동생들은 '헹님은 인자 낚시도 실컷 댕기고 땡 잡았네' 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했던 똑같은 말을 울면서 듣게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수백만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지만 아무도 자기가 그 대상이 되리라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이 짜릿한 러시안 룰렛 게임. 이미 1300만 중에 840만이 비정규직이지만 아직도 내가 비정규직이 되리라는 걸 예상하지 않는 이제는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전선이 돼버린 이 스릴 넘치는 치킨 게임.
급식종사원 당직경비 영양사 사서 각종 보조의 이름으로 불리는 학내 비정규직들에게 익숙해진 우리들은 머잖아 하청교사 용역교사에게도 서서히 익숙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미션의 임파서블은 거기까지 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관리자거나 희생양이거나 두 종류만 키워내면 되는 학교에서 아무도 참교육을 말하지 않는 그때까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밀어내는 것도 자본이고 이제 와서 아빠 힘내시라고 노래불러주는 것도 자본이고 집도 사고 차도 사야 하는데 당신이 아프면 큰일이라고 걱정해주는 것도 자본이고 사고가 나면 남편보다 먼저 달려와 주는 것도 자본이고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자본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자본은 이제 안아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들과 우리가 공평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영역이 그것들도 죽는다는 사실이었는데 황 박사의 생명 연장의 꿈은 결국 자본 연장의 꿈이 될 것입니다. 상위 10%에 비해 하위 10%의 사망율이 다섯배가 높은 나라에서 노무현이가 보톡스 맞듯이 쌍꺼풀 수술하듯이 줄기세포 갈아 끼우고 죽지도 않고 러시아로 행담도로 삽질하러 다니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이건희 명예박사 사건 일명 이명박 사건으로 존재감을 뿌듯하게 확인한 이건희 하고 똑같은 게 수십개 수백개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정형근이가 호텔방에서 묵주하고 바꾼 난자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같은 것들을 아예 프레스로 찍어 낼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저는 벌써 소름이 끼칩니다.
동지여러분. 아이들을 일진이라고 때려잡던 소탕작전은 마무리 됐습니까? 사립학교법 죽어라 반대하는 한나라당 떨거지들. 학생과 교사를 좌경과 건전으로 분리해 좌경학생을 격리조치하고 좌경교사를 감찰하라는 신선한 발상이 화수분처럼 샘솟아 오르는 교육인적자원부. 천성산에는 철도를 놓고 아이들의 머리에는 고속도로를 내서 살기 좋은 새마을을 만들고 싶어 환장을 한 아직도 건재한 수많은 이 땅의 박정희들. 진짜 일진은 그것들 아닙니까?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동료들간의 왕따를 조장하고 폭력으로 나와바리를 유지하는 그들이야말로 우리시대 진정한 일진들 아닙니까? 이 일진세력들을 그대로 둔 채 교원평가제가 시행되면 아이들은 저절로 영악해지고 선생들은 알아서 비겁해질 겁니다. 아이들은 꿈을 잃어가고 선생들은 영혼을 잃어가는 학교에서 중간고사 끝난 나른한 봄날의 4교시. 선생님께 첫 사랑 이야기를 조르는 아이들도 더 이상은 없을 테고 그 아이들에게 진달래를 불러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도 더는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을 상대로 첫 사랑의 황홀한 꿈을 꾸는 아이들도 없을 테고 선생님들은 더 이상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학교가 아닌 아파트 옥상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점점 많아질 테고 그때 우리는 아이들의 책상만이 아니라 옆자리 선생님의 빈 책상위에도 하얀 국화꽃을 올려놓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밖에는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여러분들. 나는 그 아이들은 담싹 안아주고 싶어 다가가는데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는 아이들. 그럼 어쩌시렵니까? 나는 아이들에게 밤새워 메일을 쓰는데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는 아이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보내기' 대신 '취소'를 누르며 긴 밤을 서성거릴 때. 그 뜨거운 마음들을 다 어쩌시렵니까? 쏟아내지지도 않고 내려놔지지도 않은 채 자갈처럼 구르며 온 가슴을 헤집고 다닐 결국에는 상처가 될 그 걷잡을 수 없는 사랑들을 다 어쩌고 사시렵니까?
권미경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열세 살 때부터 홀어머니와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오빠.어린동생 둘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글재주가 유난했던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똑똑하면 안 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혹시 아십니까? 미싱만 잘 밟으면 되는 공순이가 그림 잘 그리는 저주를 받아 초등학교 6년 내내 게시판에 그림이 걸려 있던 기억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혹시 상상해보셨습니까?
미경이의 글재주는 작업시간에 빵 먹었다고 조장한테 터지고 온 날. 구비 구비 서러운 일기를 써내려가는데 밖엔 써먹을 데가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유서 같았던 일기장을 몇 권이나 남겨놓고 공장 옥상에서 고단하기만 했던 스물두 살의 몸뚱이를 끝내 날렸던 미경이의 유서는 그러나 막상 외마디였습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그 유서를 왼쪽 팔뚝에 볼펜으로 비명처럼 새겨 넣고 갔습니다. 그 미경이를 신용길 선생님의 바로 앞자리에 묻으면서 신선생님께 부탁했습니다. 작가가 되는 꿈을 꾸었으나 살아서는 도저히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던 미경이가 선생님의 곁으로 갔습니다. 수만 벌의 옷을 만들었지만 단 한 벌도 그 옷의 주인일 수 없었던 미경이의 소원은 제비꽃 한복을 입어보는 거 였습니다. 여기저기 터지고 부러진 스물두 살 몸뚱이 여며서 그 옷을 수의로 입혀서 보냈습니다. 비록 눈으로 보실 수는 없더라도 제비꽃 향기가 나는 아이가 있거들랑 시도 읊어주시고 문학도 가르쳐 주시구려. 미경이 같은 아이들이 가진 꿈을 살아서 이룰 수 있는 무상교육. 전 그게 꼭 됐으면 좋겠습니다.
1. 제 인생의 벽은 세 가지죠. 게으름,즉흥성+ 정리 안 된 자유로움이 넘치는 분위기.... 성실과 꾸준함, 그리고 정리 정돈 이것만 갖춰지면 나능야 무적인데!!!
...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기동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겨울을 온 몸으로 느끼는 요즘. ㅠ_ㅠ;
2. 매일 매일 할 것! 방 정리 + 세금 납부(유류 환급금 신청) + 공부 + 운동 + 소식 +미뤄둔 포스팅 업뎃 + 후기 작성들. +기도 + 빨래.. 아 귀챠네...ㅠㅠ
3. 짜는 소린 하기 싫은데 확실히 힘들긴 하네요!!!!!!!!!!!!!! 꺅! 꺅꺅꺆(원숭이 우는 소리로) 아우;; 그래도 인생, 웃으며 살면 웃을 일이 생긴대잖아요? 음-_-; 웃으려 애 쓰며 살아요. 내가 행복해지면, 세상엔 행복한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고, 그러면 그 한 사람 분량만큼 행복해지는 세상이 되는 거니까!!! 복잡하게 곱셈 나눗셈 할 거 없이 그냥 제 행복론은 글타능!!! 흑;-;
4. 완벽한 다이어트는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고치는 겁니다.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량을 늘리며 혈액순환을 개선시키고 기초대사량을 늘리는 것! 음식과 운동으로 좆ㄹ하는 것이 최고지 의약품의 힘을 빌리는 건 요요를 동반하기 쉽고 뭣보다 돈이 들어간다! 오.. 조절 오타났네.. 근데 고치기 귀찮으니 그얀 좆ㄹ은 조절로 읽어주셔요;;;;;;;;;;;;;;;;;;;;
5. 내일 이벤트 발표 준비..
6. 오늘 빼빼로 데이! 그리고 이틀 후는 수능! 다들 추운 바람에 쓸쓸해 하지 마시고 즐겁게 보내시면 좋겠어요.
7. 방만 다 치울 수 있다면 기적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요즘. 옷걸이 행거를 사야겠어요. 가진 것이 많으니까 근심이 많은 법. 고민, 걱정이 많으면 가진 것들을 한 번 세어보세요. 어쩌면 가진 게 너무 많고 욕심이 너무 많아 그런 지도 몰라요. 이어지는 내용